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5일 차

by 안종익

아침에 선암호수 공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까 날씨가 몹시 추우니까 걷기 싫어졌다. 그래도 걸으려고 나왔으니까 출발은 했지만, 마음은 따뜻한 이불속에 있다가 점심때쯤에 나오고 싶은 날이다.

시작부터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한참을 오르니까 바람결이 차지만 몸에는 땀이 나고 숨도 차면서 춥기보다는 오르막 오르기가 더 힘이 들었다. 이렇게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라 금방 올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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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을 내려가면서 앞으로 산이 없는 도심 길일 것이라는 예상을 해본다. 그런데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솔마루길이 시작된 것이다. 중간에 이정표를 보니까 거의가 산길이다. 그렇게 높지 않지만, 오르막을 올라서 정상에 오르면 내려가고 이런 산행길이 반복되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산길이 거의 등산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울산대공원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이제 산길은 끝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대공원을 옆으로 지나는 산길이다. 수도 없이 고개를 넘어서 솔마루길이 끝나는 표지를 보고서 등산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태화강 전망대까지 고개를 몇 개나 더 넘어서 태화강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렇게 넘어온 고개가 열 개 이상 넘었고, 거의 10Km 정도를 등산했다. 전망대에서 본 태화강과 울산 시내가 날씨도 맑고 풍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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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은 해파랑길 5코스 울산 시내 동네 산책길이지만 리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끔 스티커나 표지판은 있지만 방심하면 엉뚱한 길로 갈 수 있다. 스티커가 가리키는 곳으로 한참을 가도 리본이나 다른 표식이 안 보이면 돌아와서 다른 길을 가보기도 한다. 등산길이라 갈림길도 많고 샛길이 있어서 그런 곳이 여러 번 있었다. 리본이 없어도 야산 길이라 찾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샛길이 많아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코스이다.

어제까지 바다를 보다가 계속 산속을 가니까 숨만 차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고 힘든다는 생각뿐이다. 해파랑길은 해와 푸른 바다를 보고 걷는 길인데,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는 등산길을 해파랑길에 포함 시 겼는지 혼자서 불만도 해본다. 한 고개를 넘으면 끝날 줄 알았던 길이 끝없는 고개가 나오니까 영 걷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까 별것도 아닌 것도 불만이다. 솔마루길에 설치된 야간 산책 등은 돌고래 모형이다. 울산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은 들지만, 이 돌고래 산책등이 어떤 것은 길을 보고 돌고래가 인사하는 모양으로 서 있고, 어떤 것은 반대로 서 있는 것이다. 이런 것도 걷기가 힘이 드니까 불만사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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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너무 많이 내려가도 불안했다. 많이 내려가면 그만큼 많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불안한 것도 흔치 않다. 워낙 고개가 많아서 온종일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해파랑길에 이런 코스는 유격훈련처럼 힘든 걷기에 속하지만, 그래도 색다른 코스이고 여름에 왔다면 솔향기 부는 이 길이 참 좋은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 산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걷다가 보니까 평길이 나왔다.


태화강 전망대에서 태화강을 따라 걷는 길은 거의 직선이었다. 시원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쌀쌀하게 느끼는 날씨지만 많이 걷고 있었다. 역시 울산은 태화강이 대표적인 것 같다. 어제 걸은 회야강은 여기에 비하면 샛강인 느낌이다. 태화강을 한참 걸어서 내려가 삼호교 옆에 있는 인도교를 건너서 다시 태화강 반대편으로 올라오는 코스이다.

삼호교 부근에서 그동안 무겁게 매고 다닌 배낭에서 최소한의 물건만 남기고 집으로 보냈다. 여분의 속옷과 양말과 노트북 외에는 거의 정리했다. 앞으로 필요하면 구입할 생각으로 거의 보냈는데 무게가 무척 가벼워졌다. 배낭의 물건처럼 만약을 대비해서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가지고 다니는 마음의 짐은 이 해파랑길에 놓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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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길은 길고 멀었다. 건너편을 걸으면서 한참을 가니까 대밭이 나왔다. 2Km 정도 될 것 같은데 십 리 대밭 길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끝없이 대나무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태화강 국가 정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국가 정원교를 지나서 번영교에 이르는 길도 거의 일직선이다. 걷고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고 계속 걸으니까 발가락의 물집만 아파졌다. 중간에서 발이 너무 아파서 한참을 쉬었다. 이렇게 쉬어 주어야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산에서 걷을 때 압박받는 발의 부위와 평길을 걸을 때 받은 부위가 확실 다른 것 같다. 산길에서는 발가락이 덜 아팠으나 평길을 걸으니까 발가락에 압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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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도 가장 위치가 좋은 곳에 태화루가 자리하고 있다. 해파랑길은 태화루를 지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올라보니까 울산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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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를 지나서 한참을 가니까 야외 빙상장이 있었다. 빙상장에는 거의 젊은 사람들과 어린 학생들이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에는 온통 웃음뿐이다. 날씨가 오후가 되어서 영상으로 올라와 빙상의 바닥은 약간 녹아서 빙질이 눈으로 봐도 별로인 것 같은데, 그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놀고 있는 모습들이 즐거워 보인다. 희망이 가득한 청춘들이다.

한참을 구경하면서 나도 같이 환하게 웃어 보기도 하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즐기다가 다시 걸었다.


단조롭고 그렇게 표식을 찾을 필요가 없는 직선 길은 걸으면서, 사는 것이 별로 흥미 없고 의미를 찾아도 특별한 것이 아닐 것 같았다. 그냥 여기까지 잘 살았다고 간주하고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조용히 지내고 싶어졌다. 물론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내 자식들은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잘 되는 것은 나의 희망사항이지만, 혹시 남보다 불쌍하게 살까 봐 걱정이다. 보통이라도 살아가게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생각 하니까 갑자기 눈물이 난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고 행복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식들은 남보다 못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걷다가 보니까 앞의 길도 끝이 보이지 않지만, 지난 온 길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태화강을 끝까지 가서 바다를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내일도 태화강 끝에서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서 다른 길로 바다를 간다.

오늘 마지막 길은 갈대가 끝없이 서 있는 명촌교 밑에서 걷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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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 물집은 이제 아프다가 적응이 되어가는지 덜 아프다. 대신에 허리가 뻐근해진다. 몸이 여러 곳에서 신호를 보내지만 조심해서 사용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매일 걸으니까 생각은 많지만 별로 즐거움은 없다. 그래도 걷기를 마치고 저녁에 그 지역 막걸리 한잔하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다. 오늘은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었다. 숙소에 가는 길에 치킨을 한 마리 하고 이 지역 막걸리인 태화루 막걸리 한 병 사다가 저녁 대신에 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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