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6개월째 휴직상태이다.
하루 24시간을 남편과 아이와 함께한다. 남편은 재택근무중이고 아이의 어린이집은 휴원상태이니 우리가족은 하루아침에 갈곳을 잃고 집에만 있다.
남편은 집안일을 꽤 많이 하는 편이다. 아니 편이었다.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지는 않았지만 집안일이 우리의 일이라며 신혼때부터 많은 부분 함께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내가 집에 있게 되면서 어느새 집안일은 모조리 나의 일이 되고 말았다.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하면서는 자기가 먹은 물컵하나 설거지 하지 않았다. 가사는 우리의 일이라고 했던게 우리가 맞벌이 일때만 유효한거 였나보다.
아침에 겨우겨우 눈을 뜨면 아침 먹을 걱정부터한다.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주는날에는 괜한 미안함에 마음이 무겁고 밥을 차리는 날에는 서툰 솜씨에 거의 한시간을 부엌에서 고군분투해 내 어깨가 무겁다. 남편은 아침을 먹고 쏙 자기방으로 들어가 일을 한다.
그리고 나서 아침 설거지를 하면 어느새 점심이다. 나는 밥 생각이 전혀 없지만 남편과 아이를 먹여야 하니 고등어도 굽고 미역국도 끓이고 또 밥을 한다. 그러면 또 설거지가 한바닥이다. 남편은 지가 먹은 밥그릇도 싱크대에 넣지 않고 또 쏙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구내식당 아줌마가 된 기분이다.
재택근무이니 회사일을 해야 겠지. 내가 이해를 해야지 하는 마음이 0.1초 들었다가 이내 일한다고 유세떠나로 바뀌면서 괘씸한 마음이 든다.
설거지 물이 튀어 티셔츠 배 부분이 물에 흠뻑 젖었다. 내꼴을 보니 세수도 못하고 옷도 어제 입고 잔 옷 그대로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나만 졸졸 따라다닌다. 블록 쌓기 놀이를 하고 시계를 보니 5분도 안 지났다. 아이가 엄마는 뽀로로를 하고 자기는 크롱을 할테니 역할극을 하자고 한다.
이제 아이 낮잠시간이다. 이때가 유일하게 내가 맘편히 쉴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단, 아이가 빨리 잠만 잔다면 말이다. 책도 읽어주고 마시지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누워서 별별 짓을 다한다. 그래도 아이 눈은 말똥말똥하다. 남편이 그제서야 방에서 나와 아이 옆에 따라 누워 애 보는 시늉을 한다. 눕자마자 숨 넘어 갈듯 코를 콜면서 잔다. 그 코콜이 소리에 아이가 잠을 못 잔다. 벌써 30분이 지났다. 온갖 비위를 다 맞추고 누운지 1시간이 되어 아이는 잠이 든다. 아이 잠들자 귀신같이 남편이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나도 이제 좀 쉬어야지 하면서 핸드폰 게임을 한다.
아이가 잠들면 커피 한잔 마시면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지만 막상 아이가 잠들면 나를 위해 뭔가를 할 기운이 없다. 나도 같이 자버린다.
아이가 깨면 남편은 또 자기방으로 쏙 들어간다. 나는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굽고 끓이고 지지고 볶고 하다보면 입맛이 사라진다. 저녁 7시가 되면 남편의 재택근무가 끝이나고 그제서야 거실로 나온다. 집안일에 찌든 내 얼굴과 다르게 회사일을 마치고 나오는 남편의 얼굴이 가뿐해 보인다. 프로그래머인 남편은 한동안 안 풀리던 일을 드디어 오늘 해결했다며 웃는다. 뭔가를 해결하고 성취했을때 느끼는 그 기분. 잘했네 라는 말 대신 그래 너는 좋겠다는 날선 말이 나온다. 그렇게 해가 저물고 애기가 잠드는 11시가 넘어서야 나의 하루가 끝난다. 집안은 하루종일 복작거린탓에 엉망이고 저녁 설거지가 산처럼 쌓여있다. 세탁기에는 빨래가 가득하고 건조기도 빨래를 토해내고 있다.
아이가 자면 조용히 거실로 나와 쇼파에 앉는다.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나 혼자 있고 싶다.
남편이 슬쩍 따라나와 내 옆에 앉는다.
"많이 힘들어보이네 맥주한잔 할까"
"아니, 나한테 아무말도 하지마. 질문도 하지 말고 내 옆에 있지도 말고 그냥 나 혼자 냅둬 제발"
나와 남편은 바이올린을 취미로 같이 배우고 일주일에 3번 같이 요리학원을 다녔었다. 그정도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이 내겐 너무 행복했었다. 함께여서 행복했는데 이제는 함께여서 혼자있고 싶다.
내 탓일까 남편 탓일까 코로나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