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희망

쓰지 않을 결심

by 망고빵


끊임없이 일해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골병만 드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건 아니더라도, 나는 이제부터 ‘적당히’ 일하며 글을 쓰는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가는 돈이 있다는 사실이 이제 놀랍지도 않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자리의 조명, 따뜻한 온도, 공들여 만든 플레이리스트뿐만 아니라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지불해야 한다. 그 지불이 꼭 억울하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누리고 살 생각을 하니 어쩐지 삶이 아마득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가 되려면 글을 써야 하고 그 글이 책으로 나와야 한다. 글을 써보니 생각보다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장면으로 떠올리고 그것은 글자의 형태로 옮겨 온전히 뜻을 전달하기란, 특히 말이 앞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 불리하다. 한마디로 어울리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말을 할 때 나는 표정이 다양하고 작은 목소리로 비밀을 얘기하듯 연출도 하고 가끔은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글을 쓰고 싶냐고? 글에서는 나에게 주목하게 하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아도 된다. 조용하고 무표정한 상태로 나의 글을 누군가 읽기를 바란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내가 원하는 단어를 지우거나 말을 끝내지 않을 수 있도록. 어떤 면으로는 읽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니, 그 자유를 존중하고 싶기도 하다. 이 글에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이 많고 진지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고 살아간다. 내가 그저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깊은 이야기를 매 순간(정말) 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작가라는 직함보다도 글을 쓰는 것이 매우 하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글을 쓰는 실력이 없으니 얼른 부자가 되어 마음껏 쓰겠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안타깝게도 부자도, 작가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책을 쓰는 재주는 없으나 돈은 벌어봤으니 돈을 벌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알다시피 돈을 버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살아가려면 응당 해야 하는 숨쉬기와도 같다. 어리석게도 나는 둘 중 하나는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쩌면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래 쓰자.

나의 일상을 일과 취미로 구분해보기로 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으로써 일이 일상이고 일상이 일인데 거기에 취미까지 끼워넣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일과 쉼의 경계가 없는 자영업자는 더욱 그렇다. 꼭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업장 생각이다. 내가 없는 동안 알바들이 잘하고 있을까. 아무튼 그 시간에 내 자리를 맡아주는 대가를 지불했으니 그 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알바 비용을 감당하려면 일정한 매출이 있어야 한다. 일정 매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만약 매출이 더 증가하면 그만큼 손님이 많이 오는 것이니 나는 오히려 매장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오롯이 글을 쓰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그때 깨달았다. 알바를 들이는 것만으로 나에게 쓸 시간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도안이 있는 십자수처럼 실을 꿰기만 하면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몸에 무리가 되지 않게 일을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난 정신을 가다듬고 글에 몰입하기 전까지 예열되는 시간이 오래걸리는 편이다. 매출이 낮아도 높아도 걱정인 사람에게는 당연히 취미생활이란 어쩌면 신기루. 그렇다고 포기할 것 인가? 아니다. 사실상 매출이 사람을 들일 정도가 아니었다면 알바를 구하지 않았을 나 자신을 믿기로 한다. 그리고 체력을 기르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글쓰기를 즐길 수 있다.

한편 난데없이 카페 근처 100m 반경에 생긴 NEW 카페를 발견하면, 나는 어김없이 우리 카페가 낡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매출까지 떨어진다면,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수 없이 나는 케이크를 더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카페를 더 깨끗하게 단장한다. 반짝이는 새 카페로 탈바꿈시킬 수는 없지만, 허브 화분을 사서 곳곳에 두면 생기가 돈다. 레몬타임과 로즈메리 잎을 손끝으로 살며시 스칠 때 풍겨오는 싱그러운 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게 한다. 나는 식물을 잘 기르지 못해서 서너 달이 지나면 잎도 줄어들고 볼품이 없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엔 꼭 풍성하게 기르자는 마음으로 아침 햇볕을 쬐어주고 물을 촤악- 주면 잠시나마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특히 마음이 허할 때 허브 화분을 산다. 손끝에 허브향이 채 가시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그날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만약 케이크 예약이 적으면 일을 마치고 글을 써야지. 너무 바쁘면 에너지가 남지 않겠지. 너무 바쁜건 곤란할거란 김칫국을 마시면서고 바쁘면 기분이 좋아질게 분명하다.아이러니하게도 바쁘면 그날의 할 일을 잘 해낸 것 같아서 글을 쓸 때 집중이 잘된다. 미련없이 나의 카페를 뒤로한채 집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남의 카페를 이용한다. 그런데도 나는 손님이 적은 날에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마음만 안달날 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나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꼭 숫자의 개념이 아닌것 같다.

