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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Sep 18. 2020

하와이 Day 16, PM: 라니카이 비치

결혼 10주년 사진 찍기

2018.08.13.(월) 


하나우마 베이(Hanauma Bay) - 부스 앤 키모스 홈스타일 키친(Boots & Kimos Homestyle Kitchen), 크레페 노 카 오이(Crepes No Ka’Oi) - 카일루아 비치 파크(Kailua Beach Park) - 라니카이 비치(Lanikai Beach)   


-이날 오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16, AM에 있습니다.  


남편은 점심으로 부츠앤키모츠 마카다미아 팬케이크를 먹고 싶어 했고 나는 크레페 노카오이에서 크레페를 먹고 싶었다. 두 식당은 바로 옆에 있었다. 긴 줄로 맛집을 인증하고 있던 부츠앤키모츠로 결정했다. 테이크아웃을 할까 테이블에서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시간이 흐르고, 테이크아웃으로 결정하고 음식을 받는 데까지 또 30분이 걸렸다.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바로 옆 가게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서 먹으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SORRY’하고 일어날 준비를 하고 허겁지겁 먹었다. 다 먹는데 딱 5분 걸렸다. 그래서! 뭘 먹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양도 통 부족해서 결국 2차로 크레페 집도 갔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갔지만 어제 체크카드 잔액 부족의 충격으로 최소한의 메뉴를 시켰다. 점심을 두 군데서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배가 고팠다.    


‘오아후에서는 어느 비치를 가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빠지지 않고 언급됐던 카일루아 비치에 갔다. 오바마 대통령의 휴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파도 타고 놀기에 너무 좋은 비치였다. 물도 따뜻했다. 좋은 파도를 찾아 점점 더 안쪽으로 옮겨가다가 ‘괜찮은’ 파도가 ‘자주’ 나타나는 곳에 짐을 풀고 바디보딩을 즐겼다. 모래사장 쪽으로 물이 밀고 들어와서 짐을 멀리 둘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핸드폰, 현금, 고프로가 우리의 귀중품인데 나는 처음엔 짐 맡는 역할을 자처했다가, 물속으로 들어와서 짐 한 번 쳐다보고 파도 한 번 타고를 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짐은 나 몰라라 실컷 놀았다. 아빠랑 아이들이 바디보드를 타고 탄성을 지르며 나란히 쭈욱 미끄러져 내려올 때마다, ‘아, 카메라’ 싶었지만 카메라는 잠깐 잊기로 했다.      


2년 전 제주에서 대학생 여행자들을 많이 봤다. 제주도에 친구들끼리 여행을 올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부럽기도 했고, 인스타 용 비주얼의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니는 경제적인 여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부모가 주는 돈 팍팍 쓰는 철없는 대학생들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도에서 20대 초반쯤 보이는 여자 둘과 같은 바나나 보트를 탔다.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바쁠 때, “야, 나 오늘 정말 행복해. 사진에서 해방되니까 진짜 여행 같아. 오늘 사진 안 찍기로 한 거 정말 잘한 거 같아.”라고 대화하는 걸 들었다. 자유가 주는 행복감이 표정에 묻어났다. 가끔 사진 찍는 게 피곤하게 느껴질 때 나는 우도에서 엿듣게 된 이 대화를 떠올린다. 철없다고 마음대로 판단했던 걸 미안해하면서.  

   

카일루아는 수심이 시시하게 얕지도, 위험하게 깊지도 않아 아이들과 같이 놀기 딱 적당했다. 카일루아의 파도는 바디보드가 시원하게 미끄러질 정도로 힘이 있지만 보드가 뒤집어질 정도로 세진 않았다. 모든 파도가 그런 건 아니어서 파도를 잘 관찰하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파도는 예측할 수 없는 박자와 세기를 가지고 변화무쌍하게 다가왔다. 더 좋은 파도를 찾아 파도와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나는 하와이 첫 바다에서 거꾸로 꽂힌 경험 이후로 바디보딩이 무서웠다. 그때 모래에 긁혀 생긴 입술 안쪽 상처는 보름이 지났는데도 나을 생각을 안 했다. 점점 더 노랗게 상처가 커져 갔고 해가 강하고 짠물이 계속 닿아서인지 너무 따가웠다. 내가 하는 것도 무서웠지만 아이들이나 남편이 타는 것을 볼 때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파도가 세서 보드 채로 아이들이 사라질 때도 많았다. 1, 2, 3초가 지나면 하하하 웃으며 다시 솟아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바디보딩을 하지는 않고 아이들 옆에 서서 파도 보는 역할, 서로 부딪히지 않게 교통정리해주는 역할만 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카일루아는 겁먹은 나도 살살 도전해볼 수 있었다. 스릴 넘치는 파도는 넘기고, 만만한 파도만 골라 탔다. 옆에 젊은 무리들을 따라 나중에는 바디보드도 없이 맨몸으로 탔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바디보드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고, 더 안전하고, 더 자유로웠다.    

