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을 밟다
2018.8.5.(일)
파니올로 그린즈 체크아웃-힐로한인기독교회-칼라파나(Kalapana)-정글숙소-새 숙소-카페 페스토(Cafe Pesto)
아침에 수영할 거야? 어제 일정이 빡빡해서 일어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애들이 벌떡 일어났다. 네모난 평범한 풀에, 키를 넘는 깊이라 애들이 잘 놀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이들은 이 수영장을 너무 좋아했다. 나는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아빠와 수영장으로 갔다. 이 숙소에서의 마지막 식사구나. 나는 음악을 틀고, 창을 좀 더 자주 내다보며 냄비밥을 하고, 식당에서 챙긴 버터로 연어를 굽고, 계란 프라이를 했다.
오늘은 힐로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힐로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힐로 숙소로 가기로 했는데, 교회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힐로한인교회 홈페이지에는 5월에 있었던 용암 분출 이후로 주보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갈 장소 중에 용암이 분출된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혹시 용암이 덮친 것이 아닌지 걱정됐다. 전날 교회로 전화해 봤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목사님 전화번호로 밤늦게 전화를 해서 겨우 연락이 됐다. 다음 날 예배가 있다고, 하루 자고 보자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복층짜리 숙소를 마음껏 썼더니 짐은 여기저기서 계속 나왔다. 아쿠아슈즈를 비롯해 안 마른 빨래들, 사실 마를 틈이 없었던 빨래들은 조금만 더 말리고 싶은 욕심에 베란다에서 빼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수영하고 온 애들도 챙겨야 했고, 아침 한 끼 해 먹었을 뿐인데 설거지는 산처럼 쌓여있었다.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숙소 정리를 잘 안 하고 나와서 메이드들이 한국인이 사용한 숙소 청소를 기피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래서 깨끗하게 정리해놓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어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까지 생겨서 엄청 분주했다.
우리 숙소 앞에 활활 타오르던 불은 꺼졌지만 아직 완전히 bush fire(산불)가 잡힌 건 아니라서 국도가 막힌 곳이 있었다. 구글맵으로 확인해 보니 우회로를 타야 해서 소요시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1시간 더 늘어나 있었다. 체크아웃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하느라고, 팁 놓고 오는 걸 깜박했다. 열쇠를 반납한 후에 생각이 났다. 프런트에 있던 언니한테 팁을 안 놓고 왔는데 대신 전달해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괜찮다고 그냥 가란다. 아이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되고 싶었는데...
주차장 앞에서 큰 익룡 같은 닭을 봤다. 칠면조였다. 칠면조는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에겐 동물이 아니라 ‘음식’에 가까운데 바로 눈 앞에서 고양이처럼 풀밭을 이리저리 다닌다. 하하하.
하와이에서 만난 동물들을 한번 읊어본다. 단순히 본 게 아니다. 동물원 한 번 안 갔는데, ‘만난 거다’.
돌고래, 거북이, 게코, 칠면조...
결국 30분이 넘게 지각해서 힐로 한인교회에 도착했다. 화산재에 덮여 있는 모습까지 상상했던 교회에는 거의 10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애들 데리고 여행 준비하며, 화산은 그렇다 치고, 예기치 못한 화재와 허리케인 소식에 자꾸만 요동치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힐로는 이번에 허리케인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한 곳이었고, 우리는 허리케인이 온다는 주에 힐로로 왔다.
예배가 끝나고, 비빔밥을 먹었다. 우와 너무 맛있었다. 남편 표현대로 '은혜로운 비빔밥'이었다. 이런 게 먹고 싶었다. 머리가 하얀 교수님 같은 할아버지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은퇴하신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었다. 하와이로 오게 된 이야기, 형제들도 다 초청해서 미국에서 살게 된 얘기, 순탄치 않았던 적응과정, 용스 갈비 셰프인 조카 이야기까지 숟가락도 내려놓고 빠져들어 들었다.
빅아일랜드는 여행하는 한국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한국말만 들어도 반가워서, 어 한국 사람이다! 하고 아는 척하며 말을 거는 게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만나니, 할아버지의 인생 스토리까지 듣게 되니, 고향에 온 것처럼 따뜻하고 아늑했다. 다시 만날 일 없는 뜨내기 여행객 가족에게 이리 친절한 것도 너무 고마웠다. 친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목사님이 와서 힐로에서 여행할 곳은 정했냐고 물어보셨다. 대충은 정했는데, 하고 얼버무리자 ‘잠깐만’ 하시고 큰 지도를 가지고 오셨다. 펜이 안 나오니 ‘잠깐만’ 하고 또 가서 펜을 가지고 오셨다. 지도에 동그라미로 표시를 해가며, 어느 여행 책자에서도, 블로그에서도, 카페에서도 쉬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를 방출해주셨다.
‘어디가 좋아요.’ 정도가 아니라 아카카 폭포에서 나오는 길에 있는 세 번째 액세서리 집 아이스크림이 엄청 맛있으니 꼭 먹어보라는 고급 정보!
여기에서는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어보세요! 여기까지는 사람들이 다 아는데, 정말 좋은 숨은 명소는 이 뒤에 있어요!
거북이로 유명한 비치는 아닌데 여기가 사실 거북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그때 다 적어놨어야 했는데, 쏟아지는 정보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우리는 ‘근데 그때 목사님이 어디라고 했었지?’ 하고 막상 제일 중요한 '여기'들을 까먹었다. 지도 위 동그라미와 목사님 설명이 서로 짝을 이루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다. 아이고 아까워라.
