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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7일 차

by 안종익


오늘은 쉬지 않고 걷기만 했다.

해파랑길 26, 27, 28코스를 이어서 걸었다.

울진읍 내에서 출발한 26코스는 울진의 체육공원과 연호정을 거쳐서 걷다가 보니까 바다가 보였다. 대나리항의 입구 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산길을 걷다가 바다를 보니까 색다른 느낌이 왔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전봇대와 전선줄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보이는 뷰는 전봇대와 전선줄이 없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지만 어디 가서 사진 찍어도 이 두 가지가 꼭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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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항까지 긴 해안 길을 걷다 보면 멀리 죽변항이 보인다. 이 코스는 죽변항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 정도로 특징이 없는 구간이다. 죽변항 입구의 작은 집이 죽변 시외버스터미널이고 26코스 도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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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코스를 출발해서 조금 지나다 보면 500년이 넘었다는 후정리 향나무가 있고 죽변항과 죽변등대공원을 구경하고 죽변을 벗어나면 들길이 나온다. 들에는 보리가 많이 심어져 있다. 주위는 농사짓는 시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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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들과 산으로 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이 코스는 이렇게 들과 산을 걷다가 보면 울진 북면에 도착하는 코스이다. 북면에 도착하면 27코스가 왜 들과 산으로 정해진 것인지 이해된다. 해안 길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아침에 걷기를 시작하면서 걷기도 쉽지 않지만,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는 것을 한마디로 한다면 “인생은 고해다”라는 표현이 옳은 것 같다.

걸으면서 느끼는 심정은 살아가는 의미도 의미 없고, 세상 모든 일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그냥 한참을 걷다가 보면 마음의 느낌이 서서히 바뀐다. 그래도 의미 있게 살아야 할 것 같고 나 자신을 위해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까지 생각하게 된다. 걷는 것은 분명 긍정적으로 마음이 변하는 효과가 있다. 걸으면 좋은 아이디어와 마음의 안정과 육체적인 건강에 도움 된다는 말은 걸어보니까 실감한다.


해안 길을 걷다가 보면 걷기 좋은 길이 있다. 해안 길에 떨어진 해송의 낙엽을 밟고 걸을 때이다. 해안 길 옆에 서 있는 해송에서 낙엽이 떨어지면 차가 지나다니면서 한쪽 가장자리로 낙엽들이 밀려서 가장자리에 낙엽이 약간 뚜껍게 쌓인 도로나 해수욕장 길에 해송의 낙엽이 떨어져 쌓인 곳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면 낙엽의 두께가 있어서 푹신하고 신발을 딛는 감각이 편안하다. 실제로 이런 길을 걸으면 발바닥이 덜 아프다. 그래서 이런 곳이 나오면 해송의 낙엽이 쌓인 곳을 밟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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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북면에서 출발한 28코스는 석호항을 지나면 나곡해수욕장이 나온다.

나곡해수욕장에서 고포까지는 계속 옛 7번 국도를 따라서 해파랑길이 나 있다. 고포마을은 울진과 삼척의 경계선에 있는 마을이다. 이 고포마을의 고포 미역은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이름있는 미역이다.

울진의 고포마을은 나곡 6리이고 삼척의 고포마을은 원천 2리이다. 고포마을은 마을 중간이 경북과 강원의 경계인 것이다. 바로 앞집에 전화해도 지역 번호가 다르고, 앞에 사는 형님 집도 지역이 다르다.


나곡 해수욕장에서 시작한 오르막 도로가 그렇게 급경사는 아니지만, 은근히 걷기에는 숨이 차다. 아무리 걸어도 오르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걷다가 지쳐서 도로 가장자리에 앉아서 배낭을 벗고 쉬었다. 주변에 민가가 한 채 있었는데 개가 얼마나 짓던지 그 집 주인이 나와서 나를 한참이나 살펴보고 들어간다. 오르막길 정상에는 배롱나무 동산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 배롱나무가 경북의 꽃으로 지정된 것 같다.

그렇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오르막도 끝이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강원도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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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원도 삼척에서 고성까지의 낭만가도에 들어온 것이다. 여기에서는 “갈랭재”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그렇게 울진에서 오르막 도로가 긴 것은 갈랭재를 올라왔기 때문이다.

갈랭재에서 내려가는 해파랑길은 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산길로 내려간다. 이 산길은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 산속의 오솔길이고 어떤 곳은 토끼 길 같은 곳도 있다. 그래도 길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고 리본이나 표시가 잘 되어 있었다. 해파랑길 표시뿐만 아니라 그동안 다녀간 동우회나 개인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의 리본까지 달려 있었다. 내려가는 산길이라 힘들지는 않았다. 이 길을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걷기 좋은 길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많이 갖춘 길이었다. 계속 산속을 가다가 내려간 마을이 월천리였다. 이 마을에 내려오니까 멀리 원덕읍도 보이는 것 같다. 월천리 마을을 지나다 보니까 잘생긴 적송이 한그루 서 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이 나무도 수령이 500년이라고 쓰여있다. 죽변 후정리 향나무도 500년이더니 특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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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코스의 도착지는 호산버스정류장이다.

오늘은 해파랑길 3개 코스를 걸었다. 아침부터 한파가 온다고 했는데, 점심 먹고부터 바람도 많이 불고 추위를 느끼겠다. 아직은 봄이 먼 것 같은 느낌이지만, 오늘이 정월 대보름날이다.

오늘은 원덕읍에서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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