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한 생이 지나간 자리

영원한 나의 찬란한 아이, 노견을 보내며

by 클렁커



너를 잃은 날들이 너무 아파 나는 그동안 액정 속 네 얼굴 한번 보듬어 주지 못했다.


열일곱 해를 살아온 너의 마지막 가을을 붙잡았던 날들의 기록을 이제야 들춰본다.



2020.9.8


너는 평소보다 많이 저녁을 먹었다.

잘 씹지 못한 지 오래된 너를 위해 삶은 닭고기를 평소처럼 잘게 찢어 불린 사료 위에 얹어주었다.


하루 걸러 밥을 먹던 너는 어쩐 일인지 한 그릇을 다 먹고도 다시 보챘다.


너를 유모차에 올리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앉는 법 없이 네 다리로 내내 서 있었다.




2020.9.9



너는 퇴근한 나를 올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각막궤양이 심했던 지난날처럼 왼쪽 눈을 똑바로 뜨지 못했다.


너는 살아온 날들에 비해 앓은 날들이 얼마 없었고,

나는 이후의 몇 일이 네가 앓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 직감적으로 느꼈다.


연초부터 설사가 잦았고

아프지 않았던 곳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혀의 종양을 떼기에 너는 마취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약해졌고

어떤 명의도 세월을 고치지는 못하기에, 병원에서도 너를 익숙한 품 안에서 보내기를 권했다.


너는 세상을 희미하게 본 지 이미 오래라서

찬란하게도 지는 노을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잠들기 전, 너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나 단단하고 예쁜 대변을 봤다.


이후 뱃속을 비우려는 것처럼 입을 닫았다.





2020.9.10



어제보다 왼쪽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었다.

졸렬한 희망이 가슴에 피고 졌다.


너는 아프거나 그렇지 않거나 계속 엄마를 찾았기에 부엌 한 켠에 앉혀두었다.

끙 하는 앓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끼잉 하며 보채지도 않았다.


너는 김치를 담는 엄마를 하염없이 쳐다봤다.

어느 순간은 초탈한 것처럼 낡은 표정이었다.

너는 아프다는 이야기 대신 오래된 정물처럼 고요하게 사라져 갈 준비를 했다.




나는 출근을 하면서도 울고 운전을 하면서도 울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다가도 발작처럼 눈물이 났다.


그러나 현관을 들어서면 절대 울지 않았다.

네가 떠나는 것이 사실이 될 것 같아서였다.


주사기로 너에게 먹일 뉴케어가 택배로 도착해 있었다.

편의점에서 네가 장염에 걸려 설사를 할 때면 먹는 포카리스웨트도 샀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얼음도 한 봉지를 샀다.


노견을 앞서 보낸 이들이 아이가 간 뒤 얼음 위에 눕힌다고 한 글을 여러 번 읽어서였다.


너의 삶을 기원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모순이 죄스러워 얼음 봉지 소리 행여나 들릴세라 냉동실에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