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고 하찮은 우연히 삶을 이끌어 간다

새의 선물_을 읽고 [은희경]

by 망고빵

카페 알바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이다. 은희경 작가의 이름은 익숙했지만, 정작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다만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소설 『태연한 인생』의 일부 낭독을 들은 기억은 있다. 그리고 2022년, ‘책읽아웃’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은희경 작가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떠올랐다. 얇고 또박또박하면서 웃음이 살짝 묻어 있던 목소리. 방송에서는 여러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고, 새로운 소설집이 나왔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때도 역시 ‘읽고 싶다’는 마음만 살짝 끌어안은 채, 다음 방송으로 넘어갔다. 그런 기억들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이번에 추천받은 책이 그때 소개된 신작이라고 착각했다. 추천해 준 알바 A는 스물두 살. 그래서 처음엔 당연히 최근 출간된 신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책은 100쇄를 넘긴 오래된 작품이었다.


지금은 2025년. 독서 관련 팟캐스트를 10년 넘게 들어오며 수많은 책들을 접해온 내게, 2022년에 출간된 책은 아직도 ‘신간’이라 느껴진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을, 예전에 들었던 그 신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새의 선물』은 내가 처음으로 알바에게 빌린 책이다. 사장이 알바에게 책을 빌렸다는 사실이 어쩐지 나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괜히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 같고, 그 마음이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길 바랐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조금 더 깊이 있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책장은 생각처럼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들은 단편소설 수상집과 합평 모임에 제출된 글들이다. 합평한 모든 글이 책으로 묶이진 않았지만, 수상작처럼 지금 시대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고, 각자의 시선으로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는 둘 다 비슷한 종류의 글처럼 느껴진다. 그에 비해 『새의 선물』은 시대 배경부터 확연히 달랐다. 1960년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나에게는 낯선 배경이었고, 책 속 사물과 풍경을 상상하려면 그 시대를 다룬 영상 매체의 장면들을 떠올려 재조합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꽤 피로한 일이었다. 소설은 열 두 살 아이의 시선으로 시대상과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그 시선은 담백하고 맹랑하면서도, 어딘가 냉소적이다. 나는 그 냉소에서 아이의 방어기제를 느꼈다. 세상의 부조리나 어른들의 모순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벽을 세우는 아이. 그 열 두 살 아이가 진희였다. 그 태도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진희가 첫사랑 허석을 대할 때도 세대 갈등이나 시대의 유행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당시 유행하던 말투나 외모, 취향으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동경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진희는 시대적 유행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더 가까이 머물렀다. 그것이 착각 또는 우연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뉴 스타일 양장점’이라는 옷가게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진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기억과도 겹쳤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의상실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서인지, 그 시절에도 의상실이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이었을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옷에 대한 선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감정임을 새삼 느꼈다.

책에는 그 시대에만 쓸 수 있었을 법한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장터, 장돌뱅이, 국극, 과수원, 영화극장, 매표구, 음악감상실, 약장수, 우물, 고무신, 변소. 이 단어들만 읽고 있어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진희의 말투는 건조한데, 오히려 그 건조함이 진심을 더 뾰족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여성의 삶에 대한 서사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지난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과거는 누구에게나 고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되고 기억되는 방식에서 여성은 더욱 조용히, 혹은 아예 생략된 채 존재해 왔다. ‘말하지 않음’과 ‘말할 수 없음’의 차이,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침묵의 서사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새삼 느꼈다.


책 속 진희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지 않고 남의 처분만 바라는 그런 말은 내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자주 생각했다. 그 시절, 여성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어필할 수 있었던 방식이란 얼마나 제한적이었을까. ‘애교로 봐주세요’ 같은 말로 불편한 상황을 넘겨야 했던 방식이, 그 시절엔 생존의 기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진희는 금지된 것에 끌리지만, 동시에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아이였다. 성적인 묘사조차 ‘성’ 자체가 아니라 ‘금기’에 대한 의식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을 직시하는 법을 배운 듯한 인상을 주었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는 말.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반면 나는 냉소적인데, 안타깝게도 불성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은 나를 오래 머물게 만들었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삼으며 불성실하다. 248 P


『새의 선물』은 그 시절의 일상이 소상하게 담긴 여러 소제목의 글들로 묶인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일상은, 단조롭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종종 마주하게 되는 마음의 무게처럼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속엔 시대를 관통하는 감정과 오래도록 남을 문장이 담담히 녹아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오래전에 쓰인 글이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지금의 언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이야기는, 나이와 시대를 넘어 우리를 잇는다는 것.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은 조금 엿봤을 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척 행동한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 자기를 절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와 공유되어 자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20 p

본질을 가감 없이 꿰뚫는 문장이었다.

머릿수건과 밀짚모자 그리고 호미를 챙겨 드는 것을 보면 밭에 나가는 길임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뻔한 일을 아무 짐작 없이 일 일이 물어보는 것이 이모의 버릇이라면 그렇게 뻔한 일에는 절대 대답을 해 주지 않는 것이 또 할머니의 고집이다. 80 p

어긋나는 티키타카 말 맛이 좋다. 단호한 할머니와 이모를 한심하게 보고 있는 듯한 진희의 시선.

어느 소설에서 나 침대 허벅지 젖가슴이란 말이 나오면 특히 신중하게 그 부분을 읽어 나가곤 했다 117 p

그것은 성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서 금기에 대한 번민이었다. 126 p

오히려 눈을 똑바로 뜨고 그 벌레들을 낱낱이 관찰함으로써 내게 징그러움을 강요하는 그 벌레들의 기대를 좌절시켰다. 징그러움을 이기는 훈련에 성공의 고무된 나는 금기를 이기기 위한 훈련에도 이 방법을 쓰기로 했다.

성 역시 금지되었을 때만 매력을 갖는 삶의 오류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128 p

재방으로 해서 올라가는 길은 길이 함에도 혼자 생각에 골목 할 수 있어 좋다. 내 감정에 대한 거리유지가 몸에 배어 있다 보니 나의 정서적 반응은 이렇게 한참 뒤에야 온다. 그 때문에 나는 내가 왜 지금 이런 기분인지 항상 돌이켜서 그 이유를 유추해내곤 한다. 141 p
내가 할머니를 통해서 은연중에 배운 바로는 감정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내가 미친 여자를 보고 눈물을 지은 것은 할머니에게 충격을 주었다. 할머니는 내 눈물이 엄마에 대한 연상작용임을 알았다.

건드려질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상처를 갖는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스스로의 조절 능력을 상실하는 거였다. 나는 내 상처를 건드리는 사람의 의도 대로 반응 하면서 살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희망을 동반하고 있기에 이겨내기가 훨씬 더 힘들다. 145 p
아마 죽음이란 정신이 육체를 이탈하는 것이라고 여겨기때문에 내 정신이 육체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붙잡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확실한 실물을 대상으로 정해서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여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무튼 나는 그 무렵 언제나 쥐를 바라보며 죽음의 불안에서 벗어나곤 냈다.

삶도 그럴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히 삶을 이끌어 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408 p.
작가의 말 중
나에게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복잡해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적요의 깊은 맛을 알까. 그 가을 갈증 때문에 석류가 깨워졌듯이 말이다. 433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