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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면서

by 안종익

집으로 돌아오는 들녘은 멀지 않아 아지랑이가 보일 것 같다.

추운 세밑에 떠나서 봄이 오는 것이 보일 것 같은 날에 돌아오면서 마음속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느낀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을 때 지나가는 차에게 태워 달라고 간절히 손을 흔들었지만 외면하는 인심에 실망도 했고, 배고파 보였던지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밥 한 그릇 더 주던 작은 항구의 밥집 할머니 마음에 감동하면서 걸었던 길이다. 발걸음이 천근 같은 날도 있었고, 왜 걷는지 자신에게 묻기도 하면서 스스로 선택한 길을 힘들었지만 이제 마치고 처음에 왔던 곳으로 가고 있다. 처음에 왔던 곳도 제자리가 아니고 잠시 머무는 자리일 수도 있다.


해파랑길은 내가 가고 싶었던 산티아고의 길은 아니지만 걷고 나니까 잘 왔다는 마음이 든다. 비롯 유명한 산티아고 길에 비유할 일은 아니지만, 걷는 의미는 같은 것이고 이제는 가보지 않은 산티아고 길보다 다녀온 해파랑길이 더 좋은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산티아고 길은 내가 살아보지 않은 길이라면 해파랑길은 내가 살아온 길과 같은 나의 길이었던 것이다.


준비 없이 급하게 일정을 잡아서 떠난 길이지만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길은 동해 해변의 절경을 따라서 세련된 길도 있었지만, 아직 거친 야생의 길이 나왔고 때로는 산을 오르기도 했지만 푸른 바다와 맑은 공기를 숨 쉬면서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설날 신리 해변 마을을 지날 때 세배 다니는 정장 차림의 가족들이 보일 때, 가족과 형제들이 보고 싶었고, 돌아가신 모친이 많이 생각나면서 어른들에게 세배하던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면서 멀리 바다를 보고 걷기도 했다.

날이 추워지고 너무 오랫동안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더 걸을 힘도 없어 궁촌 마을에서 쉴 곳을 찾는데, 민박집이라고 많이 쓰여 있어서 별 걱정 없이 가까운 민박집부터 하룻밤 묵어가자고 부탁을 했지만, 겨울이라 민박을 안 한다 했어도 이렇게 민박집이 많으니까 한 곳은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의 모든 집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다리를 끌고 다녔지만 잘 곳을 구하지 못해 실망을 하면서 해변가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는 할머니 옆에 다리가 아파서 쉬면서 “민박집을 구한다"라고 하니까 그 할머니가 하는 곳을 알아 구해 주었다.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해서 오후에 마치면 먼저 숙소를 정하고 다음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숙소 부근의 식당에서도 먹기도 하고 아니면 숙소로 준비해 와서 먹기도 했다. 그때 자주 그 지방의 고유 막걸리를 찾았다. 그때 마시는 막걸리는 걷는 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부산에서는 금정산성 막걸리 가 유명하지만 “생탁”이 좋았고, 울산은 “태화루”가 있었고, 경주는 “경주법주 쌀 막걸리”가 맛이 있었다. 포항은 “영일만 친구”가 있고, 영덕의 “정 막걸리”와 울진의 “미소 막걸리”도 먹어 보았다. 삼척은 동해의 “지장수 막걸리”가 있었고, 강릉은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마셔보았다.

고래불 해변에서 아침부터 비가 오는데 못 걸을 정도는 아니고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면서 걸을 때 몸에 한기를 느끼면서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같아 한없이 슬펐던 기억이 나고, 우산이나 우비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그 비를 끝까지 맞고 걸었다.


추운 겨울에 급하게 떠난 해파랑길은 걷는 것보다 추워서 더 힘들었고, 아픈 곳이 나올까 걱정되는 출발이었다. 끝까지 걸어가겠다는 마음보다는 걷지 못할 경우까지 가서 다음을 기약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시작하니까 작은 어려움은 견디면서 돌아가야 할 일도 없고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으므로 마지막까지 걸어간 것이다.


배낭을 메고 다닌 경험이 거의 없는데, 먼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고 너무 큰 것을 구입해서 나름 최소한의 물건만 넣고 출발했지만 장시간 걷기에는 무겁고 힘들었다. 배낭이 무거워지니까 걷는 것도 힘들고 어깨가 아파 5일 만에 울산에서 필요한 물건을 남기고 나머지는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필요한 물건만 남겼지만 배낭 자체가 무거워서 나중에도 어깨는 계속 아팠다.


평소에 걷기를 자주 했지만, 처음에는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그 물집이 터져 마를 때까지 아프다가 다음은 배낭을 멘 어깨가 아파서 고생을 했다. 그래도 걷는 데는 지장이 없어 계속 걷다가 보니까 발바닥이 아프면서 옛날에 아팠던 병이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다. 나중에는 무릎이 시려 오더니 반대쪽으로 옮겨 가면서 시렸다. 그러다가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계속 걸으니까 마지막에는 별로 아픈 곳을 못 느꼈다. 걸으면 몸은 아픈 곳이 교대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면서 여러 생각이 나지만, 걷는 길에 따라서 생각이 멈추기도 하고 다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끝없이 이어진 굴곡이 없는 길을 걸을 때 발바닥이 아프지만 여러 생각을 하거나 생각 없이 지루하게 걷기만 하기도 하고, 숨이 차는 산 오르막은 갈 때는 다리 아프다는 생각과 숨이 차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오직 언제 오르막이 끝날 것인가에 관심이 간다.

