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항의 아침은 바쁘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활기가 찬 아침이다. 주문진항을 출발해 주문진 등대공원이 있는 곳으로 오르막을 오른다. 바닷가에는 흰색이 많이 사용하고 흰색이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흰색 등대 주변의 집들은 흰색을 많이 칠하는 것 같다. 주문진 등대에 올라가는 곡목 길에 벽화가 아니고 그림들을 벽에 전시한 것이 특이했다.
등대에 올라 바라본 동해는 푸르고 넓어서 또 하루를 선물 받은 것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등대를 내려와 주문진 해변을 걸을 때 모래사장 그네에서 이른 아침이지만, 그네 타는 아이와 밀어주는 엄마의 풍경이 평화롭다. 저렇게 어린아이 때가 귀엽고 좋은 시절이었는데, 시간은 너무 빨리 갔다. 아이들은 보살펴 줄 수 있을 때가 좋은 때였다.
주문진 해변을 지나서 얼마 가지 않아 양양군의 표지판이 나온다. 그래도 해안 길은 계속 이어져 지경리 해안 길과 원포리 해안 길은 거의 국도와 나란히 오다가 바닷가 해변으로 들어간다. 양양에 들어와서 첫 항구인 남애항이 나온다. 남애항은 항구도 아담하지만, 주변에 식당도 많고 특히 포장마차 형식의 횟집이 밀집해서 있다. 국도 바로 옆에 있어서 찾기 쉽고 들어가기 쉬워 관광객이 많았다.
남애항
휴휴암은 남애항을 나와서 국도와 같이 한참을 걷다가 국도를 야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니까 해안이 보이지 않더니 곧바로 돌아서니까 바다와 아름다움 해안이 보인다. 그곳에 거대한 불상과 절집이 있다. 바닷가에 접해 있고 친근한 인상을 주는 휴휴암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신도도 있지만, 대다수가 관광객들이다. 그렇게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지만 위치가 좋아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죽도는 인구항 앞에 있는 육지와 붙어 있는 작은 산이다. 이 산에 오르면 죽도 해수욕장과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이곳에 죽도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에 이곳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정자이다. 죽도정은 새소리 바람 소리도 쉬어 간다고 한다.
죽도의 계단을 내려와서 돌아서면 바다가 나오는데 이곳이 서핑의 메카인 죽도 해변이다. 이 추운 날씨에 서핑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걷기도 추운데 바닷속에는 얼마나 추울까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도 춥지 않기에 타고 있을 것이다.
죽도 해변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걷다가 우연히 해변가에 있는 작은 호텔이 보였다. 호텔 규모는 작지만, 객실이 통유리로 되어서 바다와 서핑하는 곳이 잘 조망되는 될 것 같은 호텔이다. 평소와 달리 저런 곳에서 젊은 시절 연인과 함께 유숙하면서 통유리를 통해 바다와 서핑하는 것을 구경도 하고, 여유 있게 차 한잔했던 추억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그런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것이다.
젊은 날의 열정이나 활력 있는 성취감을 가지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이제는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사소한 즐거움을 찾으면서 살 궁리를 해야 할 때이다. 아직도 낭만을 찾아서 다니거나 그런 감상적인 것보다 현실적인 만족에 감사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나도 그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죽도 해수욕장에서 42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여기서도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옆에 있는 국도와 같이 오랫동안 걸었다. 해변을 따라서 펜션이 너무 많아 손님들이 있을까 염려도 되지만, 펜션 주차장에 차가 주차해 있는 것을 보면 손님은 있는 것이다. 10시가 넘으니까 펜션의 손님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 곳이 여럿 보였다. 대게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 많고 특히 젊은 남녀들이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간간이 가족들도 보인다. 펜션도 그렇지만, 해안에 캠핑카와 텐트를 치고 유숙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차박 하거나 텐트 치기에 경관이 좋은 곳은 주민들이 자릿세를 받는 것 같다.
