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언니’들의 리스펙트 배틀과 ‘아는 형님’들의 노 리스펙트 예능 사이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자신의 욕구와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여성들. 누군가는 거리를 두며 ‘기 센 (나쁜) 여자’라는 맥락에서 ‘센캐’, ‘센 언니’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멋지면 언니’라는 맥락에서 ‘센 언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센 언니’는 여전히 불편한 여성에 가깝다. 자기 중심적이고 불친절하며, 특히 남성들에게 공격적일 것 같다는 이미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센 언니’의 이미지를 가진 여성이 등장하면 남성 출연자들이 쩔쩔 매는 듯한 태도를 보여 웃음을 유발하거나 그 여성이 보기와 다르게 ‘천생 여자’라고 구태여 말을 붙이는 식이다.
2021년 8월 24일부터 10월 26일까지 9주간 방영된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는 ‘센 언니’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며 시작했다. 첫 화에서 <스우파>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정복과 굴욕’과 같은 자막을 띄워가며 ‘잔혹한 스트릿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성 댄서들의 자존심을 건 생존 경쟁’이라고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엠넷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2021년 여름, 춤으로 패는 여자들이 온다!’, ‘여자들의 춤 싸움’이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춤이라는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기 센 여자들의 살벌한 전쟁터를 떠올리도록 이미지화하며 프로그램을 론칭한 흔적이다.
실제로도 출연자들은 서로를 가차없이 평가하고 기 싸움을 하며 첫 번째 미션인 ‘노 리스펙트(No Respect) 약자 지목 배틀’을 시작했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약자 지목 말고도 자신이 겨뤄보고 싶은 댄서, ‘리스펙트’ 하는 댄서를 지목하면서 ‘약자 지목 배틀’의 성격을 자신들의 기준대로 바꾸어갔다. 출연자들 모두가 승부욕을 불태우면서도 <스우파>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초기의 의도였던 잔혹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닌, 합의된 규칙 아래 서로를 존중하며 실력을 겨루는 경기의 모습에 더 가까워졌다.
두 번째 미션 후 모니카와 허니제이가 워스트 댄서 결정을 위한 배틀을 앞두었을 때 허니제이는 이렇게 말한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주변에 너무 높은 긴장감이 감돌자 허니제이가 다른 댄서들을 향해 여유롭게 웃으며 던진 말이다. 그들이 하려는 춤 배틀은 누군가가 참혹한 패배자가 되는 적자생존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 두 선수의 멋진 기량을 보는 게 더 중요한 경기라는 것을 환기시키는 순간이었다. 좋은 경기를 보여줄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리스펙트까지 내보이는 그의 말에 댄서들은 환호했고, 시청자들은 그 멋에 쓰러졌다. “잘 봐(구경해봐), 기 센 여자들 싸움이야.”라고 하는 듯했던 외부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멋진 춤 배틀을 내가 보여줄 테니 여길 보라고 직접 말하는 여성 댄서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 순간이기도 했다.
홀리뱅이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춤의 스타일을 바꾸기보다는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하기로 하고 낮은 점수를 예감하게 된 순간에도 “우리 진짜 멋있어. 우리만 할 수 있는 거야. 멋있게 그냥 하면 돼.”라고 할 수 있었던 것, 메카크루 미션에서 라치카가 이곳의 모든 여성들을 응원한다는 의미로 ‘런 더 월드(Run the world)’ 노래에 맞춰 여덟 크루의 깃발을 모두 흔들었던 것 등. 출연자들은 단단한 자존감과 서로를 향한 리스펙트를 바탕으로 경기를 치뤄갔다. 기대되었던 ‘센 언니’들의 생존 싸움은 없었다. 승패에 자존심을 모조리 거는 정복과 굴욕도 없었다. 최종 무대를 마치고 우승 크루가 탄생할 때까지 그들 중 누구도 패자가 되지 않았고, 댄서들은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지켜본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스우파>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센 언니’의 단편적 이미지에서 시작했지만 다층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내용이 변화해갔다. 그것이 자존감 높은 준비된 프로 댄서 출연자들 덕분인지, 본 적 없는 멋이 넘치는 ‘센 언니’들의 등장에 기다렸다는 듯 반응한 시청자들의 영향력인지, 출연자들 모두에게 팬이 생길 만큼 여성 댄서들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제작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결과로 <스우파>는 능동적 몸을 가진 여성들이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지 않고 자신의 힘에 대해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저지(심판)의 판결도 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존감이 높고 실력이 뛰어난 프로 댄서의 모습, 몸에 대한 금기 없이 개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몸을 자기 뜻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힘 있는 여성’을 이미지가 아닌 실체로서 보여주었다.
