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냇물이 흘러오다가 아담한 청석이 있는 곳에서 돌아 내려간다.
그 청석 위 넓은 곳에 오래된 큰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그늘이 되고 쉼터가 되는 동산이 있다.
이곳이 오래전에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탑 밭이다. 그 탑 밭에는 실제로 탑이 세단까지 있었고, 주변에 깨어진 탑의 나머지 부분도 흩어져 있었다. 이 주변이 절터였다고 추정하는 것은 탑 밭 주변 들을 지금도 “한 절”이라고 부른다. 큰 절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이다.
탑 밭의 큰 소나무는 어릴 때도 한 아름드리나무였는데, 지금도 그곳에 그때와 같이 큰 소나무로 서 있다.
단오에는 큰 소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어서 그네를 타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여름에는 한낮에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놀던 곳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볕을 막아주는 큰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다가 더위가 한풀 꺾이면, 놀면서 흘린 땀을 씻기 위해 멱을 감고 소먹이는 아이들은 소 몰고 유동골로 들어가고, 소가 없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왔었다.
탑 밭에서 주로 하던 놀이는 “진도리”이라는 놀이이다. 오래되어서 규칙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두 편으로 나누어서 멀리 있는 소나무를 먼저 돌아오면서 서로 잡고 잡히는 게임으로 빨리 달리고 민첩한 아이다 유리한 놀이였다. 더운 한낮에 그렇게 뛰어다녀도 즐거웠고 아침에 일어나면 탑 밭에서 진도리 할 생각에 기다리던 놀이이고, 그렇게 놀던 곳이 탑 밭이었다.
진도리를 신나게 하고 나면 땀이 범벅이 된다. 그러면 탑 밭의 청석을 돌아 흐르는 냇물에 멱을 감는 시간이다. 탑 밭 밑에 돌아가는 냇물은 그곳에 넓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넓은 웅덩이는 아이들 키보다 깊은 곳도 있지만, 밑이 청석으로 깔려 있어 아이들이 멱을 감고 물놀이하기에는 최고였다.
나이 많은 개구쟁이 형이 있어서 아이들을 물속에 잡고 들어가 물을 먹인 곳이다. 이때 그 형에게 물을 먹지 않은 아이는 없었다. 그런 형이지만 이 탑 밭을 지날 때는 얼굴이 떠오르고 이름까지 기억난다.
탑 밭 위를 뛰어다닐 때, 풀 위에 가끔 뱀이 나온다. 그때는 뱀들도 아이들이 노는 곳에 나오면 급하게 안전한 곳으로 도망을 치는 꼴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뱀을 보면 “뱀이다”라고 위치면 모두가 달려가서 주변에 돌들을 주어서 뱀에게 던진다. 아이들은 뱀이 무서우면서도 자기가 던진 돌로 뱀을 맞추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보면 한 아이가 자기가 맞추었다고 소리친다. 결국은 뱀은 이렇게 돌에 맞아서 죽었다. 그때는 사람을 무는 뱀을 그렇게 죽이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멱 감을 때도 물 위로 뱀들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런 뱀을 멱을 감다가 돌을 던져서 잡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가도록 놓아주기도 했다. 물 위를 지나는 뱀들은 대게 물뱀이라 독이 없다고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원래 탑 밭은 숲이 많고 습기가 많은 곳이라서 뱀들이 살기에는 적합한 곳인지 예부터 뱀들이 많았다. 그래도 어릴 때 본 뱀들은 아이들을 보면 급하게 도망가고 어떤 뱀은 살려고 바위 구멍으로 잽싸게 들어가는 모양을 자주 보았다.
그 많던 아이들도 다 떠나고 이제 탑 밭에는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
동네에서 올 아이도 없지만, 사람들이 오지 않는 탑 밭은 숲이 우거지고 잡목들이 자라서 더 이상 쉴 만한 곳이 아니다. 그래도 큰 소나무는 아직도 그대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나면서 보면 탑 밭은 변한 것이 거의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그늘은 있지만 머물 곳은 없다.
이제는 아이들이나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 같고, 그냥 지나면서 큰 소나무를 구경하는 동산이며, 옛 추억만 있는 소나무 숲인 된 것이다.
탑 밭의 소나무 숲이나 냇가에는 이제 천천히 기어가는 뱀들을 흔하게 눈에 띈다.
사람들이 오지 않은 곳에서 뱀들이 급할 것 없이 주변 생태계 위쪽에 위치해 살고 있는 것이다. 무심코 들어가면 어김없이 뱀을 볼 수 있는 곳이 되어 사람들이 뱀이 무서워서 탑 밭에 더 안 가는 것이다.
탑 밭은 뱀들의 천국이나 고향이 된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오지 않던 두루미들이 탑 밭의 큰 소나무에 늘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뱀들도 또 다른 천적이 나타나서 천국은 아닌 것 같다.
탑 밭에 있던 탑의 나머지 부분이나 잔해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몰래 가져간 것이다. 지금은 아마 어느 부잣집 정원에 있을 것이다. 탑이 없는 탑 밭은 이제는 소나무밭이 되었다.
오늘도 탑 밭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면 옛 생각에 젖어들면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물 먹이던 장난기 있는 형의 얼굴과 물먹고 숨이 차서 캑캑거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나면 입가에 웃음이 돈다. 그래도 그때 집에 가서 어른들에게 그 형이 물 먹였다고 고자질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