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읍에서 아침에 오늘 기상을 들어보니까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어제 구입한 비옷을 준비해서 나왔는데 해가 뜨고 있었다. 날씨도 포근하고 걷기에 좋았다.
처음부터 농로 사이로 출발해 산길로 들어가 산속에 난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몸에 땀이 날 정도로 걷다가 보니까 바다가 나오고 예쁜 사동항이 나온다. 하늘은 햇살이 있지만 바다는 파도가 높아서 오늘도 바다에는 고기잡이 배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잠시 보고 또 산길을 들어선다. 이번에는 그렇게 오래지 않아서 다시 바다 해안 길이 나온다. 망양 해변의 모래와 방파제와 같이 걷다 보니까 망양정 옛 터라고 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바로 위에 망양정이 복원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해안 길을 망양휴게소까지 심하게 치는 파도 소리와 같이 걸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나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걷는 것은 아니라 내 처지를 바로 알고 앞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후회하는 일 없이 살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걷는 길이다. 세상 사람들은 가치 없다고 해도 상관없는 나의 자존감을 찾고 세우려고 이 길을 걷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영악하게 사는지를 깨달아야 하고 모두가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것이고, 가족의 소중함도 아는 기회를 갖지만, 가족조차도 본인을 우선으로 살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 쉽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때로는 남보다 못한 지경에 갈 수도 있다.
남이 불쌍해 보이기 전에 내가 불쌍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남의 삶과 성과에 자신을 비교할 필요 없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보살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려고 걷는 것이다.
편하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그 속에서 행복도 오고 보람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다. 편하고 쉽게 생각하고 살다가는 오히려 사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끝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존경을 받는 삶이 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앞으로 체력은 떨어지지만, 사는 것을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명분도 걷는 이유 중에 있다.
걸으면서 명분이 있는 생각도 하지만, 앞으로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 과거의 나쁜 일은 깨끗하게 잊겠다는 생각, 타인의 관심을 받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 작은 행복에도 만족하면서 살겠다는 생각, 범사에 감사하면 사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 이렇게 걷는 것은 개고생하고 있다는 생각, 걸어봐야 얻는 것은 없고 골병만 든다는 생각, 앞으로 보기 싫은 주위 사람들은 다시 보지 않겠다는 생각, 섭섭하게 했거나 감정이 있는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 나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오만가지 마음으로 걷지만, 결론을 얻을 수 없는 여정이고 이것도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망양정로 길을 가는 동안 지나는 차량이 거의 없다. 이 도로는 전국 자전거 일주 도로이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자전거도 없다. 물론 주위에 사는 주민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난 며칠간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너무 날씨가 추워서 해파랑길은 아직 걷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사는 것이 힘이 든 모양이다. 이렇게 혹한에서 출발해서 아직도 바람결이 차가운 기운이 완연한 가운데서 걷고 있는 것이다.
오산항을 지나서 계속 걷고 있는데 오늘은 한 번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아직도 바다와 접한 해안 길을 걷고 있다.
생각은 많지만 시원한 답은 없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오늘도 준비한 것으로 먹을까 한다.
그런데 해안 길 옆에 보통 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주위에 다른 건물은 없고 식당 건물만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장사하지 않는 집이라 생각하고 지나 치려고 했는데, 안에 식사하는 사람이 보였다. 들어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식사되냐"라고 물어보니까 현금 주면 밥 준다고 한다.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시켜서 먹었다.
점심을 먹고 또 해안선 길을 따라서 걷는다. 멀리서도 잘 생긴 바위가 보인다. 아마도 이름 있는 바위일 거라는 느낌이 와서 가보니 “촛대바위”이다. 수 십 년 전에 이 해안 도로를 만들 때 살라질 위기도 있었지만 보존이 되어서 지금은 꼭대기에 소나무가 촛불처럼 보여서 촛대바위라고 하고 있다.
촛대바위에서 2Km 정도 더 가면 망양정 해맞이 공원이 나온다. 이곳에 여러 좋은 시설을 울진군에서 조성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고 울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가장 볼만한 것은 “망양정”이다.
이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해맞이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원래 기성면 망양리에 위치하던 것을 조선 후기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망양정을 내려와서 왕피천을 따라서 직선 길을 계속 가면 울진읍의 초입에 해파랑길의 25코스의 도착지이다. 여기서 다시 26코스가 시작되는데 왕피천의 하구로 연결된 해송 길을 따라서 왕피천 유원지를 돌아보는 코스이다. 이 길을 다 돌아보고 울진 읍내에 오늘은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조모님의 기일이다. 작년부터는 모친이 계시지 않으니까 내가 기일이 되면 이날을 준비한다. 객지에 나왔지만 과일과 포와 시장에 가서 간단한 전을 준비하고 술 한 잔을 올렸다. 할머니도 영원한 내 편이었는데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지금보다 내 편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사는 날까지 조상님들의 기일은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