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의 방바닥은 전기장판을 깔아서 따뜻한데, 집을 지을 때 단열재를 쓰지 않았는지 외풍이 심해서 외투만 벗고 나머지 옷은 입고 잤다. 그러니 깊은 잠을 못 자서 아침에 일어나니까 몸이 무거웠다. 샤워장이 너무 추워서 씻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세수만 하고 출발했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걷기 시작하니까 몸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계속 걷다가 보니까 14코스도 끝나고 15코스도 다 걷고 16코스는 중간보다 더 많이 걸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어서 중간에 그만 걸으려고 숙소를 찾았으나 적당한 곳이 없어서 계속 걸은 것이다. 마지막에는 걷지 않을 수 없는 구간이어서 걸은 것이다.
몸도 피곤하고 빨리 숙소를 잡아서 쉬고 싶은데, 예약한 숙소를 택시 기사가 엉뚱한 곳에 내려주어서 숙소를 찾아 걸어 가는데도 한참을 걸었다. 겨우 숙소의 위치를 알아서 가다가 보니까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유명한 순대 국밥집이 보였다. 들어가고 싶지만 일단 숙소를 찾아야 되니까 부지런히 걸어가서 숙소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들어가려고 하다가 그 순대 국밥집이 생각나서 다시 다리는 아프지만, 한 그릇하고 쉬려고 약간 멀리 왔지만, 지친 다리를 끌고 힘들게 갔다. 옛날에 먹던 순대 국밥을 한 그릇 먹으면 피로가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온 순대 국밥집이 오늘 쉬는 날이다. 엄청 실망스러웠지만 돌아오다가 뼈해장국집이 있어서 그곳에 들어갔다. 그때 시간을 보니까 아침부터 걸은 시간이 9시간이 넘었다. 어떻게 하다가 보니까 분명 무리를 한 것이다. 몸에서 지친 반응이 올 것 같은 예감이다. 기분도 그렇고 해서 이 고장에서 만드는 맛있는 막걸리를 한 병을 시켰다. 그런데 그 막걸리는 없고 다른 막걸리도 한 종류밖에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시켰는데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내가 싫어하는 막걸리이다. 막걸리는 오래 유통되는 것보다 그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을 나는 선호한다. 그 지방마다 독특한 맛이 있어서 좋은 것이다. 선호하지 않은 막걸리도 한잔 먹으니까 시원하고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다무포 고래마을에서 출발한 14코스에서는 해안선 길을 따라서 계속 걸었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강사 마을의 작은 항구와 다보 마을의 항구를 따라 해안 길을 따라 걸었는데, 929번 지방 도로와 호미곶항까지 겹치는 구간은 없었다. 호미곶까지 지방 도로 밑의 해안선 길을 따라 해파랑길이 있었다.
호미곶의 해맞이 광장에 도착하니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상생의 손이다. 이 호미곶 광장이 14코스 종점이면서 15코스가 시작된다. 상생의 손은 지면을 통해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갈매기가 손가락에 앉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갈매기 앉지를 않는다. 그런데 해변 태크로 만든 길 끝에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소년도 동상이 더 인상적이다. 아이의 손가락에는 희망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손가락을 이곳에 온 사람들이 너무 만져서 반질반질했다.
호미곶을 지나서 호미항까지 잘 정비된 테크 길을 따라서 계속 가면, 독수리 바위가 나오고 악어 바위도 나온다. 이곳은 아직 정비되지 않은 해안 길이 볼만하고 일부 구간은 지방도와 같이 가는 구간도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가 승천한 곳이라는 구룡소는 용이 있던 곳이 바위가 움푹 팬 자국이 있다고 했는데 찾지 못했다. 안내판과 같은 곳은 보이지 않았지만 구룡소에서부터 산길이나 해안 길이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 너무 좋았다. 구룡소에서 장군바위에 이르는 중간에 해안 길이 자연 그대로인 구간이 있다. 이곳은 자갈과 모래 굵은 바위의 긴 구간이지만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페트병은 최고로 많았고 그 종류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 있는 해안 길이다.
먹바위에서 선바위 구간에는 해변가 바다 위에 잘 정비된 테크 길을 따라가면 갖가지 바위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있고 해국이 지금은 겨울이라 말라 있지만 해국 철에는 볼만할 것 같다. 이 구간도 아직 정비되지 않은 해안 길이 많았고 어느 정도 정비된 곳도 거의 해안선과 같이 정비를 해서 걷기가 너무 좋았다.
중간에 있는 하선대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바위섬으로 선녀들이 내려와서 놀았다고 해서 하선대라고 한다. 동해의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초청하여 이곳에서 놀았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선녀를 왕비를 삼고 싶었으나 옥황상제가 허락하지 않아서 바다를 고요하게 하는 등 인간을 위해서 일하자 옥황상제가 감복하여 허락해 왕비로 삼았고, 용왕과 선녀가 자주 이곳에 놀러 온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이곳에서도 한참을 더 가면 선바위가 나오면서 해안 길이 끝이 난다.
발산항이 나오면서 15코스도 마지막 부분으로 가는데, 대동배 2리에서 대동배 1리에 이르는 구간은 산으로 안내하지만, 해안선 길을 따라서 가면 되는 길이다. 산길보다는 해안 길이 걷기도 좋고 정비도 잘 된 길이다. 이 구간은 포항시에서 안내하는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이기도 하다. 해파랑길 15코스가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의 3, 4코스에 해당한다. 홍환마을 보건소 부근이 15코스 도착지점이다. 15코스는 자연적으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해안 길이 멋있는 곳이고, 테크로 만든 해안 길도 잘 정비된 길이다. 도로 밑으로 해안선을 따라서 어느 정도 정비된 길도 걷기나 풍광이 좋게 조성되어서 해파랑길 15코스는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고 해와 푸른 파도를 보고 걷는 해파랑길의 의미와 꼭 맞는 길이다.
15코스를 오면서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어서, 앞으로 식당이 없는 것을 대비해서 간단한 것을 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홍환 마을에 오니까 식당이 있었다. 식사 후에 해파랑길 16코스를 다시 시작했다. 이 코스도 해안을 따라서 잘 정비되어 있었다. 포항 시내가 가까워질수록 정비가 더 잘 된 느낌이다. 다리도 아프고 힘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적당한 숙소가 보이지 않아서 계속 걸었다.
일단은 연오랑세오녀의 테마공원까지 가서 오늘 걷기는 마치기로 하고 걸었다.
연오랑세오녀의 테마공원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설을 토대로 포항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잘 만들어져 있었다. 위치도 좋고 바다가 너무 넓게 보이는 곳이다. 여기서 오늘 걷기를 끝내야 하는데 멀리 도구해수욕장이 보이니까 거기까지만 가기로 했다. 도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직선 길이지만 먼 길이었다. 그런데 도구해수욕장에서 그만했어야 했는데, 백사장 끝이 보이니까 그 백사장 끝까지는 가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아무리 가도 보이는 끝이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지쳐서 그런 느낌이 더 왔을 것이다. 이곳은 군 부대길이어서 중간에 빠지는 길도 없었다.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힘이 들어서 두 번이나 쉬었다. 또 이곳은 도구 해수욕장이기도 하지만 군부대에서 상륙훈련을 하는 백사장이기도 했다. 그래도 백사장이 끝나고 돌아섰다.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끝난 것이 아니었다. 또 이십여 분 더 걸어서 군부대 북문 입구에서 끝났다. 결과적으로 포항시에서 만든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1, 2코스도 완주한 것이다. 오늘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두 시간 이상 더 걸어서 힘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