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식구
고양이를 키울까 고민하시는 분들께
저희 집에는 함께 살게 된 지 7년 정도 된 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워낙 동물을 그리 좋아하는 성향도 아닌 데다가, 그때 당시 키우는데 돈은 많이 들어가는데, 부모말은 죽어라 안 듣는 중딩과 초딩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처남으로부터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워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아내에게 접수되었습니다. 예쁘고 성격도 괜찮은 샴 고양이가 있는데, 현재의 집사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고양이를 돌볼 수 없게 되었다면서요. 아내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는 어느 정도 고양이 입양을 결정한 후 저에게 통보하듯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거절하였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돈쓸데도 많고 신경쓸데도 많은데 반려동물까지 신경 쓰기는 싫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집요한 요청이 며칠간 지속되었고, 저는 어쩔 수 없이 고양이의 입양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분명하게 단서를 달았습니다. "좋다. 너희가 그렇게 키우자고 하니 동의하겠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 키우는데 드는 비용을 대는 것 외에, 고양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어떠한 것도 하지 않겠다!"라고요. 이렇게 가까스로 협상이 타결되어 샴고양이 한 마리가 저희 집 다섯 번째 식구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양이는 좀 사납고 앙칼지다고 알고 있었는데, 저희 집에 온 초콜릿색의 토실토실한 암컷 고양이는 처남 말대로 성격이 좋은 녀석이었습니다. 인물도 아니 묘물도 꽤 봐줄 만했고요. 앞으로 묘권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녀석을 '초코'라는 가명으로 부르겠습니다. 녀석을 입양하고 몇 개월 후에 저희 집에 놀러 온 지인이 도도하게 창가 테이블에 앉아있는 초코를 보더니 한마디 하더군요.
"이야~ 이 집 인테리어의 완성은 고양이네.. 고양이야..."
초코가 처음 저희 집에 온 날에는 책상 아래 숨어서 야옹 거리며 상당히 경계를 했었었습니다. 하지만 이틑날부터 식구들이 집을 비우면 몰래 집구석 여기저기를 염탐하는 듯하더니, 나흘 정도 되니 완전히 적응하여 거주한 지 몇 년은 된 자기네 집처럼 상당히 편안해하더군요. 그러는 동안 저를 제외한 고양이 집사들께서는 고양이의 환심을 얻기 위하여 고가의 습식사료(츄르 라고 하는), 다양한 낚싯대 장난감, 고가의 메이커 스크래처, 화장실과 모래 등등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서 고양이 양육 관련한 다양한 도서들도 대출해서는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소에 제가 책 좀 읽으라고 시키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책을 멀리하더니 말이죠.
여튼 이렇게 식구들이 점점 고양이 집사화(化) 되어가는 동안, 저도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하여 점점 알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개를 키우는 것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더군요. 개는 항상 관심도 가져줘야 하고,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대소변도 자주 치워줘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데 비하여, 고양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고양이와 집사간에 서로의 사생활을 가질 수도 있고, 대소변도 자기가 알아서 보고(화장실을 한 번씩 치워줘야 하지만), 필요할 때 잠깐씩만 놀아주면 되었습니다. 밥과 물만 잘 주면 그리 손이 가질 않더군요. 털은 개보다 많이 빠지지만 말이죠. 여튼간에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개보다는 고양이 키울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저녁잠이 많아서 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어서 5시 반 정도에 일어나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뭔가 거창하게 미라클 모닝 같은 것을 하려는 것은 아닌데, 꽤 오랫동안 생활 패턴이 그렇게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저희 집에 오고 나서 두 주 정도 지났을까,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고양이가 어디선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더니 자기의 빈 밥그릇을 바라보며 소심하게 "미욤~ 미욤~" 하더니 저를 슬쩍 한번 보더군요. 저는 고양이와 놀아주기, 똥치우기, 밥 주기, 청소하기 등 어느 것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던 터였지만, 어쨌거나 같이 동거하는 사이에 고양이 밥 한번 주는 게 뭐 별일 있겠냐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이 밥 주는 것을 곁눈질로 봐 두었던 저는 고양이 밥그릇 근처에 보관되어 있는 건식사료 통을 찾아서 뚜껑을 열고 고양이 밥그릇에 우르르~ 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 몰래 새벽에 고양이 밥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거만한 녀석이 저를 지 밥당번으로 인식을 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주말에도 새벽 5시 반이 되면 어김없이 침대 위로 올라와 제 얼굴 앞에서 "미욤~ 미욤~"하면 비릿한 고양이 입냄새를 풍겨대는 바람에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게 합니다. 또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때까진 아내 옆에서 조용히 누워 쉬고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저에게 와서 "미욤~ 미욤~"하는 것이죠. 그럼 저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어야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의아해합니다.
"아니 초코는 잘 있다가 왜 아빠만 보면 밥을 달라고 난리를 치지?"
"글쎄~ 희한하네. 아빠가 만만해 보이나?"
"이 고양이 녀석은 왜 나만 보면 밥 달라고 하지? 나 없을 땐 모두 고양이 굶기고, 막 학대하고 그러는 거 아냐?"
라며 어물쩍 둘러댔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큰소리로 선언했던 제가 새벽 시간에 고양이에게 기선 제압 당한 것을 가족들에게는 차마 고백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어쩌다 보니 7년이 넘도록 고양이 밥당번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똥치우기, 발톱 깎아주기, 놀아주기, 털 밀어주기 등등은 아내의 일이 되어버렸구요. 고양이 데려오기 전에는, 고양이만 데려오면 똥 치우고, 밥 주고, 매일 놀아 주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던, 이제는 고딩과 중딩이 된 청소년 집사들은 지들 필요할 때만 잠시 놀고 맙니다. 혹시나 고양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싶은데 가족들 사이에 의견 일치가 안 되는 분들께 충고드립니다. 전적으로 아내/엄마의 의견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결국 모든 것은 아내/엄마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7년차 노련한 고양이 밥담당 집사로서, 고양이를 키우면 생기는 몇 개를 이슈사항을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1) 종류마다 좀 차이는 있겠지만 고양이는 털이 많이 빠집니다. 소파, 침대, 방바닥, 빨래 여기저기 고양이털 투성이가 됩니다. 깨끗이 치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고양이 털과 함께 산다고 봐야 합니다.
(2) 고양이가 스크레쳐에만 발톱을 긁으면 좋겠는데, 소파, 의자다리, 오디오 스피커 등등 지 맘대로 여기저기에 발톱을 긁습니다. 아내가 "이제 소파를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 "새 소파를 고양이가 벅벅 긁어버리면 어쩌려고?" 라도 하여 소파값을 아끼실 수 있습니다.
(3) 아내가 함께 처갓집을 가자고 할 때, 혼자 집에서 게임을 한다거나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싶다면 다음처럼 말하시면 됩니다. "고양이 밥 주고 화장실 청소해야 해서 나는 못 갈 것 같아. 내가 희생해서 고양이 모시고 있을 테니 자기가 아이들만 데리고 친정 다녀와."라고요.
(4) 고양이 화장실을 제때 안 치워지면 집안 다른 데에 똥을 싸버립니다. 그러니 바빠서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깜빡한다면 새벽에 화장실 가다가 고양이 똥을 밟고 나서 화들짝 잠이 깰 확률이 꽤 높아집니다. 로또 당첨을 바라시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