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9
3월 25일(격리 10일째) 수요일 맑음
프랑스의 코로나 19 피해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오늘까지 확진자수는 2만 5천332명, 사망자는 1천331명이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가 3천 명에 달하기 때문에 사망자는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오늘 프랑스 내 집단 감염지 중 하나인 동쪽 뮐루즈의 군 야전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군대를 투입해 감염자 치료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루에 최대 2만 9천 명까지 검사 역량을 늘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날 행정부는 교도소 미결수 6천 명 석방 등 25개 중요 조치를 발표했다. 최근 수감자가 코로나 19로 사망한 일이 발생한 데 따른 결정이었다.
나 같은 일반인들이 밖에 나가기 위해서 지참해야 하는 증명서 양식도 새로 내놓았다. 원래 예외조항이 5가지에서 7가지로 늘었고 몇몇 조치들이 추가됐다. 법원이나 공공기관에 가야 하는 경우에 대한 조항이 들어갔다. 외출할 때 지켜야 할 사항들(집에서 1킬로미터 이내, 1시간 이내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살짝 반가운 소식은 한 집에 사는 구성원일 경우 함께 외출해도 좋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산책을 가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가장 아래 날짜를 쓰는 칸 옆에 시간도 쓰도록 했다. 그래야 1시간 이내라는 조항에 대한 조사가 가능할 테니까.
정부의 발표 중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조만간 이동제한 조치의 기한에 대해 밝히겠다고 한 점이다. 아마도 초기에 최소한 2주라는 말을 했으니까 곧 2주가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2주로 끝나는 거냐, 계속되는 거냐, 그럼 언제 까지냐, 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지 않았을까. 아마도 전체 이동제한 조치 기간은 총 6주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익명 관계자의 멘트가 있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겠지. 만약 정부가 곧 발표하더라도 최소 기한을 말할 뿐 최종 기한을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확진자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언제 끝이 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시 한번 되새기는 거지만, 장기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전 내내 첫째 아이 방의 페인트칠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다 막혔다. 물에 개어서 울퉁불퉁한 벽을 고르게 하는 석고 가루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대형 마트 세 곳을 돈 뒤에야 원하는 물건을 찾았다. 세 번째 마트로 가기 전에 전화로 문의를 했는데,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왜 석고 가루를 찾기가 어려운지 해답을 얻었다. 석고 가루뿐 아니라 페인트도 구색이 갖춰져 있지 않고 진열대 위에 비어 있는 색깔들이 꽤 많았는데 거기에 대한 답도 됐다. 식료품 등 필수 품목이 아닌 경우는 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재고가 더 이상 없는 브리콜라쥬 코너는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격리 상황을 이용해 모든 아빠들이 딸의 방 벽을 새로 페인트칠해주는 줄 알았다. 본의 아니게 페인트 작업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석고가 마르고, 석고를 발라준 곳을 다시 사포로 문질러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준비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작업 속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에 머물게 된 이후로 성당을 가지 못했는데 신앙의 관점 또는 정신적 생활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바빠졌다. 어려운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고자 하는 연대의 손길이 그 전보다 더 끈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같은 시각에 함께 기도하자는 내용의 메일이나 문자가 자주 오고 있다. 스카우트 본부에서, 본당에서, 교구에서, 학교에서. 직접 연락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바티칸에서도. 오늘은 코로나 19 퇴치를 위한 9일 기도의 마지막 날이자 일명 수태고지라 불리는 주님탄생예고대축일이다. 프랑스 주교회의는 이날 오후 7시 30분에 모든 성당이 종을 울리고 신자들은 테라스에 촛불을 켜고 병자와 죽은 자를 위해 함께 기도를 올리자고 제안했다. 우리 가족은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테라스 옆으로 가서 촛불을 켜고(첫째와 둘째가 서로 성냥을 켜겠다고 티격태격하는 과정은 필수), 9일 기도의 9일째 기도를 바쳤다. 첫째는 “우리 동네에서 촛불을 켠 집은 우리 집뿐”이라고 한 마디 했다. 집 근처에 성당도 있지만 이슬람 사원이 두 곳이나 있으니 뭐 놀랄 일은 전혀 아니다. 성당 아니라 이슬람교, 개신교, 유대교 어디서도 집회 금지 조치를 두고 종교 탄압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다르지만 모두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기도를, ‘함께’ 할 것이다. 다만 지향은 하나가 아닐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도록 용기를,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