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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Aug 10. 2021

북극 여왕

안데르센 명작 <눈의 여왕> 재해석하기 by유작가

내 이름은 북극 여왕. 만 년 전, 이 지구의 북쪽 끝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지. 내 몸은 얼음으로 되어 있어서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오로라가 아주 잘 보이는 밤에는 나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어. 그들은 나를 '북극 여왕'이라고 부르더군. 그렇게 나는 북극 여왕이 되었어.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빙하 천지였고, 얼음 강과 얼음 바다는 나에게 평안을 주었지. 아무리 강렬한 햇빛도 내 빙하 왕국을 녹일 수 없었어. 그렇게 찬란한 겨울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됐고, 또 지속될 줄 알았지. 


하지만 내가 이 지구에 온 이후, 사람들은 진화하고 진화했어. 그래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자원을 낭비했지. 물이며, 산이며, 공기며 다들 오염되어 갔어. 환경은 파괴됐고, 지구의 탄소 배출은 심각한 수준이 되었지. 그래서 지구를 감싸던 오존층이 파괴되고 해가 발하는 빛과 열은 그대로 대기권을 구멍 내며 쏟아져 내렸지. 사람들은 그걸 '지구 온난화'라고 부르더군. 그 지구 온난화는 지금, 나의 빙하 왕국을 앗아가고 있어.


유럽은 알프스의 눈이 수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녹아서 산사태를 일으킬 정도야. 스위스는 더 이상 관광산업과 스키 레저 산업을 할 수 없겠지. 지구 평균기온 2도 상승이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건 극지방의 빙하를 녹일 만큼 심각한 거라는 걸 사람들은 몰라.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그린란드의 해빙은 점점 빨라져서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나의 빙하들이 매일매일 사라져 물이 되고 있지. 북극에 초원이 보이기 시작했다구. 상상이 가니?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취약한 섬나라’로 불리는 몰디브라는 섬이 있지. 몰디브의 수도 말레 북동쪽에 이전에 없던 거대한 섬이 생겨났어. 사람들이 20년이 넘는 건설 프로젝트를 하더니 인공섬이라는 것을 만들더군. 이름이 뭐더라. 아, 훌후말레! 수몰되어 가는 몰디브의 산호 위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대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섬을 만든 거야. 마치 신처럼. 이 인공섬이 완공되면 몰디브 인구의 44%를 이주시킨다고 하더군. 그래, 몰디브 주민들에겐 잘된 일이지. 하지만, 그 외에도 침몰해가는 수많은 섬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지? 


파푸아 뉴기니에 있는 카타렛 섬은 이미 수몰되었어. 섬의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작물과 나무, 우물도 해수에 의해 오염됐지. 이대로 가다가는 기후난민 숫자는 사상 최대치에 이를 거고, 물 부족과 대규모 재앙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거야. 인더스 강의 공급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파키스탄은 심각한 물 부족에 직면할 거거든. 핵무장 국가인 파키스탄이 이웃 인도와 물 전쟁을 벌일 수 있고, 아프리카에는 가뭄과 굶주림에 시달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날 거야. 아마도 그래. 내 생각엔.


미국의 건조한 기후도 악화돼서 대두 생산이 절반으로 줄고, 다른 농산물이 생산도 급감할 거야. 따뜻한 온도에 곤충 번식이 극심해지면 야생동물에게 식량을 제공해주는 숲 대부분이 소멸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숲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더 이상 신선한 산소를 마실 수 없고, 이산화탄소가 가득한 지구에서 숨이 막혀 죽게 될지도 모르지. 남미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녹아서 식수가 부족해지고, 콜롬비아의 커피 생산량은 현저하게 감소할 거야. 지금 사람들은 느긋하게 노천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음미하지만,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지금 그들이 누리는 즐거움과 만족도 곧 사라지겠지. 




나, 북극 여왕이 예언을 하나 해볼까? 지구 온도가 2도만 상승해도 재앙과 같은 수준인데, 2056년에는 3도, 2070년에는 최대 4도까지 상승할 수 있어. 그러면 영구 동토층이 녹고 그 속에 포함된 메탄가스가 계속 방출되면서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기 때문이지. 지구 온도 4도 상승에 과연 적응할 사람이 있을까? 아니, 사람은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어. 불 타오르는 지구에서 다들 떠나려고 할 거야. 알래스카의 일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인도, 호주의 해안가 지역... 모두 수몰 위기에 처해있다구. 2021년의 지구는 지금, 최악의 환경위기를 맞았고 사람들은 수몰의 공포에 둔감한 편이지. 그게 사람이 어리석다는 증거야. 재앙이 눈앞에 와야 깨닫거든.


사람들이 만든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 온난화에 관한 조사를 했다지.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2032년에는 대만의 18%에 달하는 국토가 수몰될 거래. 해수면 상승은 어느 한 지역만 일어나거나, 한 지역에서 한 지역으로 옮겨 가는 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일어나. 동아시아 국가인 일본과 대한민국의 제주도도 수몰 위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


그중 제주도 이야기를 해볼까? 제주도라는 섬은, 해수면 상승 속도가 전 세계 평균의 3배가 넘어. 그래서 2100년쯤이면 해수면이 지금보다 2m 넘게 상승할 거야. 그럼 제주의 오랜 상징, '용머리 해안'이 깊고 검은 바닷속으로 영영 사라지겠지. 난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터전이 물에 잠기길 절대로 원치 않아. 그래서 지금 나는 멈추지 않는 울음에 젖고 있어. 그리고 내 뜨거운 눈물은, 얼음으로 되어있는 내 몸에 자꾸만 닿아서 나를 서서히 녹이고 있지. 이제 곧 나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물이 든 냄비 안의 개구리를 본 적 있니? 냄비를 가열하면 점점 따뜻해지는 물의 온도를 개구리가 느끼기는 하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지. 왜냐하면, 뛰쳐나올 힘도 없고 방법도 모르니까.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개구리가 설마 죽겠어? 하는 생각으로 앉아있기 때문이야. 결국 그대로 꼼짝없이 앉아서 개구리는 죽어. 점점 비현실적으로 뜨거워지는 햇볕과,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해수면의 상승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들은 지금 무언가에 단단히 속고 있어. 이렇게 기후 변화에 대처하다간 결국 사람도, 냄비 속에 개구리가 되고 말 거야. 안녕... 이제 내 몸은... 영원한 해빙이 되고 있어. 더 이상은... 이 지구를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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