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어 노인

by 안종익

겨울철 오전 시간은 빠르다. 일어나 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10시다. 곧 정오가 지난다.

조금 더 지나면 전화가 온다. 노인정에서 찾는 전화다.

아직 노인정에 갈 정도는 아닌데, 노인들이 수시로 전화한다. 화투할 사람이 모자라는 것이다. 화투판에 몇 년 전까지 늦게 온 노인은 뒤에서 구경해야 했다. 그때는 화투할 사람이 많았다. 해마다 노인들이 한 둘씩 떠나고, 이제 화투할 사람이 부족한 것이다.


노인정에 가면 네 사람이 화투하고 있다.

네 사람이 하면, 다섯 사람보다 긴장감이 덜 하다. 한판에 천 원이지만, 다섯 사람이 해야 회전이 빠르다. 돈이 빨리 오가야 재미와 긴장감이 있다.

네 사람이면, 가장 못한 사람이 가장 많이 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중간 두 사람은 쉰다. 그런데 다섯 사람이면, 끝으로 두 사람이 앞에 두 사람에게 돈을 주고, 가운데 한 사람은 그냥 간다. 그러니 돈을 따거나 잃는 빈도가 훨씬 높은 것이다. 그래서 스페어 노인을 부른 것이다.


노인정에는 보통 네 사람은 늘 오는데, 한 사람 더 오면 화투패 성원이다. 여기 춘봉 노인이 오면 완벽하다. 춘봉 노인은 같은 또래지만, 자주 오지 않는다. 읍내에 하는 일이 있고, 교인이라 화투 치기는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춘봉 노인이 안 오는 날에 스페어 노인을 부르는 것이다.

마을에는 노인들은 더 있지만, 천 원 내기라도 돈도 아까워 경로당에 오지 않는다. 그런 노인은 먹을 음식이 있거나, 모임이 있으면 오는 것이다.


화투판에는 말 많은 찬종 노인이 몇 번 돈을 잃으면 앓는 소리가 시작된다. 돈이 되는 날은 얼굴이 웃음꽃이다. 표정 관리가 안 된다. 다른 노인도 잃으면 비슷하지만, 그렇게 심하지 않다. 좌영 노인과 병국 노인은 보통 옆에 앉아 서로 화투패를 은밀히 보여준다. 경두 노인은 화투가 안 되면 육두문자가 나온다. 그래도 화투에 몰두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시간 동안 아프던 다리도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수가 틀리면 큰소리로 난다. 여기서 성질이 못 죽이면 그날 화투판은 파장이다. 노인들이라 가는 귀가 먹어 목소리가 커, 밖에 지나는 사람들은 싸우는 줄 안다.


짜증을 부리는 노인이 돈 잃은 사람이다. 그 짜증이 계속 돈을 잃게 하는지, 순식간에 만 원을 나간다. 그러면 그 노인은 재산에 큰 축이 난 것처럼, 신경질을 내며 얼굴이 붉게 충혈된다. 경로당 시간은 너무 빠르다. 끝날 때까지 잃은 사람은 본전을 찾아야 하고, 딴 사람은 그 돈을 지켜야 한다. 노인의 얼마 남지 않은 아까운 시간이 순식간에 간다. 그래도 그 시간만큼 외로움이나 무료함은 없다.

돈 잃고 집에 가는 날은 다음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천 원 내기라도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다. 노인들이 100원에서 1000원씩 한 것도 그렇게 오래지 않다.

아직 할머니 노인정은 아직도 10원씩 내기한다. 그 십 원이 수 십 년 이어진다. 할머니 경로당에서도 100원을 잃은 날은 기분이 나빠 말도 안 하고 집으로 간다고 한다.


스페어 노인은 돈을 따면, 일어날 때는 잃은 노인에게 주고 온다. 딴 돈을 그대로 갖고 오기는 뒤통수가 가렵다. 주고 오는 게 마음 편하고, 그것이 다음에 불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잃는 날이면 돈을 주는 노인이 없다. 노인정에서 스페어 노인은 돈을 따지는 못하고, 성원 채우고 기분만 맞춘다.


화투판이 종종 계산이 맞지 않거나, 화투패가 틀려서 고성이 오간다. 그때는 거의 판이 깨진다. 당사자끼리 얼굴을 붉히면서 서로 상대가 잘못이라고 핏대를 올린다. 그리고 화가 나서 집으로 가버린다.

다음날 다시 노인정에는 때 되면 노인들이 모인다. 어제 다투었던 화투판은 거의 잊어버리고, 다시 새판이 시작된다. 오늘은 돈을 따겠다는 의지가 어제 일은 생각나지 않는다. 자주 화투판이 그렇게 큰소리로 끝나서, 노인들은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는기도 한다. 그때도 성원 안 되면, 스페어 노인을 찾을 것이다.


그래도 노인정에 가면 화투할 사람이 있어 노인들이 모인다. 잘 걷지 못해도, 앉아서 입으로 화투패 이야기는 아직 청춘이다.

겨울에는 이렇게 서로 어울릴 사람이 있어 정신을 쏟고, 여름이면 몸은 느리지만 농사하다가 가을걷이 후에 다시 모인다.

그렇게 절뚝거리며, 노인정에는 노인들은 나온다. 작년까지 여기 나오던 노인들이 나오지 않는다. 아프거나 돌아가신 것이다.

본인들도 내년 겨울에는 못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앞서간 노인들처럼 잊히는 것도 안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사는 노인들이다.

옛날 어른들이 살았듯이 살아가는 것이다. 옛날에도 노인정에는 이렇게 큰 소리가 나고, 얼굴 붉히면서 화투 놀이를 했었다. 그 노인정에 주류를 기다리면 있는, 스페어 노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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