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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생각

삼성썬더스와 SK나이츠

농구를 몰라도 분위기에 취하니 신이 나고요.

by 축복이야


여기 잠실 실내 체육관.

삼성썬더스와 sk 나이츠의 농구경기가 있는 날.

설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서있는 나는 농구 광팬?!!



내게 농구는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그 시절 즈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관심을 두었던 스포츠.

원체 몸으로 하는 것은 못하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으니 당연히 스포츠에도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농구가 붐이어서 점심시간이었나 수업 후였나 여하튼 교실에서도 TV로 친구들과 농구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인기의 중심에는 연고대팀이 있었는데 나는 우지원, 김훈선수를 좋아했기에 연대를 응원했었다.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광팬이거나 덕질은 아니었고 그저 선수들 보는 재미로 경기를 흥미롭게 봤던 수준이었을 뿐이다. 지방에 살던 나는 농구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 잠실체육관에 와있다.

그것도 농구를 보려고. 게다가 설연휴에.



시작은,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가서 직접 경기를 보고 싶다고 한 아들의 말 때문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남편이 데려온 곳이다. 야구도 축구도 시즌이 아니니 지금 볼 수 있는 건 농구경기. 어릴 적이었거나, 내가 농구팬이었다면 기대와 설렘을 안고 왔을 곳이지만 아이들과 나는 아빠가 나름 준비한 계획이니 그저 덤덤히 따라왔을 뿐이다.

내게 잠실체육관은 한 달 전, 이틀 연속 설레며 왔었던 이준호 콘서트의 기억만 생생한 곳, 아직도 가슴 떨리는 곳이 뿐이다.



남편도 농구팬이 아닌데, 아이에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로 앞자리를 잡기 위해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봤었다. 2층 관람석이어도 될 것 같은데 콘서트로 치자면 스탠딩 좌석 같은 곳을 굳이 잡았다.

앉으며 갑자기 궁금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헙!! 농구팬도 아닌데 굳이 이 자리를?!! 한마디가 나올 뻔했지만, 한날 취소표가 생겼다며 자리를 잡았다고 신나서 얘기하던 얼굴이 떠올라 꾹 말을 눌렀다.



빨간 옷을 입은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보니 그 체구가 그대로 느껴져 감탄이 나오긴 했다.

스포츠에 문외한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여기는 삼성썬더스의 홈경기장이란다.

그래서인지 3층에는 온통 삼성선수들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형 현수막들로 채워져 있고 파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우리가 앉은자리는 보아하니 sk나이츠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 듯했다. 이내 장내 아나운서의 힘찬 목소리와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들,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면서 살짝 흥이 돋을까 말까 하는 마음으로 코트를 바라보았다.



아직 경기 시작 전이었지만 이런 맛에 직접 보러 오나 보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우리 꼬맹이도 신기한지 두리번거리고 남편은 신이 나서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느라 바빴다. 우리 네 식구는 앞줄 세 개의 좌석과 바로 뒷줄의 한 좌석에 나누어 앉아야 했는데 내가 얼른 뒷줄을 잡았다.

일단 아이들을 아빠가 보면 완전 땡큐인 데다가 혹시라도 지루하면 나만의 세상으로 떠나거나 딴짓을 하기 딱이니 말이다. 바로 뒷자리지만 따로 있다는 사실에 홀가분하니 어느 팀이 이겨도 상관없을, 어느 팀이든 다 응원하고픈 마음이었다.



장내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어쩜 저리도 멋있을까.

삼성 써~언더~쓰!!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합니~돠아~!! 감탄스러운 묵직하고 야성미 넘치는 목소리와 멘트, 추임새는 심장을 팔딱팔딱 뛰게 하는 비트와 함께 흥을 돋우고 화려한 조명은 정신을 쏙 빼놓았다. 응원단장의 까실까실 쉰듯하지만 열정적인 목소리에 반응하는 응원단의 함성에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그리고 선수 소개가 끝나고 휘슬이 울리자 경기가 시작되었다.


선수 소개와 입장!! 분위기 업업!!


경기시작 전에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하나. 일단 하나는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들과 얘기하다가 엄마핸드폰은 삼성이고 우리 집 통신사는 sk인데 그럼 어떤 팀으로 하지? 근데 어제 내 꿈에 이재용 회장이 나왔어. 난생처음으로. 나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는데 꿈이지만 의리가 있지 그럼 삼성팀인데.. 근데 내가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sk전희철감독이네. 끝도 안 날 시답잖은 농담을 진지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는 sk팀의 골대가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SK를 응원하게 되었다.



농구도 모르고, 선수도 모르고, 응원하는 팀이 없어도 그 속에 있다는 건 분위기에 취해 누구든 함께 응원하게 되고 같이 함성을 지르게 되는 것 같다. 눈앞에서 시원하게 슛을 쏘고 골대에 쏙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돌고래 함성과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손뼉 쳤고, 아쉽게 슛이 안 들어가거나 공을 놓치면 속상해서 입을 틀어막았다. MBTI에서 I성향이지만 봉인해제되면 분위기 맞추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나이므로 야무지게 응원을 하니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박수를 치기도 하고 아~하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하면서.

이제 막 8살이 된 꼬맹이는 집중력을 다했는지 3 쿼터부터는 자꾸 나를 돌아다보며 손을 잡아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리를 뜨지도 않고 경기를 관람했다.

날의 승리는 Sk였다.




경기가 끝나고 체육관을 나오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으로 종종걸음으로 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에겐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엄마, 나는 공을 뺏겼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공을 가져온 선수가 너무 멋있었어." 울 집 꼬맹이가 말했다. "엄마는 22번 오재현선수가 좋아. 워니 선수는 슛이 너무 멋있어."

그러자 "22번은 내 생일 이랑 똑같은 번호라서?" 아들이 웃으며 말한다.

"하윤아, 너는? " 딸에게 묻자 "나는 삼성에 11번 이원석 선수도 좋아."

러자 아들은 "커피 코번? 코피 코번 선수도 멋있어. 힘이 엄청 쎄!! 아빠는 어땠어? 나는 다음에 또 오고 싶어. 근데 축구 경기도 보고 싶어."

차 안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오늘 오지 않았으면 하지 않을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가족의 첫 농구관람은 그렇게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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