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그 장소
실제로 경험하지도 않았던 어떤 순간이 오래도록 잔잔한 그리움으로 남을 때가 있다.
십 대의 나는 왕가위 영화 속 이민자 청년들의 공허를 함께 앓곤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렇듯 수많은 탱고 공연 속에서 홀리듯 영화 해피투게더의 명소, 바수르의 티켓을 먼저 끊을 수밖에 없었다.
노동과 사랑으로 곪아가던 양조위가 동향의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던 그 문 앞에서 나는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을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기까지 했다.
연로하지만 정정한 매니저는 영화 속 성지가 전하는 감동에 전율하는 나 같은 관광객을 수년간 봐왔던 만큼 프로페셔널하게 공연을 안내해 주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아담했고 관람객도 나를 포함한 세 테이블이 전부였다.
반도네온과 피아노 이중주로 쇼가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보는 탱고 공연이었다. 댄서들이 테이블과 아주 가깝게 춤을 춰서 옷감이 스치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 이마에서 흐르는 땀까지 까지 전해져 왔다. 표정은 출근한 직장인과 다를 바 없었으나 중간중간 관객과 포토타임까지 가지며 고객만족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에게서 쇼비즈니스적 감동을 적절히 느낄 수 있었다.
세 시간을 지나 자정이 다 와가고 공연도 슬슬 막바지로 치달을때쯤, 중국계로 보이는 촬영팀이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바수르의 문을 열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국인 남매들과 나는 눈을 맞추며 동시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공연을 마무리하려던 가수와 연주자, 댄서들이 공연의 처음과 같은 대형을 만들었다. 퇴근 직전 부장님에게서 업무를 받은 내 표정을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저토록 프로답게 실망의 표정을 감출 수 있는가.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타며 다시 한번 바수르를 돌아봤다. 낡은 살롱이 역사처럼 서있었다. 반도네온 소리는 구슬펐고, 내 사진을 찍어 줄 아휘는 없었고, 나는 밤바람 속에서 있을 리 없는 아르헨티나의 향수를 오래도록 느꼈다.
어떤 옛날, 당시 평균 키가 155cm 정도였던 스페인 사람들이 칠레 지역에서 188cm 정도의 사람을 맞닥뜨렸을 때 거인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들은 그곳을 거인들의 나라 파타고니아로 명했다. 물론 나에게 파타고니아란 그냥 월스트리트 직원들이 입는 비싼 플리스 브랜드 정도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잠시 뒤로 하고 거인의 소문이 무성한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이 곳에 위치한 엘 칼라파테는 설산과 빙하 트레킹을 위한 여행의 관문이다. 하늘에서 보이는 분홍색 호수가 깜찍하다. 엘 칼라파테 공항에서 바로 미니밴을 타고 작은 마을인 엘 찬텐으로 향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과 쌍벽을 이룬다는 피츠로이의 일출을 보려는 야심 찬 계획을 안고.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잠만 자고 일출을 보러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4인실 정도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워 눈물이 날 만큼 허기가 졌다. 혼자 다니면 대충 주워 먹고 다니는 편이라 요리를 먹은 지가 오래였다.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적당히 고른 피자가 너무 짜서 내가 인종차별을 당한 것인지 메뉴 선택에 실패한 것인지 헷갈렸다.
한 시간 정도 산보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콘도르 전망대로 향했다. 길이 하나라고 하길래 지도를 보지 않고 잘 읽지도 못하는 이정표만을 따라 한 길을 쭉 따라갔으나 역시나 샛길로 빠진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어쩐지 사람들이 저 멀리서 언덕을 오르는 내 모습을 힐끔대며 쳐다보았는데, 나는 그냥 여행가들 간의 관심인 줄 알았으나 그냥 왜 끔찍한 가시덤불 속을 걸어가는지 희한하게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중얼거리며 언덕을 내려왔다. 파상풍이 걱정될 정도로 덤불이 다리를 찔러댔다. 깨달음은 우연으로 밀려온다.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은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멀리 보이는 구름만큼은 아주 부드럽고 달콤했다.
더블베드에 화장실이 딸려있는 호텔을 두고 여럿이 자고 여럿이 먹는 호스텔에 묵는 이유는, 물론 경비 절약면에서도 그렇지만 혼자 하는 오랜 여행에 가끔 불특정 다수의 말동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호스텔에는 밤새 파티에 취해 새벽에 웃통을 벗은 채 들어오는 유럽 십 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엘 찬텐의 콘도르 데 안데스 호스텔 4인실에서는 중년의 오스트리안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부부는 아니었고, 사이클링 동호회에서 만난 은퇴자들이었다.
대개 여행지에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관대하다. 살다 보니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오래도록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도 나의 상대적인 젊음을 핑계로 그들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린다. 다음날 해가 뜨기 전 산행을 해야 하는 우리는 유럽의 난민 문제에 대한 유익하고도 열띤 토론을 하고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