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러버
코로나 19가 일상생활에 침투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전후를 비교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동네 마트를 가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조이마트'라는, 동네 마트 치고는 꽤 큰 마트가 오랫동안 사거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면 이곳에 온 동네 살림꾼들이 다 모여서 저마다 오늘 저녁에 먹을거리, 주말 내내 냉장고에 두고 먹을 식재료, 손님 맞을 음식 재료 준비 등을 하곤 했다. 마트에 가면 동네에 누가 사는지 저절로 알 수 있는데, 일정 시간마다 자주 보는 얼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사람들이 최소한의 바깥 생활만 하게 되면서, 동네 마트도 큰 타격을 입은 듯했다. 조이마트가 없어졌다. 근 10년 간 본가를 떠나 살면서, 나의 보잘것없는 저녁 식사를 책임져 준 정겨운 조이마트. 야채/과일 코너를 지날 때마다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며, "오늘은 포도가 싸~" "바나나 떨이 들고 가~"하던 아저씨도 볼 수 없게 됐다. 저녁때 활기찬 마트 풍경도, 오며 가며 눈인사하던 동네 주민들도, 정겨운 아저씨도 더 이상 못 보는 게 아쉽지만 뭐 어쩌겠나. 일단 나부터 '마켓컬리'의 노예가 되어 버린 걸.
예전에는 식재료나 기본 생필품 등이 떨어지면 바로 집 앞 마트로 달려 나갔지만 이제는 휴대폰으로 검색 몇 번만 하면 바로 주문이 가능한 시대다. 처음에는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 마켓을 이용한 게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이용하다 보니 너무 편한 게 아닌가! 한 번 이용하면, 결제 수단이나 주소가 이미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이건 자동 결제 수준이다. 쿠팡의 로켓배송도 놀랍지만, 컬리의 샛별배송이 나 같은 직장인 여성에게는 딱이었다. 너는 내 취향저격. 밤 11시 전에만 주문하면, 다음날 샛별이 뜨기도 전에 대문 앞에 도착해 있는 민첩하고 갸륵한 서비스. 배송도 빠르지만, 각종 할인과 적립금에 일반 마트에서 볼 수 없는 신상품들이나 맛깔나고 느낌 있게 찍어서 올린 제품 이미지들을 보는 맛도 크다. 최근에는 '뷰티컬리'라는 화장품 마켓 브랜드도 론칭했는데, 이것도 진짜 왕편리하다. (컬리 마케팅팀 일 너무 잘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쩌다 컬리로 주문하는 걸 깜박했거나 급하게 필요한 재료를 사러, 조이마트 대신 새로 생긴 농수산물 마트에 갈 때도 있다. 예전이었으면 피크였을 저녁 타임에도 장을 보는 손님은 2-3명, 많아도 5명 이내다. 홈플러스나 롯데마트, 이마트와 같은 대형마트는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전보다는 손님이 많아진 것 같지만. 아마존, 월마트 등 세계적인 물류 기업들을 기점으로 앞으로 온라인 배송 시스템은 더 고도화될 것 같은데, 이대로 가다가는 2050년쯤엔 아예 오프라인 마트 형태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퇴근길에 농수산물 마트에 갈 일이 생겼다. 어쩌다 보니 된장과 두부, 당근, 카레가루, 식용유 등 무거운 것들만 사게 돼서 집으로 왔는데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오른팔을 한 번 다친 이후로 이제 조금만 무리해도 통증이 어깨를 타고 번졌다. 나의 오프라인 장보기는 아마도 조금씩, 서서히 바이바이를 해야 할 날이 올 것 같다.
어릴 때, 엄마와 매주 일요일마다 모래내 시장에 가서 장을 보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 무겁던 다섯 식구 먹을 식재료를 어떻게 매번 양손 가득 들고 오셨을까. 어린 내 손에는 가벼운 나물 종류만 쥐어주고.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이렇게 잊혀 가는 것들을 생각하면 가끔 마음이 짠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