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치과검진
몇 주전 옷을 사려고 내게 필요한 종류의 옷이 뭐가 있을지 세분화 시키며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구매할 옷을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평소 옷을 많이 사는 편이 아니라 한번 옷을 살 때 상당히 많은 시간 공을 들여 결정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내게는 중대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난주 양치질을 하다 근 1년간 충치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던 것 같다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되었고, 다음날 정기검진을 받았다.
당장 치료해야 하는 이빨이 2-3개 정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약 5년여간 교정을 해온 탓에 내 이빨이 상대적으로 치주염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심했던 탓일까 치료를 요하는 이빨이 2-3개라는 사실은 아쉬웠지만 막상 마주하니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병원도 돌아보니 내 이빨과 같은 상태의 경우 치료에 드는 평균적인 비용이 내가 옷을 사려고 책정해 놓은 예산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예산을 치과 진료에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당연히((어쩌면 피눈물을 흘리며,) 주저하지 않고 치과 진료에 예산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옷을 살 때 고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책정한 예산을 이 옷에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가 납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수 지출이 아닌 나를 더 가꾸기 위해 투자를 하는 지출이라 생각하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치과 진료는 이빨이 더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돈을 이곳에 투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옷을 사는데 주저했던 나의 태도가 난감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를 하게 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기특해 했다. 처음에는 다행스러웠지만, 후에 생각을 해보니 오히려 내가 느낀 주저함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옷을 살 때 나는 왜 주저했을까?
누구나 더 현명한 선택을 하려고 한다.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게 주어진 돈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소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고 괜찮아 보이는 옷을 무작위로 고르고 그 안에서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선별을 완료한 뒤로도 어째서인지 구매를 주저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치과 진료비로 전환하여 지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옷을 곧바로 구매했더라면 후회했을까?
그것은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확신에 차서 얘기하지는 못한다. 치과 진료비를 낸 시점에서 돌아보니 그때 옷을 구매하지 않았던 주저함 덕에 돈이 정말 필요한 상황에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옷을 구매했더라도 그 이후 책정된 치과 진료비를 전혀 연관이 없는 상황으로 봤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옷을 사는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 대비나 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을 할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는 말이다. 애초에 옷을 사려고 모아둔 돈이 수중에 있던 돈의 전부가 아니었을뿐더러(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지만) 치료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치료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후회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힘을 싣게 되면서 옷을 구매하기를 주저했던 나의 선택을 현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내가 지출하기로 계획했던 한도 안에서 치료비를 해결했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생기지 않아 내 스스로가 재정관리를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재정관리를 그저 관리보다는 저축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필수적인 지출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지출을 줄이기만 한다면 관리를 잘하는 것이라는 나만의 평가 기준을 세우고 있었고, 이를 두고 현명한 행동의 방식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올바른 곳에 투자를 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하고 어쩌면 당연한 재정관리이지만,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된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모든 선택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나는 조금이라도 현명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나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세우기 이전에 선택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한 나의 가치관 혹은 목표가 뚜렷하게 있어야 함을 생각해 본다. 돈을 적절한 곳에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지만, 돈을 적절한 곳에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번 기회로 제대로 돌아보려고 한다.
아무리 신뢰가 가는 사람이더라도 남의 입을 통해 듣는 말들을 아무런 가공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내 선택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은 정녕 맞는 선택이더라도 중요한 순간에 흔들릴 수 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가공하고 제련하여 쌓은 밑거름은, 다시 뒤엎는 한이 있더라도 그 과정을 내가 납득하기 때문에 실패한 선택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내가 살아가며 내리는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해당이 된다. 재정관리를 포함해 인간관계, 건강, 진로 등 많은 사람들은 어렸을 적부터 자라온 환경, 그 안에서 쌓아온 경험 안에서 축적한 정보를 기반으로 가치관을 세우고 선택을 하기 때문에 언제든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진정한 연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