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너무 춥다. 영하의 기온이고 바람이 많이 분다. 숙소가 바닷가에 있어서 방 안에서 일출을 보았다.
내가 가진 옷은 모두 껴입고 단단히 채비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 더 추운 거다. 걸으면 추운 것은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출발했다.
주전항까지 한참을 걸었지만 춥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걷는 길은 바로 밑에 파도가 보이고 세찬 바람이 요란한 파도 소리로 방파제를 때리고 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성난 파도란 표현에 어울리게 너무 요란스럽다. 이런 파도치는 바닷길을 우가항까지 한 시간 이상 갔다.
걷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가 일출은 벌써 지났고, 파도치는 바다를 촬영하는지 큰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연신 찍고 있다. 사진 촬영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아주머니 차림이 특이했다. 사진 찍는데 차림 하고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다. 머리는 시골에 농사하는 아주머니처럼 할머니 파머를 하고, 나이는 예순 정도로 보이고 옷차림은 주방에서 밥하다가 나온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이상해서 눈길이 갔던 것이다. 그런 차림에도 사진에 내공이 있는 고수일 수도 있지만, 보통의 눈으로는 어색했다. 그래도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바뀌어 보니까 멋있게 보였다. 저 아주머니처럼 용기 있게 살아야 행복도 쉽게 얻을 것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두꺼운 장갑을 꼈으나 손이 시려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간다. 그래도 한참을 걸으니까 몸에 온기가 돌고 걸음걸이는 원활하다. 그렇지만 바람결이 얼굴에 스칠 때는 춥다는 것을 느낀다. 이 나이에 이렇게 추운 날 전쟁 난 것도 아닌데, 걷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지금 나를 찾아서 뭐에 쓸려고 하는 것도 회의적이고 지금 마음은 필요 없는 짓을 공연히 하는 것 같다.
몸은 춥고 마음도 의욕이 없으니 마냥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간다. 습관적으로 걷고 머릿속에는 멍한 상태고 모든 것이 귀찮고 세상이 싫어진다. 사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래도 걸으면 덜 추우니까 걷는 것이다.
바람이 이렇게 부는 날 그것도 바닷가를 걷는 나를 보면 남들의 눈에는 개고생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나는 지금 개고생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당사마을에서 정자항에 이르는 5Km 이상 되는 구간은 “강동 누리길”이라는 명칭으로 대충 조성된 것 같은데, 우가 마을에서 우가 항 쪽 바닷길을 계속 가면 가로 그 길이다. 해파랑길 9코스 이 구간은 우가 마을에서 우가산 쪽으로 간다. 여기서 표지판을 잘 못 보면 강동 누리길 쪽으로 가는 것이다. 강동 누리 길은 바다가 길이지만 중간에 군에서 운용하는 해상 사격장이 있어서 해파랑길은 우가산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가는데 의의를 두면 되고 꼭 바닷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우가산을 넘거나 강동 누리길 해안 길을 따라오거나 만나는 곳이 제전항이다.
제전항을 지나서 계속 파도치는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보면 정자항이 보이는 넓은 해변에 도착한다. 이곳이 해파랑길 9코스의 도착지점이다. 다시 정자항을 지나서 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강동 몽돌해변이 나오고 그러고는 얼마 안 가서 울산 구간의 해파랑길은 끝이 난다.
정자항은 큰 항구이고 해변 끝이 가물거릴 정도로 길었다. 강동 몽돌해변은 큰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고 개발이 한창이다. 정자항을 절반 정도 지나다가 보니까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배낭을 메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간다. 배낭은 크기가 적당했고, 옷차림을 보아서는 해파랑길을 걷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계속 따라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어폰을 끼고서 앞만 보고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물거릴 정도로 멀리 떨어졌다. 사실 이런 길은 회복이 빠르고 힘이 있는 젊은이가 걸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이런 길을 걸으면서 미래도 설계하고 고생 뒤에 희망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는 너무 힘들고 이렇게 많이 걸으면 나이 든 사람은 무리가 가고, 골병 들 수도 있다. 또 너무 많이 써서 탈이 날 수도 있는 신체 부위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앞에 가던 젊은 여성을 다시 만난 것은 경주 길에서 만났다. 지경리를 지나서 해안 도로로 계속 가면 안 되고 위로 올라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이 여성은 표식을 못 보고 해안 도로로 곧장 간 것이다. 아마도 한참을 가다가 표식이 없으니까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돌아오다가 보니까 다시 만난 것이다. 다시 만났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멀어지더니 곧 시야에 사라졌다.
경주 길은 울산 길에서 계속 해안선을 따라오니까 경계 구분이 되지 않았고, 풍광이 비슷해서 구분될 이유도 없지만 바닷가 붉은 등대가 서 있는 방파제에 “경주바다 지경리”라고 쓰인 것이 보여서 경주로 넘어온 줄 알았다.
관성 해변에는 텐트가 해변가로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텐트만 친 것도 있고 차량과 연결해서 친 것도 있었는데, 마을에서 텐트 자릿세를 받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관리된다는 느낌이 왔다. 며칠 전에 지난 기장군 일광 해수욕장 가기 전 해변가에는 텐트가 해변을 따라서 엄청나게 설치되어 있었다. 좋은 나무와 바위 곁이나 풍광이 좋은 곳은 거의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관리하지 않고 그냥 상시로 설치한 것 같았다. 그 텐트 속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좋은 곳에 미리 설치해 두고서 휴일에 오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여 준다는 것이다. 미리 좋은 자리를 불법으로 선점한 것이다.
경주 양남의 주상절리는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이 주상절리 주변에 펜션이나 카페가 성업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불러 모을 정도의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이 해변길이 “주상절리 바람소리길”이라고 지어져 있다. 오늘 같은 날 바람 소리가 확실히 들리는 날이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소리가 아니고 소음인 것 같다.
오늘의 걷기도 끝나가고 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보이는 읍촌 항구에 도착했다.
이 읍천항을 처음 보는 순간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이 안쪽으로도 둥글고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고, 바깥에도 만들어져 있다. 주변도 둘러싸여서 조용하고 평화롭기까지 한다. 그래도 원자력 발전소가 바로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