해변의 자갈길은 자갈을 바라보면서 걷지만, 발을 잘못 놓으면 다칠 수도 있고 발을 놓을 곳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수월한 길이 아니다. 바다 위의 언덕길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갖고 걸을 수가 있지만 밑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곳이다. 모래 길은 은근히 힘이 들어서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나간 물이 다져 놓은 곳으로 걸어야 쉽다는 것도 터득했다. 논 밭둑길도 걷기는 쉽지만 지루한 길이고 차와 같이 걷는 도로 길은 달리는 차 소리와 아스팔트 걷는 것이 발바닥이 아파 깊은 생각에 빠지기 힘든다. 무엇보다도 모든 길을 가면서 해파랑길의 표식을 찾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


복잡한 마음으로 떠난 해파랑길은 과거를 잊으려고 한 여행이었고 그래서 걸을 동안 잊고 싶은 과거를 다시 생각하면서 잊어야 하는 이유를 찾으면서 걸었다. 잊을 이유를 마음으로 느꼈지만 진정으로 잊게 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조금은 과거로부터 벗어났을 것이라 여겨진다.

걸어보니까 세상을 사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지만, 사람이 사는 것이 그렇게 큰 차이도 없고, 성공 여부 차이도 별로 없고, 사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생각했다.


살면서 성질대로 하거나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면 그다음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도 알았다. 살아가면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노련하게 사는 방법인 것도 알았다. 걸으면서 친절하고 다정한 언행이 사람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는 것을 여러 번 느끼면서 그런 친절한 것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사가 친절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기대나 바라는 마음을 갖지 말고 내가 주려는 마음만 필요한 것이다. 가족들도 자기 사는 것이 바빠서 신경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내가 더 다정한 말을 할 필요가 있고 조심스럽게 대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 주어야 한다.


편하고 게으르게 살지 말고 몸이나 머리를 부지런히 움직이고 생각해야 사는 보람도 느끼고 행복감도 온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 해파랑 길을 걸으면서 다시 확인했다.

내가 하는 일이 하찮은 일이라도 그것에 나의 자존감이 갖고 해야 하고, 원래 세상에 특별한 것이나 위대한 것은 없다. 단지 세인의 관심이 있거나 받으면 큰일로 보일 뿐이다. 그런 관심을 의식하거나 기대하면서 살기보다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냥 살다가 가는 것이다.

존재감이 있으면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이고 외롭지 않고 늘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떠날 때는 끝까지 걸어서 마음에 무엇 얻기를 바라기보다 자유로운 생각의 시간을 갖고, 해파랑길이 있었고, 시간이 있어서 걸었다.

다 걷고 나니까 말로 표현은 안 되지만, 마음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 같다.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무엇을 알고 싶으면 망설임 없이 주변에 묻거나 도움을 청하는 태도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이 보이고, 기본으로 지켜야 할 것은 지킬 것 같고, 나를 내 세우거나 자랑할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다.

770Km을 걷는 것이 다리만 고생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추위 속에서 걷는 것이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고, 나이 들어서 체력에 대한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추위 속에 걸은 것이 앞으로 남은 삶에 어려움이 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걷는 중에 구정도 있었고 서로 안부 인사를 묻는 시기였지만, 나를 찾는 전화가 거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존재감이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한 길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일과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정상이고 관심을 기대하면 본인만 손해인 것이다.


걷는 중간에 몹시 추워진다는 예보가 나오는 날 문자가 한 통 왔다. 여동생이 보낸 문자였다. “추워져서 걱정이고, 따뜻한 곳에서 보내라"라는 문자였다. 날씨는 추웠지만 그 문자를 보고 감동이 왔고, 세상에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작은 걱정과 배려도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고 그 사람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게도 한다.


세상의 온갖 고난을 혼자 앉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고, 순례자의 간절한 구도의 모습으로 걸어갔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 있는 눈길로 보는 사람이 없었다.


중간에 노란 손수건이 생각이 나면서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걸어왔는데, 마지막 도착지인 고성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감동 스토리가 되는 걷기라는 생각도 해 봤다. 그렇게 기다릴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바라지 않았지만, 그런 기대를 하면서 걷는 순간은 행복했다. 우리가 사는 것이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는 삶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다. 감동이 있는 삶을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면 알찬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해파랑길 770Km 걷기를 마쳤다.

몸은 움직여야 무엇이라도 남는 것이 있었다. 원래 인생은 대단하지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일생을 사는 것이다.

옛사람들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일생이지만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그 의미 찾는 것이 힘들고, 찾아도 그렇게 살기 힘든 것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려고 애쓰면서 사는 것이다.

해파랑길은 많은 생각을 하면서 혼자 걷는 길이다.

갑자기 시작은 해파랑길이지만 끝나고 나니까 잘 걸었다는 마음이다.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이 있어서 행복했다.


#해파랑길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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