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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24일 차

by 안종익


양양군의 해파랑길은 시원하게 일직선으로 가고 있다.

양양에 들어와서 본 설악산은 웅장하고 걷는 동안 시선을 압도한다.

아직 설악산에는 눈이 덮여 있고 그 줄기가 우뚝 솟아서 양양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는 설악산이 모든 볼거리 중에 으뜸이다.

설악산은 젊어서 친구들과 같이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산에 눈이 덮여서 봉정암에서 등산하고 눈이 많아서 대다수 등산객들은 하산하고, 같이 간 친구 세명이 눈 덮인 정상을 등반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눈이 많이 쌓이고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그렇게 무리하게 등반한 것은 젊어서 그랬고, 또다시 못 올 것 같아서 온 김에 올라간 것이다.

그 뒤에 다시 오른 적이 있다. 아들과 같이 늦은 봄에 오른 것이다. 이날은 일출을 보려고 새벽에 소청대피소에서 출발해서 날씨가 흐려서 보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다시 찾은 대청봉은 아들과 추억을 만들어주어서 좋은 곳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올려다보기만 할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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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대교를 넘어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눈에는 눈물까지 나게 만든다.

현재 걷고 있지만 영하의 날씨이고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오니까 그 체감온도는 거의 동상이나 어디 신체 부위가 얼어서 이상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다. 추위에 참을 수 있는 인내의 한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낙산 해변을 걸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왜 이렇게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없을까만 생각나고, 이 바람이 추운 날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이고, 나는 북쪽으로 가니까 정면으로 맞으면서 가는 것이다. 바람의 방향은 바뀐 적이 한 번도 없이 한결같이 얼굴에 불어 오는 것을 맞으면서 이렇게 고생해서 무엇을 얻으려 걷는지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하도 추워서 낙산 해변의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고, 낙산사도 들어갈 마음이 없고, 그냥 해변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이것은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추운 날 나이 들어 개고생 했다는 것은 잊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것만 기억해도 이번 걷기에 얻은 것이 있는 것이다.

걸으면서 또 생각한 것이 있다면,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방심하면 창피당하기 너무 쉽다는 것과 사는 것이 대체로 비슷하다, 끝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보람도 느끼고 행복도 생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심하고 잘해야 한다, 자존감은 살아가는데 필수이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친절하고 다정해야 본인도 좋고, 옆에 사람도 좋고, 사는 것이 부드러워지고, 일이 순리로 흐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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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대교


양양에서는 들어오는 초입에서부터 보이는 글이 마음에 닿는다.

“고맙다 양양”이라는 말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참 따뜻하고 정 있는 고장이라는 느낌을 준다. 양양에는 “송어와 연어의 고장”이라는 슬로건도 있지만 “고맙다 양양”이 시내버스 정류장이나 공공기관에 거의 쓰여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해파랑길을 걸어온 것도 삶에 “고맙다”는 것을 느꼈다면 걸으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 말을 아직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 이 말을 느낄 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세상에 감사하면 모든 일이 긍정적이고 행복한 일이 되는 것이다. 감사는 사랑이나 희망보다도 더 쉽게 행복에 이르는 비결이다.

양양이 무슨 전통의 도시, 무슨 최고의 고장이라고 선전하는 것보다 “고맙다 양양”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것이고 이곳에 사는 분들이 선량하고 행복한 분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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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소리길은 낙산사를 지나서 한참을 가면 정암해변에 있는 길이다.

파도가 치면 몽돌이 소리를 내는 해변을 걸었다. 귀를 기울여서 들어보니 소리가 많이 들린다. 파도가 쳐서 나오면서 몽돌을 해변가로 몰았다가 들어가면서 다시 바다로 밀고 가면서 몽돌끼리 서로 부딪치는 소리이다. 몽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몽돌 소리길로 이름 지어서 부르는 것이 참 신선하다. 해변에는 수많은 몽돌이 있지만 이렇게 이름 지어서 불리는 이곳의 몽돌은 특별한 몽돌이 된 것이다.

몽돌의 부드러운 곡선은 바닷물이 와서 씻고 깎아서 그렇게 되려면 수천 년이 더 지나야 되겠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곡선이 된 것은 바닷물이 몽돌을 굴려서 서로 부딪쳐 깍낀 것이다. 바닷물보다 몽돌끼리 부딪친 것이 부드러운 곡선을 만드는데 더 큰 작용을 한 것이다. 실제로 바닷가의 큰 바위는 바닷물이 아무리 쳐도 아직도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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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에 들어서는 초입에 속초 해맞이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많은 조각상과 속초에 온 것을 환영하고 있다. 여러 조각상 중에도 바닷가 갯바위에 조각된 인어 연인 상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 이 마을에 처녀 총각이 살았는데, 어느 날 총각이 바다에 조업을 나갔다가 조난을 당해서 돌아오지 못하고, 그 연인을 이 바위에서 기다리며 그리워하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처녀의 안타까운 이야기 전해지고 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이곳에 조형물로 총각과 처녀를 인어상으로 만들어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사랑의 연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 인어 이야기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었지만, 여기서는 처녀 총각의 사랑이 이루어진 인어 연인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는 완벽한 사랑을 찾는 연인들이 이 연인상을 보러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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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옹치항에서 속초 해변에 이르는 바다 테크 길은 파도 소리 향기 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파도 소리 길은 여러 곳에 있고, 여기도 파도 소리와 함께 걷는 길이다. 위에는 유명한 기업의 리조트가 자리하고 멀리는 속초 해변이 보이는 이 길은 한 번쯤 걸을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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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아바이 순대 마을을 지날 때는 그 많은 순댓집 중에 한 집만 줄을 서고 나머지는 사람이 찾지 않는 식당을 보면서 잘하는 집이나 원조인 집이 이렇게 구분이 되는 것을 보았다. 개 배 선착장에서 갯배를 타고 건너서 속초항과 동명항을 부두를 따라서 계속 걸으니까 영랑호가 나온다. 영랑호가 보기에는 크지 않았지만 걸어보니까 너무 넓은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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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배


장사항을 지나니까 곧 강원도의 최북단인 고성이 나오면서 바다정원 식당을 지나 봉포항에 오늘 걷기를 마쳤다. 이제 내일이 지나 모래는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할 예정이다. 정오를 조금 지나서 도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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