얼굴에 주름지고 걸음걸이 느려지면, 살 만큼 산 때이다. 노인들은 마음도 따라 늙어지면서 여유가 있을 것 같다.
논어에 60에는 귀가 순해져서 어떤 말이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실상은 그 이순을 훨씬 넘어선 노인들이 상대의 말들을, 그냥 무심히 보내지 않는다. 자기 귀에 거슬리면 인상이 흐려지고, 말이 험해진다. 아직도 실속 없이 자기 자랑하는 노인도 있고, 더러는 돈을 쫓아다니는 노인도 있다.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은 열정 있는 젊은이다. 무엇이 중한지 알면서도, 보이는 모습들은 모른 체하며 사는 것 같다.
열정적인 노인들을 보면 생각나는 문구가 있다. 사람들은 이 말은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그리고 이어서 따라오는 생각이 “문제는 건강이야, 바보야”이다.
이것은 아직도 한창이라고 행동하는 노인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면 모르지만, 보통 노인들은 이 말이 귀에 들어올 것이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말은 어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력과 인지도가 약한 후보가 이 슬로건으로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의 핵심을 짚어서 승기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 큰 노인들을 보고 생각난 것이 “문제는 건강이야, 바보야”이다.
보통 늙은이로 늙어가면서 가장 우선하는 것이 “건강”이다.
아직도 여러 가지 쫓으며 살아갈 수 있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우선시해야 할 것이 건강이다. 세속적으로 우리는 오래 사는 것을 가장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오래 사는 노인이 연배 중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세월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적인 비교 기준이 없으니, 숫자로 이 땅에 오래 산 것이 비교 우위인 것이다.
나이 들어 아직 돈벌이에 집착하거나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의 집착이 더 실리적일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깊이 들어가면 비슷하다.
늙으면 먹어가는 나이를 탓하면서, 조금이라도 덜 늙어 보이려고 애쓰면서 산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남과 비교해 살이 찌면 고민도 하고 운동하는 것이다. 노인은 운동을 심하게 해도 “나잇살”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살은 먹는 것과 관련이 더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관절이 아프면 걷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노인들은 건강에 관해 무심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병이 생기면, 오직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때는 모든 생각이 오직 그 병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즉 자나 깨나 그 아픔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행히 벗어나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늙어가면서 가장 관심이 높은 것이 ”문제는 건강이야, 바보야“이다.
작년에 같이 놀던 경로당 친구가 지금 같이 없으면, 관심이 없어진다. 그 친구가 만일에 죽었다면 거의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수년 전에 졸한 친구는 더욱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죽으면 잊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한다.“ 그러니 심하게 말하면, ”가장 성공한 사람은 부나 명예나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산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조금은 품격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것 같다. 원래 사람의 품격은 엄밀히 평가할 수도 없고,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몽테뉴는 ”삶은 길이가 아니라 방식“이라고 했다. 사는 것은 수명의 길이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삶의 질과 방식이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삶이 기준이 행복이나 의미에 둔다면, 오래 사는 것 못지않게 좋은 기준이 될 것 같다. 삶의 길이에 연연하기보다, 의미와 방식이 멋있는 삶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많다. 일생에서 수년의 차이는 큰 의미는 없다. 실제로 건강에 신경을 쏟아도 대체로 노인들은 몇십 년 더 사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중년 두 남녀의 사랑은 불륜이지만, 영혼과 육체의 사랑에 지독히 몰입된 사랑이었다. 4일간의 짧은 사랑이었지만, 너무나 몰입한 사랑이므로 오래 옅은 사랑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질적으로 높은 시간이었다. 4일간의 짧은 시간은 인간의 일생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인간의 일생은 긴 인류 시간에 비교 대상도 아니다. 그러니 핵심은 4일의 짧은 날이라도 질과 의미인 것이다.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두 남녀의 4일간 사랑의 농도는 어느 것보다 진지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랑을 꿈꾸며 살고 있고, 그들의 4일간의 불륜을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데, 질 높은 삶을 살았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늙어가면서 생각은 오래 사는 것을 의식한다. 물론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다.
노년에는 진리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생각에도 관심이 옅어진다. 삶의 방향이나 좋은 의미는 앞선 선각자들이 찾으려 했지만,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모두의 생각과 삶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방향과 의미도 그러할 것이다. 감사라든지, 봉사라든지, 배려나 사랑도 보편타당한 말이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아니다.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은 삶의 길이가 길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