카일루아 비치: 딱 이만큼의 파도 (우도의 20 대들보다 철이 덜 든 나는 마지막에 결국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하하하)

  


오늘의 마지막 비치, 라니카이 비치에 갔다. 해변 입구가 골목길처럼 생겼다는 가이드 북의 설명이 낭만적으로 다가와서 라니카이는 꼭 가리라 벼르던 곳이었는데 세상에... 나는 그 골목길부터 반해버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을 쏟아내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골목길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비치로 내려갔다. 

저 끝에서 폴짝 뛰면 바로 바다가 있다.

골목길 끝 벽까지 물이 찰방찰방 들어찬 흔적이 있었다. 어, 지금 들어갔다가 바다에 갇히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골목길 끝 세 돌계단쯤 되는 높이에서 폴짝 점프하면 바로 해변이었다. 거닐기만 해도 너무 아름다운 비치였다. 나는 이 해변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하와이에 왔다는 걸 떠올렸다. 아름다운 바다와 구름, 석양 때문에 마음이 한없이 풀어졌다. 그때 우리말이 들렸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한국인 대가족이 먼저 ‘사진 찍어드릴까요?’ 했다. 여행지에서 언제 들어도 반가운 말이다. 게다가 우리말이다. '이번엔 세워서 찍을게요. 다시 한 장만 더 찍을게요.' 그래서, 수천 장의 하와이 사진 중 딱 한 장으로 선택되어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있는 이 사진이 탄생했다. 이 가족은 신기하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바로 우리 옆자리였다. 

라니카이 비치

한참을 거닐다 다시 골목길 입구로 돌아오니 바닷물이 골목길 벽에 더 가까워지고 더 수위가 높아져 있었다.   

꿈을 자주 꾸지는 않지만 내가 꾸는 악몽은 몇 가지 패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다에서 모래사장이 없어지고 바닷물이 끝까지 차서 끊임없이 몰아치는 높은 파도에 갇히는 꿈이다. 

하지만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라니카이의 파도는 사람을 덮치거나 집을 덮치지 않나 보다. 파도가 벽 끝까지 닿아 찰방 되는 곳에 사람들이 매일같이 다니는 길이 있고, 정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건물들이 이어져 있었다. 입구 골목길의 나무들도 바닷물에 샤워는 했어도 목욕을 해본 적은 없는 얌전한 모습이다.      

라니카이 비치:   골목길 끝과 파도 사이 모래사장, 딱 그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다. 

바다와 닿아있는 그 골목길 입구에서 남편과 손을 잡고 뒷모습 사진을 찍었다. 사진사는? 우리 똥꼬1호이다. 10년 전 신혼여행에서 고릴라 포드를 나무에 고정시키고 어렵게 셀카를 찍었었는데 10년 사이에 아들이 이렇게 자라서 사진사가 되었다. 이 사진은(브런치 대문에도 걸려있다) 오랫동안 나의 SNS 프로필 사진이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여기 어디야? 이거 누가 찍어줬어?’ 하고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첫째가 찍어줬다고 자랑을 했다. 그래서 이 사진은 부부 사진이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사진보다 아이들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가족사진이다.      

라니카이 비치 입구: 아들이 찍어준 결혼 10주년 사진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바라보는 하늘은 너무 예뻤다. 애들이 “엄마, 오늘도 하늘이 우릴 위해 세팅되어있네.” 한다. 하나님이 하늘을 세팅해놓으셨다면, 차 안의 음악은 남편이 세팅했다. 여행 준비물에 남편이 꼭 챙겨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이름도 어려운 옥스(AUX) 단자와 음악파일을 적어놓았다. 생존 필수품 준비도 바빠서 이 사치품들은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다 옥스 단자는 여행 출발 전 마지막 날 겨우 샀다. 음악 파일은 남편이 ‘준비했어?’ 몇 번을 나에게 물어보다가 대답이 없자 자기가 준비했다. 난 당연히 최신 인기가요 100개를 담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고심해서 담아온 음악 파일은 재즈 음악이었다. 줄리 런던! 얼마 만에 들어보는 이름인지. 하와이의 길고 긴 드라이브 길에 음악이 없었다면? 이 석양에 이 음악이 없었다면? 내가 언제 사치품이라고 했던가. 필수품이다.      

음악이 들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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