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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Mar 23. 2021

방문객 / 정현종

내가 애정하는 시 22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ㅡ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이란 시를 안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시를 읽자마자 바로 들었던 생각은, 이 시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거였다. 모든 시인이 다 그렇겠지만 사람을 그냥 사람으로 보면 시를 쓸 수 없다. 한 사람의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한 우주가 있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왔던 역사와 생활과 배경, 상처, 사랑, 아픔 같은 것들이 뒤엉켜있음을 볼 수 있어야 감히 사람에 대해 시를 쓸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그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은 철학을 전공해서 서울예대와 연세대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지내셨다고 한다. (그 밑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정말 너무나 안타깝다) 주로 생명과 사람에 대한 시를 많이 썼고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섬>, <모든 순간이 꽃봉우리인 것을> 같은 대표작들이 있다. <방문객>은 2015년 정현종 시인의 시선집 <<섬>>에 수록되어 있다.


그를 일컬어 ‘현대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시인’이라고도 하는데, 그 말에 깊이 동감한다. 몇 년 전에 <모든 순간이 꽃봉우리인 것을>이라는 시를 처음 접했었는데, 당시 그 문장이 30대에 막 들어선 불안하고 초조한 나의 하루하루를 묵직하게 견뎌낼 수 있도록 두 어깨에 힘을 실어줬었다. 어느 캠퍼스 교정에서 주운 꽃봉오리를 손바닥에 놓고 한참을 내려다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한 꽃봉오리라고 생각하면 삶은 살아낼 만한 것이다. 나에게 지금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보려고 하지 말고, 그동안 걸어온 과거와 현재의 모습과, 앞으로 그릴 미래까지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되자. 한 사람의 일생은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므로.


연약해서 한 번쯤은 부서졌을, 감당할 수 없는 아픔으로 한 번쯤은 울어봤을 그를 가만히 더듬고 다독일 수 있는 마음. 그런 섬세함으로 내게 오는 사람을 환대하자. 기쁘게 두 팔 벌려 안아주자. 우리 모두는 위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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