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파랑길 11일 차

by 안종익

걷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코스코 담장을 만났다.

담장을 따라 일직선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울산에서 현대중공업 담장처럼 그렇게 길게 만들어져 있다. 우측에는 코스코 담장이고 좌측에는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이다. 아침이지만 차량이 많이 다닌다. 코스코 담장은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담장이 아니라 나무를 심어 만든 나무 울타리이다.

SE-fb03afa3-0416-431c-b432-d7049e1e30ca.jpg?type=w1

담장을 따라서 한 시간 정도 걸으니까 형산강 하구가 나온다. 형산강을 건너는 다리도 끝이 가물거릴 정도로 길다. 형산강 다리를 건너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다시 걷는다.

이제는 형산강을 따라서 난 길을 걷는다. 우측에는 형산강과 수변공원이고 물론 형산강을 넘어서는 코스코의 거대한 굴뚝들이 서 있고, 좌측은 차가 다니는 도로이다. 이 형산강 길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길이 일직선이라서 해파랑길 표시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SE-998ab7a7-8144-4af7-8a3b-b0c4d390bbde.jpg?type=w1

형산강 길이 끝나고 다시 좌측으로 돌면 송도 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진다. 이 구간도 일직선 구간으로 계속 걷기만 하면 된다. 이 송도 해수욕장이 시작하는 곳에서 16코스가 끝나고 17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SE-d8ff99aa-5d8b-4233-9067-0cb250e2c58e.jpg?type=w1

송도 해수욕장을 한참 걷다가 보면 S 모형의 전망대에서 좌측으로 해파랑길이 표시된다. 좌측으로 도로를 건너서 시내로 들어가면, 얼마 가지 않아 큰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동빈 큰 다리인데 여기서는 포항의 구항이 한눈에 보인다.

SE-714cecb3-d803-42ae-81e7-08cc26160cf8.jpg?type=w1

다리를 건너서 우측으로 구항 길을 따라서 계속 내려가면 포항 여객선 터미널을 끝으로 이번에는 좌측으로 길이 나 있다. 좌측에 보이는 곳이 영일대 해수욕장이고 이 길도 직선 길이다. 영일대 해수욕장이 끝나는 데까지 거의 직선 길을 가면 되니까 길을 찾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구경이나 생각에 잠기면 되는 구간이다.

어제까지 계속 해변길을 걷다가 오늘 오전은 시내 길을 걸어 보니까 또 다른 느낌이고 포항은 바다와 해수욕장과 큰 공장을 가진 큰 도시인 것 같다.


해파랑길을 이제 절반은 오지 못했지만, 300킬로 가까이 걸어왔다. 나를 돌아보고 의미를 찾으려고 시작한 길이지만 아직까지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고 다리만 아프다.

아마도 해파랑길을 끝까지 걸어도 느낌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젊은 나이도 아닌데 너무 많이 걷는 것은 무리이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지만, 계속 걷고 있다. 일단 시작했으니까 그냥 가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해파랑길을 걷는 것이 인생길과 비슷하다. 인생도 시작되었으니까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으니까 살아가는 것이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나를 돌아보고자 하지만, 돌아봐야 바뀌지 않은 과거사들이고 그것들은 돌아보는 것은 다시 희망을 갖는데 의미가 있지만, 이 나이에 희망을 갖기란 욕심인 것 같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는 것도 이제까지 찾지 못한 것을 이 해파랑길을 걸어서 찾을 가능성보다는 지금처럼 계속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지금까지의 느낌은 앞으로 조용히 살면서 남의 시선도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의미 있게 살려고 고뇌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불편을 주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도 어느 정도 할 만큼, 살 만큼 살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할 것 같다.


이제까지 많은 해변과 항구를 지나와 보니 고기 잡는 어부들은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조용하고 작은 항구마을에 정착해서 고깃배를 타고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이다.

처음에는 작은 빈집을 얻어서 거처를 마련하고, 주변에 일손이 부족한 어부의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돕다가 고기 잡는 법을 배우고, 주변의 사람과 익숙해지면 작은 배를 하나 사는 것이다. 그리고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새로 터전을 마련한 항구에서 그냥 웃으면서 내 목소리는 하나도 내지 않고 바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나를 찾을 사람도 내가 해야 할 일도 없으니까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내일은 고기가 얼마나 집힐까만 기대하면서 사는 것이다.


환호 해상공원을 지나서 축천항에 이르는 구간에는 미역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구간은 코스코가 건너다 보이는 해변으로 간간이 해녀들도 보인다.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도 지금은 미역을 채취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얕은 바다에서 들어가 미역을 채취하기도 하지만,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방파제에서 긴 낚싯대 끝에 갈고리를 만들어서 해변가로 떠 내려온 미역을 채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파도에 미역이 해변가로 밀려오는 것이 상당히 많았다. 미역을 채취하는 사람들은 부근에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복장으로 봐서는 시내에서 온 사람도 있는 것 같다.

SE-e52cbd89-a3d9-403a-bf37-6c18ed5b018e.jpg?type=w1


축천항을 지나면 오늘도 점심 해결이 어려울 것 같아서 축천항 부근 식당을 찾았다. 혼자 들어가니까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거절을 두 번 당하니까 마지막 집에 가서는 불쌍한 표정으로 부탁을 하니까 불쌍한 것으로 전달되었는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주인이 정해 준 물회 한 가지뿐이라고 했다. 돈 주고 사 먹는 점심도 이렇게 힘든 곳이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나는 좋은 사람의 덕목은 친절과 배려인 것 같다.

SE-c081277f-38b5-412a-be7f-a0d63e3ede6e.jpg?type=w1


발가락에 잡힌 물집은 저녁 숙소에 도착하면 마사지도 해주고 필요한 약도 발라서 많이 호전되었다. 매일 아침에 출발 전에 아픈 발가락은 미리 밴드를 붙여서 보호하니까 도움이 많이 되었고, 걸을 만하다. 이제는 오후 늦게 걸을 때는 발바닥 전체가 아파진다. 그래서 두 시간 정도 걷고는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풀어 주고 있다. 발바닥이 아프지 않아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데 늘 신경이 쓰인다. 숙소에 도착하면 발에 온 신경을 쓰는 중이다.


영일만 신항은 넓은 도로와 국제 컨테이너터미널을 자리하면서 칠포해수욕장까지 해안선 길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칠포해수욕장까지도 거의 직선 해안 길이다. 오늘은 직선으로 걷는 곳이 많아서 지루한 코스이다.

SE-8bf7cbf6-6ed1-4de0-979c-42542089af31.jpg?type=w1


칠포해수욕장이 17코스 도착지점이다. 해수욕장은 파도에 모래 유실이 많아 백사장 상태가 엉망이고 해수욕장이 썰렁하다. 부근에 있는 해변 비치 호텔에서 오늘 밤을 쉬려고 했지만 호텔이 문을 닫았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염치 불고하고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물어보니까 앞에 언덕을 넘으면 숙소가 있다고 했다.

낮은 언덕이지만 역시 하루를 마치는 걸음이라 힘이 들었다. 언덕을 넘으니까 민박집이 나왔다. 멀리는 다른 민박이나 펜션도 보였지만 첫 번째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에게 물어보니까 칠포항이라고 했다.

SE-04ba51dd-f8e7-480f-b4f5-06eee4142067.jpg?type=w1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해파랑길 10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