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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Aug 21. 2020

하와이 Day 9, AM

거북이와 수영하기

2018.8.6.(월) 


켄즈(Ken’s House of Pancakes) - 칼스미스 비치(Carlsmith Beach Park) - 카페 100(Cafe 100) - 레인보우 폭포(Rainbow Falls State Park) - 마우나케아(Mauna Kea) 선셋 & 별보기


새로운 숙소에 대해 알게 된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어디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브런치 카페로 유명한 켄즈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양이 많기로 유명한 집인데 핫케이크 냄새와 커피 향, 베이컨 굽는 냄새, 오믈렛 냄새 어느 하나도 양보할 수가 없어 욕심껏 다 시키고 말았다.

켄즈는 24시간 운영하는 곳이다. 나는 24시간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면 가게가 피곤해하는 게 느껴진다. 건물도 분명 쉼이 필요하다. 불이 꺼진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웨이트리스 언니들에게도 아침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교대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테이블과 의자에 메이플 시럽과 케첩이 찐득하게 묻어 불편했지만 언니들이 너무 바쁘게 일하고 있어서 이런 사소한 문제로 부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브런치스러운 메뉴만 먹으면 응가가 마렵다. 좁은 숙소 화장실이 바쁘게 돌아간다. 같은 음식을 같이 먹고 같이 응가가 마려운 게 가족! ㅋㅋㅋ     


숙소에서 차례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칼스미스 비치로 갔다. 하와이 와서 바다가 춥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태풍이 올 준비를 하는지 구름 낀 날씨에 바람도 불어 너무 추웠다. 거북이 비치로 유명한 곳인데 거북이가 쉽게 만나지지 않았다. 남편은 저 멀리 있는 섬에 거북이를 보러 갔다 왔다. 섬 주변을 스노클링 하다 보면 거북이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거북이와 수영하기’ 버킷을 이뤄주려고 나를 섬까지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가는 길이 수심이 깊고 파도가 세서 위험했다. 남편까지 위험하게 할 것 같았다. 스노클링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아직 물이 스노클로 들어왔을 때 힘 있게 뱉어내지를 못해서 당황할 때가 많았다. 거북이는 만나고 싶고, 깊은 곳은 못 가겠고... 


애들은 너무 추워서 물놀이를 접고 낚시를 하기로 했다. 먹다 남은 핫케이크를 돌돌 뭉쳐 미끼를 만들고 대나무 낚싯대에 끼워서 던졌다. 물고기들이 낚싯대 주변을 맴도는 게 눈에 보이는데 잡히지가 않았다. 너무 이뻐서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은 물고기들이었다. 낚시하면 안 될 것 같은 물고기들이었다. 생각해보니 스노클링 하면서 만나게 되는 색색깔의 이쁜 물고기들은 식탁에는 안 올라오는 것 같다. 왜지? 이뻐서? 이쁘면 못 먹는 건가? 아니면 식탁에 올라오기 전 바다에서는, 식탁의 그 물고기들도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아이들이 낚시를 할 때면, 꼭 옆에서 기도를 하게 된다. 한 마리만 잡게 해 주세요. 이대로 돌아가면 애들이 너무 실망할 것 같아요. 딱 한 마리만요. 다섯 번만 더 던져보자, 했는데 똥꼬1호가 한 마리 잡았다. 그때 남편이 낚싯대를 잡고 있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1호가 잡은 게 아니라 아빠가 잡은 거였으면 우리는 밤늦도록 낚싯대를 계속 들고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들 어깨에 뽕이 들어간 걸 보면 엄마도 행복하다. 