가끔은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갈망만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모든 행동이 그렇듯, 갈망하는 것도 반복하면 습관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쓰고 싶다는 이 욕망이 내가 살아가는 동력이다. 뭔가를 쓰고 있을 때의 그 평온함이 있다. 글을 쓰는 건 결코 평온한 일이 아니지만 내가 몰입해서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는 어떤 시련에서 벗어나 삶이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혹시 나는 그저 여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낭만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단순히 돈을 버는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사실 작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온 나의 장래희망이다. 하지만 내가 글쓰기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카페가 우선 일 수 밖에 없다. 지금 하는 일이 생계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덜 억울하다. 만약 삶을 살아지는 대로만 산다고 생각하면 너무 서글퍼진다.

한 것도 없이 바쁜 날들이 있다. 시간은 많이 흘렀고, 몸은 지쳤는데 성과라고 할 게 없을 때. 내가 이러려고 살아가는 걸까? 기계처럼 방전이 되면 충전하고 완충이 되면 작동하듯 인간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고 다음 날이면 또 밥을 먹고 일터로 가지. 그런 날들 반복되면 어제를 사는지 오늘을 사지는 모르는 그런 날들이 내일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서 예전엔 그런 날이면 짜증이 나고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도 글을 쓰다 보니 나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한 것도 없이 바쁜 날은 없다. 외부의 일들에 휩쓸리다 보니 내가 계획한 일을 못 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최근 들어 수요일만 특히 한가해서 아이패드를 호기롭게 열어놨는데 그날따라 카페에 택배가 밀려왔다. 종이컵, 빨대(일반, 스무디, 버블티 3종), 생크림과 원두 같은 부자재 식자재 할 것 없이 잔뜩 도착하고, 의자에 좀 앉으려고 하면 한 명씩 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만) 시키고 가는 손님들이 끊임이 없었다. 정말 집중을 해보려고 할 때쯤, 심상치 않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구청 직원이었고 가게 앞에 내놓은 의자 두 개를 치우라고 했다.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신고가 들어왔다며. 한 달 전부터 구청에서 온 사람이 내 주방을 조사할 때부터 뭔가 마음이 석연치 않았는데. 이번에는 악의적인 의도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이 돼서 항의했다. 인도와 차도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이곳에서 의자 두 개가 그렇게 문제라면, 그건 도로 정비가 잘못된 거라고. 그러자 구청 직원은 공무원 AI가 되어 민원이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했다.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누구랑 싸웠는지, 미움을 샀는지. 허허.” (뭐지, 놀리는 건가)

퇴근길에 오늘의 일을 곱씹고는 그 이야기를 집에 가서 당장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 포근한 침대 위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털을 뿜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정말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일단 나는 부드럽고 따끈하고 흐물텅한 고양이를 감싸 앉아버린다. 그러자 글을 쓰고자 했던 결의에 찬 앙 다문 내 입이 헤하고 벌어진다. ‘지금 안 쓰면 어때? 언제든지 난 쓸 텐데. 조금만 있자. 19살 레니와의 시간은 소중하잖아 ’ 하면서도 ‘이런 식으로라면 도대체 언제 책을 쓸 수 있겠어? 만약 어찌어찌해서 작가가 된다 해도, 지금 같은 상태라면 내 글은 엉망진창일 거야. 설사 운 좋게 출판사와 계약하게 된다 해도 나는 약속을 못 지키는 문제작가로 소문날 게 뻔해. 아니, 이러다 계약 위반하고 위약금까지 물게 되는 거 아니야?’ 참나, 내가 감히 작가가 되고 싶다니, 책을 내고 싶다니, 글을 쓰겠다니—정말 오만한 생각이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빨대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분이다. 이제 쓰자. 왜 하품이 나지. 잠이 오는 건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자고 결심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 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쓰고 싶다는 마음과 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이 맞물려 더욱 갈망하는 마음으로 온몸이 예민해진다. 그런데 누워 있다 보니 몸이 왜 이렇게 간질간질한 거지. 가려움이 점점 심해지자 결국 이불 커버, 베개 커버, 침대 시트까지 싹 다 벗겨서 세탁기에 넣어버렸다. 그 순간 창문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새털구름을 보고 있자니 하늘이 참 높게 보였다. 나는 해 질 녘 풍경을 좀 더 생생하게 보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짙은 회색먼지가 창틀에 앉아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으로는 닦이지 않아 손걸레, 휴지, 물티슈, 알코올을 사용해서 최대한 깨끗하게 닦았다. 잠도, 쓰고 싶다는 마음도 달아나버렸다. 나는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 오늘 정말 쓰기 싫구나. 마침내 쓰지 않을 결심을 하고 나서 홀가분하게 잠을 잤다. 합평에 글을 제출하지 않은 전날 밤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