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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빵 Mar 31. 2022

사과와 겹겹의 이야기

소울푸드 탄생


그녀는 원래 사과파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때로 사람들은 원래라는 단어를 이전과는 달라진 취향을 강조할 때도 쓴다. 그녀 역시 자신이 처음 만들어 본 사과파이에 ‘원래’를 갖다 붙였다. “나는 원래 사과파이를 좋아하지 않거든? 근데 이건 너무 맛있는거야.”

그녀는 이제 왠만하면 ‘원래’라는 단어는 쓰지 않기로 한다. ‘나는(또는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원래들은 쉽게 깨지기도 한다.  

햇살 없이 쌀쌀한 날씨에 인기있는 사과차는 시나몬스틱을 통째로 담궈 천천히 우려 마시는 차다. 요즘 카페 스텝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이다. 사과청을 만들고 남은 사과를 보다가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디저트 책의 사과파이 부분을 접어둔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시나몬 향이 베인 사과파이에 대해 아주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책 속의 레시피에 따라 아몬드 가루와 버터를 섞은 크림과 함께 안에 들어갈 블루베리 콩포트을 만들었다. 크림치즈도 생크림과 섞어 부드럽게 준비해두었다. 이런 수고로움의 동기이자 주인공인 빨갛고 탐스러운 사과를 반으로 쪼개 씨를 뺀 다음 얇게 썰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50장은 넘을 것이다. 그녀는 먼저 구워둔 바삭한 파이지에 이것저것 만든 것들을 차례차례 채운다. 꾸덕한 아몬드 크림을 꼭꼭 채우고 블루베리를 으깬 콩포트를 주르룩 흘려준 다음 겹겹의 사과를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 모든것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해 줄 흑설탕과 시나몬 파우더로 윗면을 살포시 덮어주었다.

 책의 레시피를 보고 만든다고 해서 책에 실린 사진대로 결과물이 나오리란 법은 없지만, 그녀에게 있어 디저트 테스트 과정은 의심 3%와 기대 97%로 이루어진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 의심과 기대가 뒤죽박죽 섞여 조심스럽게 만들고나니 그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쳤는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른채 날은 저물었고 실내 곳곳의 조명이 주황빛으로 채워져 카페 안은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그동안 먹어봤던 사과파이는 찐득한 사과잼에 바스러지는 페이스트리의 조화였는데, 정말이지 사과가 그대로 보이는 파이는 그 책에서 처음 봤다. 70분의 시간이 흐른 뒤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 사과파이는 캐러멜라이징이 된 갈색으로 윤기가 흘렀다. 그녀는 부푼 마음으로 조심히 썰어 안에 들어간 재료 중 어느것도 빠지지않게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사과파이라면 나도 사먹을래. 이 레시피를 만든 사람이 구운 사과파이는 얼마나 감동적일까!’ 안타깝게도 그 책은 일본 번역판이었다.

그녀는 테스트를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만들기로 했다. 다시 말하자면 밑준비 4단계를 거쳐 50여장의 사과를 쌓아서 굽고 여덟 조각으로 자르기를 하루 일과에 종종 끼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문득 이것을 먹는 사람이 과연 자신의 노력을 알아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테스트와는 달리 모든 과정을 호기심없이 만들다보니 고되게 느껴진 까닭이다. 머랭처럼 몽글몽글 부풀었던 그녀의 기대가 녹아내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돌연 인색해진 그녀는 자기가 만든 파이 한 조각 먹는 것도 망설이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는 자신이 시월 십일월 내내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사과파이를 오븐에 넣고 잠시 앉아있었다. 오븐에 넣을 때 맞춰둔 타이머엔 숫자 62가 깜빡이고 있었다.

때마침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 하나가 왔다.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던 친구로부터 받은 문자는 핸드폰 화면을 채우고도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하는 긴 메시지였다. 읽고 또 읽어도 사과파이가 오븐에서 나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녀는 긴 메시지에 걸 맞는 긴 답장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고도 시간은 남았다. 그녀는 오늘도 마음 먹는다. 단편소설을 시작해야지, 인물1이 인물2를 기다리는 이야기. 서로의 메시지로 차곡차곡 사과를 쌓아올린 듯 솔직한 겹겹의 사과파이 같은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그리고 사과파이는 겨울내내 만들기로 한다. 그녀의 친구라면 기쁨과 그리움으로 만들어낸 사과파이 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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