화산이 무서워서 빅아일랜드 일정을 다 뺄까도 고민했던 우리였는데, 왠지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져서 ‘화산을 제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예요?’하고 과감하게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용암 때문에 도로가 통제된 곳이 많았는데 130번 도로 끝까지 가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토네이도가 온다는데’ 하는 말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이 여행 명소 소개를 계속해 주셨다. 목사님 말대로, 목사님이 소개해 준 곳들을 다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토네이도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목사님의 편안함이 나에게 그대로 전염됐다. 나의 뇌와 마음에 90프로를 차지하고 있던 단어 ‘토네이도’가 점점 쪼그라들어 흔적만 남았다. 목사님은 화산과 토네이도, 여러 자연재해가 일상인 힐로에 살고 계셔서 아무렇지 않으신 걸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들락거리던 하와이 뉴스 앱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정말로 토네이도는 힐로를 비껴갔다.
예배가 끝나고,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우리는 칼라파나로 향했다. 칼라파나는 1990년 킬라우에아 화산의 용암분출로 150가구 이상이 없어진 마을이다. 20년 전에 용암에 집어삼켜진 올드 칼라파나에 갔다. 들어가도 된다는 건지, 안된다는 건지 헷갈리는 표지판들을 애써 외면하고, ‘저기 가는 차 있는데?’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까만 바위들을 밟고 사진을 찍고, 돌아 나왔다. 이 밑에, 한 마을이 파묻혀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다음엔 올해 5월에 용암이 방출된 곳으로 이동했다. 'Keep windows up!(창문을 올리세요!)'이라고 쓰인 표지판과 안전요원들이 보였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걸었는데 살아있는 화산의 느낌이 나는 곳이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화산의 '냄새를' 맡았다. 유황 냄새가 확 올라오는 곳이 있었다. 왜 keep windows up이라고 쓰여있는지 알 것 같은 냄새였다.
화산 냄새를 맡 아 봤 다.
우리는 얼른 차로 돌아왔다. 화산공원이 폐쇄돼서 가지 못하고 라바 트래킹을 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지만, 냄새를 맡았다. 그걸로 됐다. 130번 국도를 따라 도로 통제 시작점까지 갔다가, 안전요원들의 포스에 소심해져서 주차 한 번 못해보고,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라는 듯 돌아왔다. 주변이 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화산 연기 냄새가 나고 있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까맣게 타버린 곳이 있는데도 정원에는 뛰어노는 아이들과, 마당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통제선을 넘지만 않으면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일까? 내가 사는 이곳이 위험했으면 나라가 벌써 나를 대피시켰을 거라는, 그러지 않은 걸 보면 여긴 괜찮다는 그런 믿음이 있는 걸까? 실제로 1990년에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을 때도 주민들에겐 대피령이 내려 인명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세월호가 생각났다.
부푼 꿈을 안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정글숙소(가칭)를 찾아갔다. 하와이 여행에서 유일하게 내가 고르고 예약한 숙소였다. 나머지는 다 남편이 했다. 남편이 혼자 숙소를 정하고 예약하는 작업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작업이었을지 이 숙소를 예약하며 느꼈다.
싸고 좋은 숙소, 여행 기분이 나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숙소를 고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검색을 하면 할수록, 이 가격에 이 숙소를 예약하면 손해인 거 같고, 더 싼 딜이 나올 것 같고, 그러다 며칠이 지나서 겨우 결정을 하고 들어가면 예약이 이미 꽉 차 있다. 다시 도돌이표이다. 이 숙소는 수영장이 없고, 애들이 침대에서 떨어질 거 같고, 진드기가 나왔다는 후기가 많고, 주차비가 비싸고... 따져 볼 게 너무 많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아무 데나 괜찮으니까 당신이 예약해.’해 놓고, ‘아직도 안 했어? 아무거나 얼른 하자.’ 이렇게 무책임하게 남편을 재촉했다. 하와이는 지역이 워낙 방대해서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로 ‘여기가 가성비 짱이래.’ 이런 얘기만 툭툭 던졌다. ‘친구가 그러던데. 카페에서 봤는데’ 하면서. 그런데 내가 아는, 들은 정보들은 다 제자리를 찾을 수 없는 퍼즐 조각 같아서 남편이 오아후 얘기를 하는데 나는 빅아일랜드에 있는 숙소 얘기를 하는 식이었다.
나는 여행 계획 짜기가 숙제 같고 어렵다. 우리 남편은 여행 계획을 짜면서 설레어한다. 나는 가서 어디서든, 무얼 먹든 만족할 것 같다. 우리 남편은 어디를 가든지 최선의 것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이걸 핑계로, 나한테는 힘든 일이지만 우리 남편한테는 즐거운 일일 테니 남편한테 맡겨야지, 이런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어찌 즐겁기만 한 일일 수 있을까.
결정할 게 많아지니 남편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색시가 보고 오늘 중으로 결정해줘.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힐로 숙소는 내가 맡게 되었다. 힐로에서는 밖에 있을 시간이 많아 좀 저렴하고, 식사를 집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숙소로 에어비앤비에서 고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싸고 좋은 숙소는 풀 북이었고, 우리에겐 선택지가 몇 개 없었다. 나는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고, 정글숙소를 선택했다. ‘이거! 이걸로 하자!’
2년 전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했던 민박집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락에서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우당탕탕 뛰어다니던 그때를 생각하며 다락이 있는 숙소를 골랐다.
그런데...
-이날 오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8, PM'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