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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Aug 10. 2020

한 우물만 팠는데 물 한 컵도 얻지 못한 당신에게

- 당신의 노력을 기억합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우리 집은 어릴 적부터 각자의 개인 생활을 존중하는 문화가 익숙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쿨'해 보이는 집이지만, 또 어찌 보면 서로에게 무관심한 집안이기도 하다.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은 하고 싶은 것(특히 먹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다 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한다'는 말만 철석같이 믿고 정말 이것저것 안 해본 것 없이 시도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 모든 게 내 인생의 경험이 되고, 나를 발전 시키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서성이느라 정작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도만'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가장 잘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


음악, 미술, 체육의 흔히 예체능이라고 불리는 분야부터 나름의 전문분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험을 쌓은 나는 어떤 곳을 가도 중간 이상은 가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특출난 그 '무언가'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모든 일에 포기가 빨랐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일을 할 때 대충하거나 소홀히 한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해보고 아니면 다른 걸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내가 잘 못하는 일이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애써 참아가면서까지 간절하게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내 주변에는 나와는 다르게 힘든 상황을 견디며 한 우물을 계속 파온 사람이 한 명 있다. 그의 꿈은 하늘을 비행하며 두 지역 사이를 연결 시켜주는 항공기 조종사. 나는 그를 통해 이처럼 한 분야를 위해 계속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는 줄곧 같은 꿈을 꾸며 자연스럽게 항공 관련 대학에 진학했고, 전공 공부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으며 무난히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해나갔다. 항공사 입사 시 필요한 어학 공부를 위해 방학 기간 모은 알바비를 탈탈 털어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조종사 자격을 얻기까지는 여러 루트가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점은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 사정이 아주 여유롭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학생은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조종을 가르치는 교관 업무를 시작했다. 돈을 벌면서 비행시간도 쌓을 수 있었기에 항공사에 들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관 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은 덕분인지 어린 나이부터 준비한 덕분에 평균 연령보다도 일찍 최종 합격의 문턱까지 갈 수 있었고, 아쉽게 그 문턱을 넘지 못했을 때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기회가 많이 남아있고, 이대로만 가면 부기장 조종석에 앉을 날이 머지않을 것만 같았기에. 이 모든 게 코로나19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하는 게 솔직히 아직은 민망하게 느껴진다. 언제 끝날지, 아니 끝나긴 할지조차 모르는 코로나 상황에서 항공업이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늘길도 막히고, 항공사의 채용 공고도 막히고, 항공업을 꿈꾸는 이들의 꿈도 막혀버렸다. 앞으로 몇 년이 될지도 모르는 이 어두운 상황 앞에 수많은 꿈들이 회항하며 다른 종착지를 찾고 있다.


나는 앞서 말했듯 한 가지 꿈만을 간절하게 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공업을 바라고 노력해온 사람들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저 짐작하건대, '정말 힘들겠구나, 미칠 것 같은 좌절감이 들겠구나.'라는 정도이지 내가 어찌 그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위로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는 나는 업무 자체가 주로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비교적 적은 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회사 매출이 줄어들거나 프로젝트가 잘려 나갈 때도 크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으면 될 테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면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이 일이 내 천성이라거나 내 인생을 바쳐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은 품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 우물을 판 이들의 미칠 듯한 그 좌절감, 그것은 내가 평생을 가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최종 합격이 되었다가 취소 통보를 받은 사람, 수습 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 몇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모든 사람들.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내가 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직업군이 회자되고, 또 챌린지로 발전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일이 이슈로 발전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주목받지 못한 그늘에는 아직 한 번도 '직업'이라는 타이틀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내 말만으로는 위로가 0.1도 안 되겠지만, 지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내가 이 일에 이렇게 진심이었구나',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구나'를 보여주는 방증일 터이니, '내가 왜 이 분야를 택했을까'라며 스스로에게 그 화살을 돌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 같이 뭐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며 살아온 사람도 어찌어찌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대들은 꼭, 반드시, 하늘과 더 가까운 햇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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