‘맨 오브 우먼’ 오버 더 레인보우
‘센 언니’들이 보여준 ‘힘(power)’은 단단한 자존감, 타자를 향한 리스펙트, 카리스마 넘치거나 수평적인 리더십, 서로 돌봄과 성장,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 등이었다. 만약 어떤 남성이 ‘센 언니’들에게서 위협을 느낀다면, 젠더 위계의 반작용으로 나오는 대항적 힘을 실제로 감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타자(혹은 타자화된 존재)와의 관계에서 적대와 대립, 위계만을 상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우파>에서 여성 댄서들 모두를 관통하는 태도,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타자에 대한 ‘리스펙트’이다. 이러한 태도는 다양한 존재들을 함부로 구분 짓고 위계를 만들고 차별하는 폭력에 대한 질문과 저항으로 연결됐다. 특히 ‘맨 오브 우먼’ 미션은 너무나 인상 깊은 순간들을 남겼는데, ‘혼성 미션’이라고도 불린 이 미션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추정컨대)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큰 불만을 드러냈다. (긴 세월 쉽지 않게) 마련된 여성 댄서들을 위한 자리라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연 크루들이 혼성이라는 주제에서 관습적 접근을 거부하고 ‘맨 오브 우먼’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서 이 미션은 ‘여성을 위한 자리’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서게 되었다.
라치카는 힐댄스를 추는 조권, 댄스 크루 ‘커밍아웃’과 함께 레이디 가가의 노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에 맞춰 무대를 만들었다. 회오리감자처럼 고리 여러 개가 다리를 둘러싼 듯한 모양이 되는 색색의 바지와 장갑을 무대의상으로 활용하여 이상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냈다. 라치카의 리더 가비가 ‘세상의 모든 별종이라고 불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만든 퍼포먼스’라고 밝힌 순간은, 방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누군가가 우회적이지만 명확하게 퀴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낸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프라우드먼은 여성 선언문이라는 뜻의 질 스콧(Jill Scott)의 노래 ‘우매니페스토(Womanifesto)’를 택했고, 드랙 아티스트 캼은 여성의 모습으로 립싱크를 하고, 프라우드먼의 댄서들은 남성의 모습으로 춤을 췄다. 여성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을 거부하고 여성의 다양한 내면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우매니페스토’의 가사를 곱씹게 한 이 무대는 여성과 남성의 자리를 바꿔봄으로써 생각할 거리를 던졌고, 그 이상의 해석을 남겼다. 젠더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여성으로 지정되고 규정된 몸을 향한 폭력을 멈추라는 단호한 몸짓과 목소리를 하나하나 힘주어 표현하는 멋진 퍼포먼스였다.
국내 걸스힙합의 선구자라는 평을 받아온 허니제니가 속한 홀리뱅은 남성과 여성 댄서의 큰 구분 없이 함께 무대를 만들었다. 소개된 듯 ‘남녀를 구분 짓고 한계를 규정하는 ‘걸스힙합’이라는 말에 물음표를 던지는’ 다른 수식이 필요없는 힙합 무대였다. ‘걸스힙합’이라는 장르는 없다. 여성이 추는 힙합 혹은 여성이 섹시함을 부각시켜 몸을 사용하는 힙합을 대체로 ‘걸스힙합’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오랫동안 남성들이 점유해왔고 여전히 남성적 문화가 강한 힙합에서 여성의 몸, 여성의 춤이 받는 부당한 시선에 대해 홀리뱅은 무대로서 반박하고 질문했다.
여성 프로 댄서들이 동료 여성 댄서들의 리스펙트를 받으며 자신의 춤을 마음껏 선보였던 <스우파>에 이성애-남성 중심적 시선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여성 댄서들을 향한 이성애-남성 중심적 시선이 제거된 이곳에서는 여성 댄서들이 몸의 특정 부위를 부각시키거나 섹시함을 표현하더라도 그 자리에는 성적 대상화된 몸이 아니라, 여성 몸에 대한 터부를 넘어 강하고 과감하게 움직이는 몸이 있었다. 분명 같은 몸이지만, 이전의 미디어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몸이었다. 어떤 맥락 위에 놓이느냐에 따라 몸의 의미는 달라진다. 댄스 크루들은 ‘맨 오브 미션’을 통해 이를 한 번 더 정확히 확인시켜주며, 시청자들에게 젠더에 대해 질문하고 또 메시지를 던졌다.
