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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Dec 22. 2024

동지

22-12-24

삶은 아주 강한 사람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장남이었지만 첫 번째 자식은 아니었다.

내 위로 나의 삶을 살 수 있었던 형과 누나가 있었으며 그들의 천명은 누군가의 신념에 의해 잘리고 말았다.

처음으로 펜을 잡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죽음으로 내가 살아간다는 것을 끄적였고 멈추지 않고 죽음에 관하여 적었다.


잠시 머물러 의견을 청하는 길목에서마다 차분해지고 자신에 차 있으려 노력했지만 마침내 별이 떠오르고 내가 선택한 길이 맞았다고 판단했던 날에 놀라고 말았다.

신념이 타협을 위해 순교했다고 생각한 날에 세상의 모든 유약한 자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던 날에 비로소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인생이라는 신 에게 나의 여정이 길어질 것 같다는 엽서를 쓸 때 듣고 싶은 목소리가 멀리 있어 전화를 걸 수 없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 그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악마라 할지라도 더 나은 것이 있더냐고 물을 것이다.


아주 평범하고 차분한 날에 내가 그들 중 하나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던 날에 빈 수화기를 앞에 두고 수많은 메시지를 삭제한 날에 친구의 죽음 전해 듣고 은사님의 자살을 전보받던 날에 비로소 삶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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