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바꾸다
2018.8.5.(일)
파니올로 그린즈 체크아웃-힐로한인기독교회-칼라파나(Kalapana)-정글숙소(가칭)-새 숙소-카페 페스토(Cafe Pesto)
-이날 오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8, AM'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숙소였는데, 차에서 내려 짐을 풀 때부터 모기가 너무 많았다. 숲에 둘러싸인 숙소였는데 그래서였을까. 모기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집 안에도 모기가 많았다. 찰싹, 찰싹 남편도, 애들도 모기를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마침 숙소 관리인 론이 물건을 채워놓으러 왔다. 우리는 태풍이 예고되어 있으니 창문 닫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창문이 독특한 스타일이라 론도 힘들게 열고 닫았다. 심지어 어떤 문은 밖으로 나가서 닫아야지 닫혔고, 아예 닫을 수 없는 창문도 있었다. 한 10분간 론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론이 떠났다.
그때서야 집 구석 구석을 살펴보고 우린 알았다. 모기는 밖에서 우리를 따라 들어온 게 아니라, 아예 이 집에서 떼로 살고 있었다. 바글대는 모기떼가 눈앞에 보였다. 10분 만에 수십 대를 물렸다. 이 집에서 묵으면서 잘 자고 잘 먹기란 불가능했다. 느리고 우유부단한 나인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대충 넘어가는 나인데, 이때는 달랐다. 바로 론에게 전화해서 모기 때문에 이 숙소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고 얘기했다. 론이 바로 다시 오겠다고 했다. 론도 알고 있었다. 원래는 모기가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2주 전부터 모기떼가 나타났다고 했다. 괜찮다면 모기 내쫓는 스프레이를 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이 집에 있는 모기 양이 스프레이 몇 번 뿌려서 없앨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관리하고 있는 다른 집으로 옮겨 줄 수 없냐고 물었다. 론은 딴 집은 수리 중이라 옮길 수 있는 숙소가 없다고 했고, 우리는 숙소를 취소하고 환불받고 싶다고 했다. 론도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자기는 관리인이고 돈과 관련된 부분은 주인이 결정하는 부분이니, 자기가 주인에게 잘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4박 5일 치 숙소비의 대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리는 10분 남짓 머물렀고, 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숙소를 탈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장 갈 곳이 없었고, 얼마를 환불받을 수 있을지 확실히 모르는 상황이라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다. 급하게 숙소를 검색해 상대적으로 비싼 돈을 주고 새 숙소를 예약했고, 취사가 가능하지 않은 곳이라 요리해서 먹으려고 바리바리 싸왔던 식재료들을 버려야 했다.
속상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다. 애써 속상하지 않은 척했다. ‘여기서 모기랑 싸우느라 잠도 못 자고 다음 일정 다 망칠 뻔했는데 잘 결정했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은 했지만, 여행이 정점을 찍고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 옮긴 숙소는 허름하고 아주 좁았다. 짐을 옮기고 나니 더 우울해졌다. 1층 정원뷰라고 했는데, 정원에는 가짜 식물이 있었고, 방은 어두웠고, 에어컨 소리는 엄청 컸고, 방이 너무 좁아 짐을 펼쳐놓자 발 디딜 틈이 없어 짐을 뛰어넘어 다녀야 할 정도였다. 정글숙소(가칭)를 떠나 나올 때부터 모두가 말이 없어졌다. 정글숙소도 나빴지만, 여기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똥꼬1호가! ‘엄마, 여기가 훨씬 좋다. 거긴 너무 이상했어. 여긴 수영장도 있잖아. 나 수영할래.’ 하고 힘차게 말했다. 나~중에 똥꼬1호가 이 호텔을 ‘다시 가고 싶지는 않은 호텔’로 말하는 걸 듣기 전에는, 나도 정말 진심인가 보다 믿었을 정도로 목소리가 높고 밝았다. 그러더니 세 남자가 짐을 풀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부산스럽게 수영을 하러 갔다.
