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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

딸을 위한 밥상 이야기

by 빛글



‘신이시여 딸아이가 밥 한 스푼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평범한 것조차 누군가에겐 간절한 기도가 될 수 있다.




9년 전 딸은 희귀질환 진단을 받았다. 신은 왜 내게 이토록 큰 시련을 주셨는지 따지고 싶었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왜? 지금까지도 충분히 절망적인 시간들이 많았는데 그보다 더 강한 놈을 내 앞에 던져주시다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


라고 되묻기도 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오열했던 과거를 회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온다.

딸아이 몰래 눈물로 1년을 살았다. 아무리 흘려도 마르지 않는 눈물이 야속했다. 이제 그만 멈추길 바라는데 내 맘처럼 쉽게 떠나지 않는 눈물.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한동안 잦은 입원으로 병원이 내 집이려니 생각해야만 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두렵고 무서운 시간들이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어느 순간 그 시간들 속에서 빠져나왔다.


딸을 지켜내야 하는 엄마니까. 나는 내 아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니까.


딸은 자신의 병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회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살았다. 평소 먹는 것을 즐기며 살아왔는데 병으로 인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시간들도 있었다. 많이도 힘들었을 시간들.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참아내는 딸아이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소박한 밥상을 먹는다는 것. 쉽고도 어려운 숙제다. 딸이 좋아하는 것과 맛있는 것이라면 뭐든 만들어주었다.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가급적 피해야 할 음식은 제외하고 골고루 먹게 했다. 계속된 재발과 입원.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은 정보가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딸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발품을 팔아 딸에게 맞는 밥상을 차려야 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는 소박한 밥상.


두렵고 무서웠던 시간들을 보내며 딸의 건강만을 생각했다. 어떻게든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 누군가도 나처럼 절실하게 찾고 있을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만 같다. 그때의 나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나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소망하며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 온 보물 상자(밥상에 얽힌 이야기)가 지금 열렸다.


딸아이가 폰에 담은 추억의 밥상들. 브런치에 남기게 될 줄 몰랐다





밥을 먹는 것조차 힘들 텐데 사진까지 찍는 딸이 걱정되어 내가 물었다.


“몸도 힘든데 사진은 왜 찍는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냥.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소중한 추억이잖아요. 솔직히 이런 평범한 사치가 나중에 가서 사무치게 그리울 날이 언젠가 올 거란 걸 무의식적으로 느끼는지 본능적으로 남기게 되는 것 같아요.


부기 뺀다고 호박 물, 팥물. 매일 정성 들여 달여 먹였던 게 제 신장에 무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책하셨던 엄마의 애석한 표정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또 까다로운 제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도전한 결과 건강한 퓨전 음식들도 탄생했잖아요.


이렇게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엄마가 날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해서 한 상이 차려지는지 알기에 엄마의 밥상 하나하나가 제겐 보통날 속의 행복이자 집에서만 지내던 일상 속 유일한 호사예요. 찍어놓은 사진들 보고 있으면, 배고플 땐 대리만족도 되고(ㅋㅋ)...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간 만큼 눈물과 한도 들어가 있는 이 음식을 어떻게 안 남길 수 있겠어요. 제겐 모두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들이에요.” ^^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밥상 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험난한 산을 넘고 또 넘어 여기까지 왔다. 환자 식단이 처음엔 낯설고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듭된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노력의 결실이다. 그 노력을 알기에 딸은 엄마의 소박한 밥상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긴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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