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쉽고 나는 건강해서

조금 더 건강한 백수일 때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탑승기 #1

by 클렁커

풍기는 한기만으로 코끝을 서늘하게 만드는 단어가 있다. 겨울이면 입김처럼 피었다 사그러지는 기억 속 냄새와 풍경들과 얼굴들.


시베리아, 첫 키스의 추억보다 날카로웠던 내 겨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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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살의 늦가을, 그토록 가고 싶어 회사를 다니며 준비한 또 다른 회사에서 귀하의 역량은 뛰어나나 함께 일하지 못해 아쉽다는 편지를 받았다. 다시 무언가를 하기에는 이제 지쳤다 싶은 기분이었다. 그만 둘게요. 매달 130만원을 받는 직장을 그만두기는 어렵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퇴사 선언으로 본의 아니게 여린 심성을 지닌 팀장님을 울리고서 나는 다시 무직자가 되었다.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점철된, 별거 없는 내 인생에 기왕 이렇게 된거 별거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몸을 더 시리게 만들면 마음에 서린 냉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차가운 나라로 가고싶었으나 남극은 멀었고 북극은 비쌌다. 적당히 추운곳으로 가자. 결정은 생각보다 빠르고 시시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인 러시아 동쪽의 블라디보스톡에서 8일을 달려야만 도착하는 모스크바까지, 준비할 시간이 단 일주일뿐인 조잡하고 엉성한 여행이었다. 한해 전 적도에서 일 년을 달궈진 몸은 한국의 추위에도 기함했다. 짐싸기를 마쳤을 땐 군용핫팩이 캐리어를 가득 채우고도 넘쳤다. 광역버스에서 고속버스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속초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행을 끝마친 기분이었다. 때 이른 두꺼운 외투 속에 가려진 피부에서 땀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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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에서 출국수속을 하며,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러시아인들을 처음 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작은 대한민국 어디에 있었을까? 반바지를 입고 뛰어다니는 러시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쏘렐 부츠를 신고 아웃도어 브랜드의 방풍 코트로 무장한 내 모습이 머쓱했다. 어느 추위 속에서 자라나면 저들처럼 매서운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까? 심지어 비교적 따뜻한 동쪽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친구들일 텐데.


큰 배였다. 대학시절 일본에 갈 때 탄 배보다 훨씬 컸다.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 국적의 젊은 직원이 객실까지 (핫팩으로 가득 찬)캐리어를 날라주었다. 나는 뒤돌아서는 그를 급하게 붙잡아 핫팩 세 개를 쥐어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달러나 루블을 쥐어줬어야 했다. 당시의 나는 국제 매너가 영 세련되지 못했다. 그는 나를 아직도 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다 위 밤과 새벽은 바삐 찾아왔다. 일찍 눈이 떠진 탓에 동틀 때쯤 갑판 위로 올라가자 분홍 수평선이 맹렬히 지구 구형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늘이 눈물나게 아름다웠으나 촘촘하지 못한 뼈마디가 시렸다. 바람이 귀와 뺨을 쳐대서 눈물 콧물이 흘러 금세 객실로 돌아와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고 느린 배는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음을 웅장하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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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은 따뜻하고 건조했다. 자본주의가 승리한 사회가 그렇듯 러시아에서도 역시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조용하고 청결한 칸에서 두 명, 혹은 네 명이 마주 누워 목적지까지 여유롭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나는 트인 통로를 따라 수십명이 각자 한 칸의 침대에 누울 수 있으며 객실 양 옆에 붙은 두 개의 화장실을 사이좋게 공유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객차에 짐을 풀었다. 설핏 설국열차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개방되어 있기에 범죄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출발지로부터 열차 안에서 70시간, 세 밤을 자야 목적지인 이루크츠쿠에 도착한다. 이런 긴 여행에는 이웃이 중요한 법이다. 맞은편에는 선물처럼 나의 타냐가 앉았다. 타냐는 나의 엄마뻘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녀의 딸 또래였다. 부리야트인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타냐는 목적지인 울란우데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보드카에 만취한 군인들로부터 나를 지켜줬고, 러시아어 선생님이 되어주었으며, 빵과 소세지와 과자와 홍차, 그리고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


그녀가 가지고 다녔던 컵으로는 죨떼, 노랑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나는 태양을 가리키며 죨떼, 라고 했는데 타냐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어를 배울때 세 살 아이 취급을 받는것은 익숙했다. 옛 연인도 스페인어로 "Abrázame"(안아줘)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똑같이 웃곤 했다. 타냐의 웃는 모습은 태양같았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노란색 머그컵을 마주칠때면 석양을 등지고 웃던 타냐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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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에서는 시간과 요일, 낮과 밤이 흐리고 엉망으로 섞인다. 특히 석양이 일러 해가 빨리 지고 어딘지 알 수 없는 자작나무숲만이 펼쳐져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된다. 나는 가끔 멍하게 있다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산 마트료쉬카를 색칠한다. 지루하게 누웠다가 일어났다 하면 타냐가 말을 붙여온다. 러시아어 여행사전을 뒤적이며 우리는 한국어와 러시어어가 병기된 예문으로 한참대화를 나눈다. 서로의 사진첩에서 사진을 보고, 서투르게 말하고 자지러지듯 웃다가 말이 막히면 멍하니 창밖에 시선을 두다가 다시 서로 가끔 말하고 알아듣기를 반복한다. 러시아어가 점점 늘어가고 눈치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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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는 싱화(Chinois, 중국인)라고 불리웠고, 유럽에서는 칭챙총이라고 불렸으며, 동남에서조차 니하오로 얼버무려지는 나는 열차 안에서조차 차별과 관심의 객체가 되었다. 이 나라에서는 보통 여성, 특히나 몽골로이드 외양을 가진(부리야트 족이 있음에도!) 젊은 여성 혼자 열차를 타는 일이 별로 없는듯 했다. 하기사 일부러 횡단열차를 타는 여행객이 아니면 비행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는 낙하산부대, 낙하산으로 들어간게 아니라 낙하산메고 떨어지는 일을 하는, 아마도 공수부대나 그 비슷한 곳에서 복무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과 같은 열차를 탔다. 그들은 내가 무슨 부대인지 알아듣지 못하자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줬는데, 비행기에서 짐보따리를 메고 떨어지는 그림을 그려서 처음에는 무슨 자살특공대인줄 알았다.


이 마음이 따뜻한 스무살 언저리 친구들은 내가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볼 기회따위는 없었다. 기껏해야 '저는 한국인입니다', '열차는 어디에서 탑니까' 정도가 러시아어로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긴 문장인 내가 어리숙하고 딱해보였는지, 내게 쵸콜릿을 주거나, 보드카를 주거나, 외국인 선교사를 본 개화기 아이들처럼 같이 사진을 찍고싶어 했다.


특히 이반이라는 친구는 보급품인 줄무늬 (New)내복을 나에게 선물했는데, 내가 답례로 동전처럼 생겨서 물에 불려서 쓰는 코인 티슈를 선물했을 때 마약이라도 주는줄 알고 나를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이반의 원래 직업은 교도관이라고 했다. 나는 답례로 가져온 핫팩과 캬라멜같은 것들을 나눠줬는데, 의외로 새콤달콤이 인기가 제일 좋았다.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 얼라들은 각자 간지의 완성인 부대의 문신을 내 손에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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