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포항에서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발했다.
양포항에서 아침에 활어시장이 열린다는 정보가 있어서 치열한 경매 현장을 구경하려고 일찍 나온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벌써 파장 무렵인지 고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늦게 나온 것도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규모로 봐서는 작은 활어시장인 것 같다. 양포항이 13코스 출발지이다. 활어시장을 보고 출발을 했는데 방향이 정 동쪽인지 햇볕이 바로 보여서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앞을 향해 해변을 따라 계속 가면 되지만 해파랑길 표식이 햇볕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가니까 정동향이 벗어났는지 앞이 잘 보이고 오늘은 무척 맑은 날이다. 여전히 쌀쌀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걷기에도 좋고 바람이 불지 않아 행복한 기분이다.
해안 길이 비슷하듯이 돌아서면 초승달 모양의 둥근 선이 나오고 그 가운데에 항구와 모래사장이 있는 곳이 많다. 오늘도 그 해안선을 따라 걷는 중인데 “창바우 마을”이라고 독특한 지명을 가진 곳은 깔끔하게 정비한 흔적이 보인다. 이 마을도 신창리에 속하는 마을인 것 같은데 신창리에는 일출 암시 최고이다. 멀리서도 일출암의 바위가 눈에 들어오더니 바위 위에 난 소나무는 아침 햇볕을 받으니 육당 선생이 10 경이라고 한 것은 공연히 한 것이 아닌 것이다.
또 둥근 해안선을 돌아서면 영암리 마을이 나온다. 멀리서 영암리 마을을 내려다볼 때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어촌마을이었는데 그런 느낌이 왔을 때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더 가면 좋은 그림이 나올까 해서 가까이 오니까 별로인 마을로 변했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영암리 오기 전 낮은 언덕에는 묘가 하나 외롭게 바다를 보고 있었다. 주변에 나무도 거의 없고 바람에 노출되어 모진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바다와 인연이 있는 분의 묘인 것 같은데, 잔디도 거의 살지 못하고 거칠고 굵은 흙들만 비바람에 깎이어서 나지막해져 있다. 벌초는 하지 않아도 풀이 거의 없으니까 표시가 잘 나지 않아 관리되는지 의문이다. 묘를 보니까 모친이 생각났다. 모친도 2년 전에는 살아계셨는데 지금은 저 묘처럼 땅속에 계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친을 생각하니까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곧 저렇게 될지 아니면 화장에서 뿌려질지는 모르지만 그날이 다가온다. 저런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인데 뭘 그렇게 고뇌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대진해수욕장은 모래가 많아서 큰 해수욕장이다. 어김없이 대단위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었고 해파랑길이 처음에는 표시가 잘 보였으나 나중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대규모 시설에 훼손되었거나 사유지라서 표시하기 곤란한지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해파랑길을 찾는 방법은 멀리 해안선을 보고 모래밭을 계속 걸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걷다가 보니까 표시가 나왔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과거일 경우가 많다. 지난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기도 하고 또 현재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길을 걷은 것은 과거를 생각하는 길이고, 과거를 생각해야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해안선 길은 걷다가 돌아보면 방금 전까지 온 해안선 길이 모두 보인다. 초승달 모양의 선이 마지막까지 보이고 이렇게 먼 길을 왔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한다. 해파랑길은 과거도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는 길이다.
모포항에 도착하고 항구가 끝나면 장길리 마을로 가기 위해서 데크로 만든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 계단이 햇볕이 잘 들고 바람도 막아주고 있었다. 발도 아프고 거기서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서 신발도 벗고 발을 풀어 주었다. 고성까지 완주할 마음은 있지만, 이 발에 이상이 생기면 허사이다. 불안한 마음에서 걷는 중간에 이렇게 발을 풀어주고 달래는 것이다. 지금 마음은 이 발이 허용하는 데까지 갈 예정이다. 바람 불지 않고 햇볕이 따뜻한 계단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다시 걷는 길은 소나무길을 조금 가다가 대나무 숲길이 나왔다. 대나무가 너무 많아서 터널을 만들고 있는 곳을 내려가니까 아직도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해안선 자갈길이 나온다. 이런 자연적인 길도 해파랑길의 매력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지나간 자국은 선명해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자연길 마지막도 대나무 터널 속에서 빠져나간다.
대나무가 낚싯대로는 그만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대나무를 낚싯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살았던 곳은 이런 대나무도 귀해서 구하지 못했다. 대나무의 분포가 남쪽 지방에 왕성히 자라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대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고, 자라도 낚싯대를 할 정도로는 크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낚싯대는 산에 자라는 노간주나무를 주로 했는데, 산에 가서 노간주나무를 잘라다가 흰 속살이 나오도록 껍질을 다 벗기고 나면 가벼워지고 단단해져 낚싯대로 사용했지만, 길이는 대나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장길리 마을을 지나다 보니까 유모차가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근처에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아마도 주변에 경로당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바로 앞 건물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경로당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몇 걸음 더 오니까 양지바른 정자가 나왔다. 그곳에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것이다. 오늘 노인 일 자리하는 날인 것이다. 나도 할머니 구경하고 할머니들도 이른 오전에 배낭을 메고 가는 나를 구경한다.
구룡포항은 대형 선박이 정박해있고 과메기 항구였다. 과메기 관련 큰 건물들과 항구는 활기를 느껴진다. 구룡포항의 마지막 부분이 해파랑길 13코스가 끝나는 지점이다. 이곳에 일본인 적산가옥이 있다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르막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올라가기 싫어서 올라가지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는 이곳이 동해안에 번성한 항구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구룡포항을 지나서 해안선을 따라가면 광풍교라는 팻말을 자주 본다. 광풍교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이 광풍교는 삼정섬으로 가는 다리를 말한다. 삼정섬이 사유지라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고 광풍 교도 흉물스럽게 출입 금지 띠가 무질서하게 막고 있었다.
석병리 해안마을이 한반도의 가장 동쪽 끝이라고 표시들이 서 있다. 이곳도 사유지 양식장이라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곳도 보았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어서 오늘 묶을 숙소를 찾아야 했다. 구룡포를 지났기 때문에 숙소가 많지 않아 오늘은 보이는 곳에 모두 가격을 물어봤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야외 카라반 설치된 곳이다. 여기는 해안가에서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서 올라가는데 힘이 들었다. 온종일 걷다가 오르막을 오르니까 힘이 들어서 색다른 경험도 하고 더 이상 걷기 힘들어서 적당하면 이곳에 묶기로 했다. 너무 생각보다는 가격이 높아서 포기하고 다시 내려왔다. 다시 가다가 펜션의 가격도 만만찮았다. 다른 펜션을 가보니까 한 사람은 받지 않고 단체만 받는다고 해서 이제 민박집을 찾았다. 내가 어리숙하게 보였는지 펜션 가격보다 더 달라고 해서 돌아섰고, 마지막에 걸을 힘도 없어서 작은 펜션이 있다고 해서 가격도 적당해서 오늘 여기에서 유숙하기로 했다. 이 마을은 해파랑길 14코스 중간지점인 다무포 고래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