부디 모두에게 리스펙트를
2021년 11월 20일, 여덟 명의 남성이 고정 출연자로 등장하는 JTBC의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는 <스우파>의 여덟 크루 리더(모니카, 허니제이, 효진초이, 아이키, 노제, 가비, 리정, 리헤이)들이 출연했다. 이날의 방송에서 허니제이(정하늬)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한 남성에게 뒤에서 결박당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두 번의 장면이 있었다. 한 남성이 가던 방향을 돌려 허니제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지만, 수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오해라면 미안하단 생각에 허니제이는 그대로 골목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허니제이가 생사람을 잡는 것이 될까봐 걱정했다고 하자 남성 고정 출연자 한 명은 그 순간 “아주 좋은 자세야!”라고 맞장구를 쳤다. 다행히 위험한 순간은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이후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자신을 매일 집 안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하자, 다른 남성 고정 출연자는 “명분이 생겼네, 그 친구도.”라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오해를 경계하는 것은 신중한 태도이지만, 허니제이의 일화에서 그러한 태도는 생명을 건 심각한 도박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어떤 여성이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보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를 상황을 감수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비합리적 선택을 칭찬하는 것은 상식적인가. 이러한 칭찬과 맞장구들이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허니제이를 위험한 도박으로 몬 것은 아닐까. 여성의 경험과 그것을 해석하고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조차 여성의 시각과 목소리가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장면은 더욱 문제적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초대와 방문, 거절과 수락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일상적 이슈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상대의 의사와 무방하게 방문을 하고 싶고, 상대가 그것을 거절할 수 없는 구실을 갖고 싶어한다면 상식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상식적인 방법임에도 “명분이 생겼네”라는 말은 이 모든 상식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한다. 상대의 욕구는 질문되지 않고 나의 욕구가 우선시되어도 괜찮다는 시각, 이성애 연애에서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태도라는 시각, 여성이 피할 수 없는 구실을 이용해서 남성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해도 괜찮다는 시각이 전제되어있다.
이야기 속에서 오해를 받을 가능성도 있었던 한 남성, 그동안 여자친구의 집에 가고 싶었던 차에 방문할 기회를 잡게 된 남자친구(심지어 이것은 실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남성이라는 수상한 전제를 가정한 상상이다.)에게 공감하고 상상의 남성을 향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농담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바로 눈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구체적인 인물(여성)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방송 당일은 여성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 범죄가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 참혹한 사건도 뉴스에 등장한 날이었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성 시청자들의 목소리도 본격 가시화되었고, 방송 컨텐츠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 능력 있는 여성 방송인들의 출연 빈도수가 늘고,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남성 중심의 젠더 편향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여성 출연자의 비율은 아직도 너무나 낮고, 방송 컨텐츠의 젠더 균형을 위해서는 더욱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우파>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었던 것은, 출연자가 모두 여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남성 중심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미디어 방송에는 투명인간들이 존재한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 삶이 반영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여성, 장애가 있는 사람, 피부색이 어두운 외국인, 트랜스젠더 등 장애가 없고 건강한 이성애자 시스젠더 20-50대 한국 남성을 제외한 많은 존재가 충분히 보여지지 않거나, 눈앞에 있다 해도 정작 그 삶과 경험은 소외되는 투명인간이 된다. 다양한 존재와 삶을 발굴하지 못하는 관습적 콘텐츠, 모두가 웃을 거라고 착각하며 반복하는 상투적 농담 속에서 이들은 투명인간이 된다. <아는 형님>의 앞서 언급한 두 장면이 최종 편집본에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로 자연스레 들어가있었고, 그것이 성별 무관 다양한 이들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송출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다. 그동안 <아는 형님>은 젠더 편견과 차별 강화하기(여성의 흡연 비하하기, 동성애자 비하하기 등), 정상/비정상 나누기(이혼 조롱하기, 한부모 가정 아이 폄하하기 등), 위계 짓기(빚과 채무가 있는 경제 상황 조롱하기, 싸움 서열 매기기 등) 등을 통해 많은 존재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배재시켜온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존재와 경험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특히 그 누군가의 고통, 슬픔, 두려움처럼 웃을 수 없는 경험을 철저히 외면하며 아주 은밀하고 조용하게 존재 하나하나를 지워버리는 폭력적인 미디어 콘텐츠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호기심과 질문이 필요하다. ‘센 언니’에게 남성 시각에서 진부한 농담을 하는 것보다 ‘센 언니’의 삶과 목소리를 궁금해하는 편이 더 새롭고 즐겁다. 차별적 농담은 표현의 변주와 테크닉으로 새로움을 꾀한다 해도 웃음을 유발하는 핵심 구조는 진부할 수밖에 없고, 진부하게 반복된다. <아는 형님>의 시청률 위기와 <스우파>의 폭발적 팬덤 형성이 엇갈리는 현상을 목격하고도 젠더 감수성이 저 너머 대단한 정치적 올바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눈앞의 다양한 이들을 보지 못하는 미디어 종사자가 있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해로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컨텐츠 발굴에 있어서는 무능할 가능성이 높다. 부디 다양하고 새로운 웃음이 더욱 많이 발굴되기를, 웃지 못하는 누군가의 앞에서 눈치 없이 웃어대는 무례함이 사라지기를 매우매우 바란다.
* 평화저널 <플랜P> 6호 (2021년 겨울호)에 실린 글을 부분적으로 변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