에어비앤비의 정글숙소에서 내가 모기 때문에 여기는 안 되겠다고 말하기 전에는 아이들도 숙소에 대한 실망감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았다. 계속 모기 물린 곳을 긁고, 긁는 것도 모자라 때려가며 가려움을 참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아이들의 배려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한국에 와서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 두런두런 얘기할 때 ‘엄마, 나 거기 정글숙소는 정말 끔찍했어.’라고 말할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해결하고 바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런 말이 엄마 아빠를 기운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생 때 6개월 동안 인도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친구 진희와 함께 인도 공항에 늦은 밤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예약한 숙소로 갔다. 밤늦게 도착해서 하루만 묶을 숙소였고, 우리는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었으므로, 잠만 잘 수 있는 제일 싼 숙소를 택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불을 켜도 깜깜했고, 감옥 같았다. 심지어 샤워실은 빨간 조명이었다. 더 이상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때도, 우린 말이 없어졌었다. 너무 싫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괜히 왔다고 이런 말은 입 밖으로는 뱉으면 안 되는 거라는 건 알 정도로 어설프게 성숙했던 것 같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울어버릴 것 같던 그때, 진희가 “00아, 샤워하고 나와봐.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 하고 부드럽게 침묵을 깨고 말했다.
마법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진희 말대로 용변용 샤워기인지 몸 씻는 샤워기 인지도 알 수 없는 그 샤워기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거짓말처럼 기분이 상쾌해졌다. 인도 배낭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내 인생의 첫 여행이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진희가 생각났다. 우리 가족한테 그런 아내,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수영을 간 동안, 방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안 쓰는 짐은 닫아 한쪽 구석에 정리하고, 물 몇 병 겨우 들어가는 냉장고에 간식을 넣고, 옷걸이 몇 개를 발견하고 기뻐서 급한 빨래 몇 개를 널었다.
괜찮은데? 복도 앞 정원은 우리 집 마당이라고 생각하고, 연못이 바로 보이는 프런트에 있는 소파는 우리 집 거실이라 생각하자. 그리하여 우리는 너무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가 경비원에게 몇 번이나 경고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이 정원에서 어른 없이 놀고 있습니다.’ 방을 정리하고, 수영장에 나가 보니, 비가 오락가락해서인지 수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수영장도 우리 독차지였다. 깊은 수영장이라 아이들이 신나게 다이빙하며 ‘엄마, 이것 봐. 잘 보고 있어.’하면서 몇 번씩 풍덩, 풍덩, 까르르했다.
너희 웃음소리가 이 순간 엄마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지...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생각만 했는데, 바로 다음날 진희한테 전화가 왔다. 몇 개월 만이었다. 로밍이라 전화를 받지는 못했지만 바로 카톡으로 답했다. 안 그래도 네 생각이 났다는 식상 해 보이지만 진실된 말로 시작해서, 하와이 여행 중인데 숙소가 뭐가 잘못돼서 우리 인도 여행 첫날 묶었던 좁고 눅눅하고 어두웠던 모텔 같은데 와있다고. 그때 너 덕분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났다고.
그랬더니 진희가 “진짜? 너 그런 게 기억나? 나 그때 무서워 죽을 뻔함 ㅋㅋㅋ 막 누가 방문 뜯고 들어올 것 같은 느낌 ㅋㅋㅋ” 나는 진희도 나만큼이나 무서워했는지 전혀 몰랐다.
나는 엄마가 돼서야 알게 된 걸 20년 전에 넌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넌 20년 전에 이걸 나에게 해줬어. 진희야. 고마워.
20년 전을 거슬러가, 한국에 있는 진희에게 고마워지는 여행. 그 고마움을 때마침 아니 때늦게, 표현할 수 있게 된 여행.
저녁은 카페 페스토로 갔다. 원래는 유명한 맛집이라 아껴두었다 먹으려고 했는데, 맛집을 검색할 여력이 없어 내비에 익숙한 식당 이름을 찍고 갔다. 너무 비쌌다. 숙소를 옮기며 예상치 못한 돈이 나간 날이라 저녁까지 사치하면 안 될 것 같아서, 2인분만 시켰다. ‘엄마는 배가 안 고파.’ 했는데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스펙터클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음식 맛이 잘 안 느껴졌다. 수영장에서까지 활기차던 남편도 저녁때가 되자 지친 모습이 보였다.
토닥토닥. 수고했어 여보. 실망한 티 안 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지친다고,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해도 돼. 내일은 더 좋을 거야.
그리고 이날 에어컨도 어설프고, 좁고, 공항이 가까워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끊임없이 나는 이 숙소에서, 나는 하와이 여행을 통틀어 가장 깊은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