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6일 차

by 안종익

물집이 잡힌 발가락은 걷기가 불편했지만, 계속 걸었더니 어느 정도 아픈 것이 적응이 되었는지 아침에는 걷는데 별지장이 없다. 출발을 위해서 밖으로 나오니까 영하의 기온이고 오늘이 입춘이지만 아직 추위는 여전하다. 바람 끝도 차가움이 여전했고 무엇하려고 이렇게 이른 아침에, 누가 하라면 안 갔을 길을 내가 원해서 가는 것이다.

아침에 도착한 명촌교는 갈대밭이 환상적이었다. 갈대가 황금빛을 띠면서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을 지나자 태화강 하구로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현대 단지로 가는 이 길은 5Km 이상 직선 길이고 현대에서 만들었다고 “아산 길”이라고 한다. 성내 삼거리까지 끝없이 가는 길은 아직 걷기에 힘이 있을 때 했으니까 크게 힘들다는 생각 없이 가는 길이지만 이 길을 마지막에 걸으면 엄청 지루하고 힘든 해파랑길 7코스 마지막 부분이다. 온종일 걸어서 힘이 거의 빠진 상태에서 왼쪽에는 차들이 계속 달리는 도로이고 오늘 쪽은 태화강이 계속되는 변화 없는 긴 직선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대교와 엄청나게 큰 공장 건물과 장난감보다 더 많은 차들이 선적을 기다리며 주차되어 있다.

이 코스 끝에는 성내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좌측으로 조금 더 가면 염포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까지가 해파랑길 7코스가 끝나고 8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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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코스는 시작부터 산행이다. 염포산(203m) 정상까지는 안 가지만, 8부 능선까지 올라가서 산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등산길은 넓게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염포산을 내려가다 보면 울산항과 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울산대교 전망대가 서 있다. 산길은 계속 이어지고 봉화대 거치고 더 내려가면 시내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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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항이 나타나면 오랜만에 바다를 만난 것이다. 진하해수욕장에 바다를 뒤로하고 산으로 들로 해파랑길을 걸어왔다. 방어진항은 방어가 많이 잡혀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고 슬도는 방어진으로 들어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섬이었는데 지금은 연결되어 있고 오직 등대만 옛 슬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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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도를 지나서 해변길을 계속 가면 대왕암이 나온다. 대왕암이 보이는 바닷길은 걷기도 좋고 풍광이 좋아 해파랑길의 진수이다. 대왕암에서 일산 해변으로 가는 길은 테크로 만든 길도 있지만 해안선을 따라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바닷물과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 깊은 해안과 출렁다리까지 있어 좋은 코스이다. 출렁다리를 내려다보는 해송은 100년 이상 되면서 크기와 자태가 눈길을 끈다. 일산 해변까지 이어지는 해송 길은 해파랑길 8코스의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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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포산에서 내려오다가 해파랑길을 걷는 직장인을 만났다.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휴일에 해파랑길을 코스별로 다닌다고 한다. 오늘은 8코스를 가는 길이라 만난 것이다. 해파랑길이 지루해서 배낭에 스피커 장치를 해 음악을 크게 들리게 해서 다니는 사람이다. 울산에 살기 때문에 현대그룹과 태화강에 대한 자랑을 많이 하면서 울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분이었다. 본인은 휴일 해파랑길 두 개 코스도 다녀 봤고, 한 코스도 다녀 보니까 두 개는 무리이고 하나는 부족한 느낌이라고 했다.

일행이 생기니까 지루하지도 않고 8코스는 수월하게 걸었다. 같이 가면서 대화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가니까 좋은 점도 있지만, 그래도 혼자서 생각하고 걷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이 해파랑길은 꼭 완주해야 하는 길도 아니고, 이 직장인처럼 구간마다 완주 스탬프를 찍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해파랑길은 생각하고 바라보고 정리하는 길이기 때문에 혼자 걷은 것이 좋다는 마음이다. 오직 혼자서 묻고, 대답하고, 외롭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걷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8코스가 끝나고 직장인이 일산 해변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는 것을 보고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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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가 되어서 9코스를 걸어간다. 8코스까지 130Km 걸어오면서 양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고생을 하고 있고, 어깨가 아팠던 것은 시작할 때 가지고 온 많은 물건들을 택배로 보냈기 때문에 이제 견딜 만하다.

오늘 아침에 출발하면서 갑자기 기억이 나는 것이 몇 년 전에 족저 근막염으로 아픈 적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반년 정도 아프다가 좋아져 지금은 아픈 줄 모르고 지내고 있는데 앞으로 너무 걸으면 도질 것 같은 기분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그날이 오면 걷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신체는 한 곳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데 곤란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지금 신체가 고장이 날 나이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것이다.


해파랑길 9코스의 시작은 일산 해변에서 좌측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 가다가 우측 도로를 따라서 계속 간다. 이 도로도 긴 일직선으로 된 도로 길이다. 오른쪽이 현대중공업이 4Km 이상 위치하고 있는 대단위 공단인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은 길이기도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공장 담벼락이 있는 길이다. 이 길을 가다 보면 중간중간에 게이트가 있어서 문을 지키는 수위들과 문을 통해서 공장 건물이 보인다. 이 길도 지루하지만 마지막에는 아파트로 들어가서 봉대산으로 올라간다. 봉대산 자락에 자리한 남목마성을 지나 삼거리와 주전 봉수대를 거쳐서 망양대에 이르기까지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산길이다.

울산길은 바닷길보다 산길이 더 많은 느낌이다. 산속에서 지쳐갈 무렵이 되어 바다가 보이는 산길을 내려왔다. 주전 가족 휴양지에 도착한 것이다. 가족단위의 텐트와 캠핑카가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묵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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