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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Apr 13. 2020

귀찮지만 열심히는 살고 싶어

지난주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오랜만에 평일 오전에 자유시간이 생겼다. 아직은 적응기간이라 한 시간 30분 정도만 있다 오는 거지만 실로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거라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첫날에는 어린이집에 한 시간만 있다 와서 정신없이 집에 와서 글을 쓰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러다 이튿날에는 단지 내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해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50분 정도 운동을 하고 다시 어린이집에 갔다.


다음날 적응시간이 한 시간 30분으로 늘어나 이제는 50분 정도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남은 시간에는 헬스장 앞 카페에서 아이스라테 한잔 사서 밖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셨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니 이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아이를 데리 집에 돌아왔다. 집면 곧 아이 낮잠 시간이 되는데 나는 아이가 낮잠을 잘 때 늘 글을 써 왔다. 그런데 이 날은 아까 오전에 읽다만 책이 생각났다. 20분 남짓 읽었던 책의 뒷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소비만 해왔던 터라 채우는 시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글을 쓰지 않고 책을 읽었다.




다음날 같은 일정을 보내고 오늘은 글 써야 하는데, 라는 생각만 하다가 정작 이렇다 할 글 안 쓰고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할 일을 안 하니 찝찝한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글 안 써도 독서 운동하면서 이렇게 보내는 것도 좋은데?라는 생각 들었다.


그렇게 주말을 맞이했다. 한 건 많은데 정작 중요한 건 빼먹은 것 같은 그런 찝찝한 기분을 안고서 말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딱히 쓸 말도 없잖아, 좀 쉬는 것도 괜찮아,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다.


그러다 이따금 누군가가 라이킷을 눌렀다는 알림이 뜬다. 나는 살짝 확인하고 이내 핸드폰을 뒤집어 놓다. 왠지 내 브런치를 보면 얼른 글을 써, 글을 올려야지 하고 독촉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에잇, 내가 그렇지 뭐, 무슨 글이야 하고 이제는 자기 학대까지 하다가 어차피 이대로도 행복하잖아? 식의 자기 합리화를 시도해본다. 그렇게 주말 내내 나는 몸이 좀 안 좋다는 핑계로 운동도, 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일요일 저녁, 자기 전 습관처럼 브런치에 들어가 여러 글들을 읽어본다. 눈으로는 글을 보고 있지만 내 머릿속은  쓰고 싶은? 써야 할? 여러 가지 글감들이 뒤죽박죽 섞여 각이 난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다시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짐하고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7시에 일어나기는 했다. 전 날 잘 못 자서 그런지 온몸이 쑤셔 제대로 움직이기 힘이 들었다. 몸이 무거우니 만사가 다 귀찮게 느껴졌다. 계는 오전 7시인데 내 몸은 오후 7시인 것처럼 소파에 드러눕고만 싶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러 나가야 하기도 하고, 운동도 하러 가야 하니까 우선 씻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으니 무거운 몸도 좀 풀리는 것 같고, 기분도 한 결 나아졌다. 일단 몸이 깨끗해지니 어디든 나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이따가 읽을 책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그렇게 삼일 만에 헬스장에 갔다. 금요일에는 속도를 올리고 뛰어도 숨이 가쁘지 않았는데 오늘은 천천히 걸어도 힘이 들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운동을 냈다.


밖에 나가 늘 앉던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어나갔다. 이 역시 삼일 만에 읽는 내용이라 이전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 앞쪽을 몇 번 더 읽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그렇게 나는 주말 동안 멈췄던 것들을 다시 더듬더듬 어나간 뒤 하원 하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노트북을 켜고 글을 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잘 써지지 않는다. 글쓰기도 근육과 같아서 매일 써야 한다고 하더니, 며칠 안 썼다고 몸과 함께 머리도 굳은 느낌이다. 그래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완성되고, 완성된 글이 늘수록 글솜씨도 늘 거라는 확신과 함께 말이다.


러다가 이 귀차니즘은 또 어느 틈에 나타나 나를 못살게 굴 것이다. 열심히 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그럴 때면 오늘처럼 일단 깨끗이 씻고 나서 천천히 움직면 된다. 그러다 보면  괜찮아겠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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