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입춘이 지났는데 한파가 3일째 계속되고 있다.
아침에 출발할 때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걷겠다는 생각보다는 추워서 걷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간절하다. 다시 들어가 쉬고 싶지만 쉬는 것도 마음 편하지 않을 것 같고, 그냥 어정쩡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 시작은 바로 앞이 원자력 발전소이기에 해안으로 가지 못하고 돌아서 간다. 또 시작하고 나서 곧바로 봉길 터널이 있기 때문에 그 터널 구간은 걷기에는 위험하니까 버스를 이용하라고 한다.
날씨가 오늘도 바람은 엄청나게 불고 있다. 오늘 첫 바닷길은 수중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해수욕장이었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수중릉은 바람과 파도와 함께 오랜 세월 그곳에 있었고, 해변에서는 오늘 휴일이라 손님을 맞으려고 가게들이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
대본 마을들을 지나면서 가곡항까지 거의 해안길을 걸었다.
여기서는 펜션과 횟집이 많았고 계속 바닷가를 가니까 이제는 바다가 지루해졌다. 오늘 걷는 길은 바닷길이지만 그렇게 힘든 길은 아니고 바다 보고 파도 보고 계속 걷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감포항이 이 해파랑길 11코스의 마지막 도착지이다. 처음 시작할 때 터널 속으로 걸어가면 위험하니까 버스 타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무척 빨리 온 것 같다. 감포항이 얼마 남지 않은 표지판을 보고 믿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 얼마를 가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걷는 것이다.
전곡 해변에 용굴이 있다고 안내판을 보았지만 가기 싫어서 그냥 지나치고 감포항으로 계속 걸었다. 멀리 보이는 곳이 감포항처럼 보였다. 여기도 해안선이 걷기 좋고 풍광도 좋았다.
예전에 감포항을 와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보이는 것처럼 작아 보이지 않고 큰 항구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착해 보니까 감포항이다. 이렇게 11코스를 빨리 마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감포항도 남쪽에서 올라오는 해변에서 보면 작게 보이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까 옛날에 본 그 규모이다.
11코스 도착지인 감포항을 점심시간 한참 전에 왔기 때문에 그냥 계속 걷기로 했다.
감포항의 먹거리 거리를 지날 때 호객행위를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대게 파는 가게에서 심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거의 들어오라고 권하는데 내가 지나가니까 쳐다보지 않았다. 보기에 호객행위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걷기 일주일이 지났는데 벌써 행색을 형편없는 모양이다. 앞으로 얼마나 편할지 궁금하다.
감포항을 돌아서 하얀 등대로 쪽으로 걸어갔다. 하얀 등대에서 다시 돌아 나와야 할 것 같은 지형이었는데 등대에 올라가 보니까 해변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이 등대는 “송대말 등대”인데 전망은 오늘 걷는 중에는 최고이고, 여기서 지금까지 걸어온 해안 길도 아득하게 보였다. 등대를 지나서 척사항에 이르는 해변도 무척이나 좋았다. 감포항에 가려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걷기나 풍광이나 빠지지 않았다.
척사항을 지나서 계속 이어지는 해변길을 걸었다. 감포항에서 시간이 빨라서 점심을 먹지 못했고 적당한 식당이 나오면 식사하리라고 생각하고 식당을 계속 찾았다. 적당한 식당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계속 가다가 보니까 점심시간이 지났다. 배는 고파왔지만 식당이 없으니까 계속 걷기만 했다. 나중에는 가게라도 있으면 적당한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가게도 없었다. 그 대신에 펜션은 엄청나게 많았다. 해변가로 적당한 곳은 모두 펜션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해파랑길 12코스는 오류 고아라 해변을 지나면 거의 31번 국도 길과 비슷하다. 양포항까지는 31번 국도를 생각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국도에서 간간히 해변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가 반복된다.
날씨만 좋으면 해변길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코스이다. 한낮에도 추워서 귀가 시리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걷기가 힘든 날이다.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불었으면 갈매기들이 날지를 않고 해변가에 모여서 바람을 피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걷다가 보니까 오늘은 처음으로 두 코스를 갈 것 같다.
해변가를 지나면서 보니 사람이 살지 않은 집들이 많이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멋진 곳에 잘 지은 학교가 폐교된 곳도 있었다. 오래된 집 가운데 새로 잘 지은 집이나 깨끗하게 수리를 한 집들이 많이 보였다. 이런 집에도 인기척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도시에서 별장용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은 양포항에서 하룻밤 유숙할 생각이다. 양포항이 해파랑길 12코스의 도착지이다. 점심도 못 먹고 걸어온 길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온 거리이다. 31Km를 온 것이다.
양포항에 도착해 보니 배가 고팠지만 우선 숙소부터 구해야 했다. 숙소 구하기 힘들었다. 그 많던 펜션이 하나도 없었다. 한 포항이 그렇게 볼거리가 많거나 활성화되는 곳이 아닌 것 같다. 겨우 멀리 보이는 모텔을 찾아가니까 “당분간 휴업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민박도 보이지 않고 오늘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까 날씨가 더 추워지는 기분이다. 해는 저물고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다리는 아프지만 숙소를 찾아서 계속 다니다가 보니까 수협 3층에 여관이 있었다. 겨우 숙소를 정하고 나니까 허기가 몰려왔다.
여관 주인이 말하기를 “부산에서 왔어요” 물었다.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은 12코스에서는 이 여관을 찾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10코스가 끝난 읍천항에서도 늙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모텔에서도 걷는 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했다. 읍천항도 숙소가 귀했다. 그래도 내일은 다시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