해안 길을 따라서 가다가 보면 38선이 나오고 이곳에 휴게소가 서 있다. 이것을 보니까 비무장지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 난다. 동해안의 해안 철책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남애항을 지나면서 해안에 철책이 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해수욕장과 항구를 몇 개 지나서 하조대로 갔다. 하조대는 도로에서 바닷가로 많이 들어가야 있다. 들어가는 길이 은근히 멀고 지루하지만 하조대는 기암괴석과 경관이 좋은 곳에 위치했다. 하조대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운둔하며 혁명을 도모하던 곳이라고 한다. 하조대 전망대도 바다 위에 잘 만들어 있어서 올라가 보니까 하조대 해변과 주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하조대
하륜교를 지나서 해파랑길 43코스가 시작되는데, 이 코스가 가장 찾기 쉬운 코스이다. 처음부터 하조대 해변을 일직선으로 가다가 중광정 해변에서 좌측으로 곧바로 가서 다음은 우측으로 계속 가다가 동호해수욕장으로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직선 도로로 수산항까지 오는 코스로 해파랑길 표시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곳이다.
걷다가 보면 만나고 싶은 곳이 있다. 도롯가에 설치된 버스정류장이다. 해파랑 길 코스를 걷다가 보면 다리도 아프고, 때로는 점심을 먹어야 할 때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런 적당한 장소가 버스 정류장이다. 바람을 막아주고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설치되어 있다. 울산 쪽에는 정류장 의자를 따뜻하게 하는 곳도 있었지만, 위로 올라올수록 그런 의자는 보지 못했다. 오늘도 오후에 힘들어서 쉴 곳을 찾다가 보니까 동성 교회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 있어 잘 쉬다가 다시 걸었다.
이 코스는 동호 해수욕장은 해변이지만, 나머지는 국도 옆으로 난 국토종주 자전거길 동해안 코스 길을 걸었는데 해변 길이 거의 없었다.
요즈음 유난히도 추워서 강릉에서부터 자주 눈에 띄는 것이 해변에 잘 조성된 해송 가지가 불러진 것이 보인다. 겨울에 바람이 많이 불거나 특히 눈이 많이 오면 가지가 불러지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 영하의 기온이 오래 유지되면 나무도 얼어서 잘 부러질 수 있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 바람이 세게 불거나 눈이 많이 내려 그 눈 무게를 못 이겨 가지도 불러지지만 나무 자체가 칼로 자른 듯이 불러지기도 한다. 이런 나무들이 양양까지 계속 보였고, 앞으로 올라갈수록 더 보일 것이다.
옛날에 좋았던 것만 생각하고 억지로 옛날처럼 살려하면 어렵고 힘들어진다. 시간은 흘러서 기존의 생각은 변했는데 옛날의 마음으로 돌리려면 마음만 상하고 공연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으로 인정하고 내 마음을 바뀌어야 한다. 가부장적 사고나 기존의 질서나 관례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자세와 가치관으로 살아야 한다. 자식들이나 형제들 그리고 부부 사이도 바라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본인 위주로 살아가야 한다. 본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나의 자존감을 갖고 혼자 있어도 만족하고 즐거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자존감을 갖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바쁘다. 나를 생각하고 신경 쓸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에게 마음을 써 줄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심정으로는 그렇게 신경 써 주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길지라도 실제는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에 섭섭한 마음이 든다면 접어라. 나를 위해서 신경 써 줄 사람은 오직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위해서 애쓰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형제들이나 자식들을 모두 처음 보는 타인처럼 마음 쓰지 말고 자유롭게 놓아주어라.
오늘도 많이 걸었다. 앞으로 3일 뒤에 걷기를 마치기로 정하고 걸으니까 많이 걸은 것이다. 무리하면 안 될 것 같고 너무 추워서 하루라도 빨리 마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도 오늘 너무 무리하게 걸었다. 오늘 수산항에서 걷기를 마친다.
수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