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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끝해 번영작가 Feb 13. 2023

[소설] 겔린도발트 성의 소녀



[2화]


카자니는 덜컥 겁이 났다. 그는 누나 루아니샤를 보지 못한 지 벌써 3년 째에 접어들었다.

그가 누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루아니샤가 상인들의 거처에 파묻힌 세 가족의 허름한 오두막집을

떠나 숲 속의 정령술사 길란드라에게 가는 날이었다.


"잘가 누나"

"그래 잘 지내. 나쁜 애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누구?"

"그걸 내가 말해야 아니?"

"정말 모르겠어"

"물레 방아집네 딸"

"걔 나쁜 애 아냐"

"맞아. 넌 걔한테 반한 거지. 널 가지고 노는 게 뻔히 보이는 데 말이지"

"렐루아가 왜 날 가지고 놀아? 뭐가 아쉬워서?"

"네가 렐루아를 높이 본다는 걸 그 애가 아니까.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라는 그 마음 가지고 있단 거 아니까 널 이용하는 거야. 네 순수함을. 넌 걔한테 그저 잠깐의 놀이용 남자일 뿐이야. 그걸 명심해"

"오해야"

"참 나. 오해?"



그때 두 사람의 어머니 다이아가 손에 천을 한 아름 쥐고 나왔다. 붉은 빛이 감도는 천은 윤기가 금빛 테두리로 빛이 감돌았고, 툭 치면 촤르르 떨어져 빗물이 내리는 형상을 할 것 같은 재질의 옷이었다. 루아니샤도 카자니도 그런 옷감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게 뭐예요?"

루아니샤가 엄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네가 집을 나갈 때 주려고 둔 거다. 네 아빠가 널 가졌을 때, 날 떠나기 전에 어느날 몰래 집 담장 뒤에 숨어있다가 주고 간 거야"

"저한테 아빠라는 존재는 없어요. 엄마도 이젠...전 엄마 곁에 머물 필요가 없다고 느끼니 떠나기로 결정한 거죠"

다이아는 딸의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기라도 할듯 강하게 흘겨봤다.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널 낳아준 나에게 못할 말이 없구나. 난 너를 열 달 동안 가지고 있었다. 혼자였지만, 결코 널 포기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난 당신을 떠나요"

"당신?"

"그래요. '당신'. 당신이라는 말은, 마법계가 없던 시절부터 나이가 많은 사람을 존대하던 말이예요. 그게 무슨 잘못인가요?"

"내 지식이 짧아서 순간 잘못 이해하고 서운함을 느낄 뻔했다. 난 너처럼 배울 여유조차 없었지"

"엄마. 제발. 배울 여유가 없었다느니 불쌍한 척 하지 말고 그냥 대놓고 나쁜 엄마가 되어주세요. 속으론 저 애를 더 아끼면서 저를 사랑하는 척, 위하는 척 하지 마시고요 그게 절 더 괴롭게 만들어요"

"미안하다. 이 좁은 집에서 너희 둘을 키울 수 있는 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게......"

"여유가 안 된다고요? 그렇다면 저를 낳지 마셨어야요. 왜 책임지지도 못할 자식을 낳는 건가요?"


루아니샤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다이아는 방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루아니샤는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고 사과하는 게 좋을지, 그냥 그 말을 엄마의 가슴에 꽂은 채로 떠나야할지 모른 채로 고개를 애써 벽쪽으로 돌렸다. 벽에는 루아니샤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그려놓은 그림들이 있었다. 그 그림 속에 루아니샤는 엄마와 동생 카자니와 함께 강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함께 강물로 가서 죽자고 했던 그날 밤, 내가 그린 그림이네.

저 그림에 내 슬픔이 담긴 줄도 모른채로, 저 여잔 한참이나 지나서 그림을 발견하곤

우리 셋의 행복한 한 때를 그린 줄 알고 좋아했지'


루아니샤는 그림을 보자 다시 한 번 분노가 치솟았다. 그녀가 다시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카자니가 누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다이아는 힘이 없이 그녀를 응시했지만, 루아니샤의 눈에선 엄마의 기대가 읽혔다.


'내가 용서해주길 바라고 있는 듯한데.. 만약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나도 속이 좋진 않겠지?'


루아니샤는 애써 '모든 날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방금 전에 떠오른 생각의 층을 덮었다.


그녀는 눈물로 멍울진 마음의 자리를 진흙이든 흙이든 그 무엇으로든 차곡차곡 덮어야 했다.


'상처 난 내 마음도 언젠가 다른 식물들이 자라날 땅을 만들 수 있겠지'


루아니샤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엄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그녀를 일으켰다. 순간 그녀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미안해요. 그냥.. 모든 게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났나봐요"

"내가 더 미안하구나"

"난 엄마를 사랑하고 또 용서하고 싶지만,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기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 알아"

"...?"

"나도 그랬거든"


그렇게 카자니는 누나와 엄마의 마지막을 보았고,

그 장면은 오래 그의 가슴에 남아

가끔 '이곳이 지옥이다' 싶은 왕실의 장면들을 마주하고 인간에 대한 구역질을 느낄 것 같은 순간에도

그를 지옥으로부터 건져내 주었다.


모든 것을 미워하게 될 것만 같은 마음 속에서 그는

인간의 깊고 깊은 마음 속에 숨은 곧 자라날 아름다운 새싹에 대한 광경을 자꾸만 그리게 되었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누나의 상처를 다 알 수 없으면서

왠지 모르게 누나의 내면을 투시하는 것 같았던 그날의 장면은 그에게 오래 남아

긴 세월 보지 못한 '누나'라는 이름을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로 떠올리게 해줬다.


#겔린도발트성의소녀 #웹소설 #작가






[작품소개 및 1화]

https://brunch.co.kr/@blankreator/91/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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