칼스미스 비치: 똥꼬1호가 잡은 물고기

그런데, 사실 나는 물고기를 잡은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모여있는 걸 보고 ‘거북이구나!’ 하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거북이였다!!!! 거북이 두 마리가 해안가 쪽에 나와 있었다. 아이들이 풀을 꺾어서 거북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나 혼자만 볼 수 없어 100m 달리기 하듯 뛰어가서  낚시하는 우리 집 세 남자에게 ‘거북이야!!!’ 소리치고 다시 뛰어왔다. 나도 풀을 뜯어 거북이에게 건넸다. 잘도 받아먹는다. 머리를 내밀고, 네 발로 부드럽게 헤엄치고,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참, 나의 버킷은 거북이를 가까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헤엄치는 거였다. 물속에서 만나는 거였다. 차가운 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보는 거북이는 평화 그 자체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 거북이와 나, 둘만 있는 것 같은 고요와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거북이가 해안가 쪽으로 나올 때는 햇볕 쬐고 쉬러 나오는 거라 그런지 헤엄치는 범위가 넓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따라다녔다. 

칼스미스 비치에서 만난 거북이

내가 계속 따라다니던 거북이 등에 큰 상처가 있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가 함몰되어 있었다. 

아.. 무슨 스토리가 있는 거니? 어쩌다 그렇게 됐니?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애들한테 “ Don’t feed them. Keep distance.(먹이 주지 마세요. 거리를 유지하세요)”하고  소리쳤다. 

거북이가 물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배우면 거북이가 원래의 본성대로 행동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궁금하던 이야기도 거북이의 입을 통해서는 아니지만 그 사람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보트 프로펠러에 찍혀서 등을 다친 거라고 했다. 그랬구나. 많이 아팠겠다.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관광객이 아니라 여기에 사는 주민이라고 했다. 거북이 비치여서 수많은 거북이들이 떼로 출몰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주민이 알아볼 수 있는 거북이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내일 또 만나고 싶다. 

등을 다친 거북이


거북아. 난 널 알아볼 수 있는데, 넌 날 알아볼 수 있겠니? 


하와이에 아는 거북이 하나 생겼다. 나는 오늘 너와 헤엄치는 시간이 행복했단다. 


카페 100은 로코모코(하나의 접시에 밥, 햄버거, 스팸, 계란 프라이 등을 얹어서 먹는 음식)를 파는 맥도널드 같은 곳이었다. '이게 다 합치면 얼마야?'하며 매번 바빴던 계산기를 잠시 꺼두고 가격 부담 없이 이것저것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늦었다. 레인보우 폭포에 들렸다가 대망의 마우나케아를 가려고 했는데, 이러다 마우나케아 선셋(일몰)을 놓치게 생겼다. 레인보우 폭포는 오늘이 아니면 가기 힘들 것 같아서 에라 모르겠다 서둘러 가보기로 했다. 힐로한인교회 목사님이 레인보우 폭포 뒤쪽에 멋진 보리수나무가 있다고 해서 폭포보다 보리수나무를 꼭 보고 싶었다. 

레인보우 폭포

여긴가? 하고 폭포 옆 왼쪽 길로 들어가니 입이 딱 벌어지는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있었다. 나무가 이리 관능적일 수 있을까. 앤서니 브라운 동화책에 나오는, 늑대가, 뱀이, 숨어있을 것 같은 나무 기둥이었다. 보리수나무가 길에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질기고 튼튼해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 나무의 쓰임새를 알아차렸다. 타잔 놀이를 시작했다. 꽤 속도가 나서 흔들리지 않는 사진 남기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돌아가며 타잔 놀이를 하고 뒤를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터널' 속 한 장면(The tunnel, 1989 by Anthony Browne)과 보리수나무 타잔이 된 똥꼬2호

헉! 이게 이렇게 타고 놀아도 될 정도로 튼튼한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그냥 논건데... 똥꼬1호는 자기가 먼저 타잔놀이를 개발했는데 사람들이 다 따라 했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엄마도 타잔 놀이 40년 만에 처음이야. 고마워! 


서둘러 마우나케아로 향했다. 늦었다.    


-이 날 오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9, PM'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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