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나를 잘 아는 것이 곧 나와 어울리는 것들을 찾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나를 규정하고 정의하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들을 좇는 일이 마치 숙제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침대 머리맡에서 나를 알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알짱거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한 마디가 문득 그런 생각에 균열을 일으켰다.
"너랑은 안 어울려."
그 말을 듣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내가 스스로를 정의하려 애썼던 것과 타인이 나를 규정하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내가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과연 진짜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어제의 나는 단단했지만, 오늘의 나는 쉽게 부서질지도 모른다. 화창한 날에는 기분이 좋고, 비 오는 날엔 왠지 센티해진다. 나는 강한 사람일까, 약한 사람일까? 글쎄. 우리는 늘 그 중간 어딘가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검은색은 깊고 강하며, 종이의 흰색은 부드럽고 환하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보면, 그 사이의 미묘한 농담(濃淡)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검은 잉크가 물과 섞이며 경계가 흐려지고, 알 수 없는 패턴을 만들어내듯, 우리도 단순한 정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나다움이란 결국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로서 흘러가는 날들의 패턴인지도 모른다. 순간의 감정과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나를 억지로 틀에 맞추려 하기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는 것. 어쩌면 그게 나를 나로 발견하는 것일지도.
일러스트: 백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