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쉽고 나는 건강해서-아르헨티나(3)

이런 힙은 처음이라 - 첫날

by 클렁커

화려한 시트는 베드버그를 숨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얼룩덜룩한 시트를 보며 과연 저 침대에 베드버그가 없을 것인가 의심의 눈초리를 할 새도 없었다. 대충 꿉꿉한 몸통에 물을 뿌리고 나서 누가 뒤통수를 후려갈겨 쓰러진 사람처럼 곧바로 잠들었다. 한 시간 후로 맞춰둔 알람이 일요일 오후가 느지막이 시작됨을 알렸다.




한시라도 빨리 숙소에 오고 싶은 마음에 공항에서 환전을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일요일에 핫하다는 데펜사 거리 벼룩시장과 산텔모 시장을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단 한 장의 페소도 쥐고 있지 않았다. 환전소가 밀집한 플로리다 거리에 어느 곳 하나 문을 연 데가 없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이후로 물 한잔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실수 있는 삶의 소중함을 느꼈다. 타는 목마름으로 스타벅스를 노려보았다. 저곳에서 KB국민카드를 받아줄까?


비가 내렸다. 하늘이 나의 허기를 슬퍼하고 있었다.



사실 어느 모퉁이마다 어둠에 녹아든 아저씨들이 내가 지나갈 때 "깜비오, 깜비오"라 속삭이며 불법 환치기를 조장하고 있었다. 페소화의 가치를 낮춰 관광활성화를 도모하는 그들의 노력이 유혹적이었다. 그러나 아는 스페인어 문장이라고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기차를 놓쳤습니다.' 따위밖에 없는 나로서는, 홀랑 털리고 나서 경찰에게 '환전을 놓쳤습니다.'라고 울부짖고 싶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골목을 한 시간 정도 뒤지고 나서야 겨우 하나 연 정식 환전소를 찾을 수 있었다.


환전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보통은 영수증이나 주면 감사한 정도이나 외환관리가 극도로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달랐다. 나의 신상정보는 물론 직업까지 써야했다. 그 과정에서 환전상과 나는 서로 할 줄 아는 언어로 강력하게 서로를 이해 못하겠다고 주장했다. 문득 암호 같은 그의 말속에서 초급 스페인어 완전정복에서 들은 단어를 집어 챘다. '너, 무엇, 일?(Trabahar?)' 나는 '사무직!(Oficinista!)'이라고 소리쳤다. 환전상이 됐다는 듯 손뼉을 쳤다. 드디어 낯선 화폐 한 뭉치를 얻어낼 수 있었다.




대통령궁 근방에서는 스페인의 날 행사가 한창이었다. 길거리 음식점에서 빠에야를 팔고 있었는데 여기만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이 맛집 같았다. 한 그릇을 받아서 돌아가려는데 급하게 나를 불러 세웠다. 내 차례가 아닌데 받아왔나? 했는데 한 접시를 더 줬다. 퇴근 무렵이었는지 원플러스 원이었다. 나는 한 접시만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감 없이 노 끼에로.. 중얼거리고는 뒤에서 그걸 찰떡같이 알아들은듯한 여성분에게 한 접시를 내밀었다. 여성분의 환한 웃음을 뒤로하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배가 너무 고파서였다.


딱 길거리 음식 그 정도의 맛이었지만 이 순간은 미슐랭 쓰리스타였던 빠에야.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리게 했다. 샌프란시스코가 오밀조밀하고 어쩌면 쇼킹하기도 한 다문화 사회가 뿜어내는 힙이라면 이 도시는, 데펜사의 어느 골목들은 한때 황금시대였으나 쇠락이 그 팔목을 베어내어 끝내 풍화된 힙함이 가득했다.


데펜사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도시에 동양인 관광객이 적다는 것이었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기도 했지만 유럽이나 미주보다 길거리 아시안의 비율이 현저히 적었다. 지난 40시간의 여정을 떠올려보면 그럴 만도 했다.


포즈를 취해주던 시청자


이 날은 마침 라이벌 구단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자고로 축구에 미친 나라에서 큰 경기가 있는 날은 거리에 나돌아 다니는 게 아니라고 배웠다. 비 온 뒤 바람이 서늘해졌고 비 맞은 몸도 으슬거렸다. 데펜사 거리의 끝무렵 마주친 바수르(BARSUR) 앞에서,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양조위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서 괜히 심장이 저릿 거림을 느껴보다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