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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림 Oct 19. 2021

마음도 머리카락 30cm만큼 자랐나요

긴 머리 일대기

살다 보면 특별한 계기도,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문득 그러나 무척 자연스럽게 어떤 순간을 맞이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던 연초의 어느 날이 그랬다. 올해 안에 머리를 짧게 자르겠구나, 하는 예감이 샤워하던 중 대뜸 몸속 어딘가에서 피어올라 정수리에 도착했다.




2017년, 준비하던 시험을 관두고 취업의 부담을 안은 채로 복학하며 단정한 단발로 자른 후 이듬해 하계 인턴십 기간이 끝날 때까지 염색 한 번 없이 단발 스타일을 유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취업. 더 정확히는 면접. 면접 때 단정하고 야무진 인상을 줘야겠다 판단했고, 면접을 어느 시기에 몇 번이나 보게 될지 모르는 데다, 때로는 면접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긴 머리는 관리도 손질도 어려웠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짧은 머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개의 취준생들에게 그렇듯이 취업준비 기간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불안, 터무늬 없는 경쟁률에서 오는 초조함,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의 좌절감, 등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번갈아 찾아오는 이 암울한 기간이 언제쯤 끝날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더욱 주기적으로 머리를 다듬어야 했다. 나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데 헤어스타일 하나 마음대로 못한다는 답답한 마음만 점점 커지고, 마침내 거울을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귀와 턱 사이 어드메에서 달랑거리는 머리끝과 훤히 드러난 목선이 지긋지긋해질 정도였다.

다행히 인턴십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았고, 바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어디 한번 질릴 때까지 머리를 길러보자.


뒤늦게 깨달았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단발머리를 힘들었던 취업 준비 기간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원래는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편이라 즐겨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단발머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어딘가에 발 묶여 기약 없는 희망만 기다리던 시기,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만 누적되는 시기의 상징처럼 느껴져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후 서너 번 정도 끝을 다듬으며 길이 정리를 하기는 했으나 꾸준히 머리를 길렀다. 돈 줄 테니 제발 짧게 자르면 안 되겠냐는 엄마의 권유도 수차례 거절했다. 가장 길었을 때는 열중쉬어 자세에서 손목만 살짝 틀면 머리카락이 잡힐 정도였으니 누가 봐도 이견 없는 장발이었다. 그동안 나는 어느새 입사 3년차가 되었고, 일요일 밤이면 잠들기가 세상에서 제일 아쉬운 프로 직장인으로 훌륭하게 적응해갔다.




약 10년 좀 더 되었던가. 당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어느 날 SNS에 고무줄로 묶인 머리카락 한 다발(?) 사진과 함께 기부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기부한 머리카락은 항암 치료 중 탈모를 겪는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가발 제작에 사용된다. 큰 돈과 노력 없이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었는지, 아니면 특이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궁금했는지, 분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하여튼 나도 살면서 한 번은 꼭 머리카락 기부를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기부할 수 있을 만큼 머리를 길게 기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당시 청소년이었던 나는 두발규제가 있는 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기부처에서 요구하는 최소 길이를 맞출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 좀 더 길러봤지만 이번에는 머리 끝이 상해 긴 머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모발 영양 상태가 나아졌더니 이번에는 또 금세 질려서 자르고 싶었고, 그 외에도 앞서 말한 취업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 등 다양한 이유로 잘라내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10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그리고 단발머리로부터의 도피 심리를 벗어나 그저 헤어스타일의 일종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길이는 진작부터 길었지만 새로 한 펌이 생각보다 잘 나왔고 포니테일과 집게핀 스타일링이 마음에 들어 좀 더 즐기느라 자르자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때보다 늦어졌다. 어떻게 기른 머리인데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드디어 길이와 모발 상태를 충족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갖춰 잘라낸 길이는 총 30cm. 기부처에서는 최소 길이 25cm 이상을 요구하는데, 끝부분에 약간의 층을 낸 부분이 있어 그걸 감안해 추가로 5cm 정도의 여유를 두었다. 가위질과 함께 머리카락이 가운을 타고 미끄러운 바닥으로 사라락 떨어지는 평소와 다르게 고무줄로 묶은 상태로 투박하게 서걱서걱 잘라낸다.


커트 이후 원장님이 잘라낸 머리카락 뭉치를 전달해주시는데, 손에 쥐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린 시절 키가 자라는 걸 표시해둔 벽을 바라볼 때처럼 지나간 시간이 저절로 스쳐 지나갔다. 이만큼이나 길어질 때까지 보낸 한참의 시간, 그 시간 동안 겪은 수많은 사건들과 감정, 기억과 생각들이 구체적인 대상으로 환원해 시각과 촉각에 전해졌다. 어두운 갈색의 긴 머리카락은 한쪽 면이 고르게 잘려 여기 있는데,


과연 나는 같은 시간 동안 머리카락 30cm만큼은 성장했을까?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개인이자 시민이자 무수한 관계의 상대방으로서 머리카락 30cm보다 덜 자랐을지도, 혹은 더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머리카락과 달리 자기 자신의 인생은 객관적으로 보고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인생은 머리카락과 달리 잘려나가지 않고 축적되어 다음날의 나를 구성한다. 머리카락이 30cm나 뻗어나가던 것과 같은 양의 시간은 생각과 감정, 시야와 성품이라는 성질로 변해 내 안으로도 차곡차곡 쌓여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얼마나 어떻게 쌓이고 변했는지 보여 안도감을 주고, 잘 안 보이는 곳도 있지만 없어지거나 잘려나가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은 있어도 기쁜 마음으로 머리카락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낼 수 있었다. 적어도 더 이상 나에게 도피 수단으로써의 긴 머리가 필요 없다는 건 확실했다.




일평생 머리를 길러온 라푼젤도 아니고, 머리카락에 특별한 힘의 비밀이 숨어있는 삼손도 아니지만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건 내게 헤어스타일의 파격 변신 그 이상의 의미였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본다.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밧줄 삼아 탑을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 라푼젤의 두피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성장한 라푼젤의 강인함 덕분은 아니었을지. 삼손이 잠든 사이 머리를 잘리고 괴력을 잃은 것도 스스로 쌓아 올린 인생을 누군가 멋대로 잘라냈기 때문은 아닐지. 그래도 머리카락은 단지 머리카락. 지금은 안경다리에 걸려 꼬부랑 뒤집어지는 앞머리가 더 신경 쓰인다.



머리카락 기부는 국제협력개발협회 어머나 운동본부에 했습니다. 기부 관련 내용과 절차는 링크해둔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니 한 번씩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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