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
장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들과의 전쟁.
그 전쟁으로 인한 부작용.
어떻게든 약으로부터 해방되고픈 소망.
그것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소망이었을지 모른다.
결국 욕심이 불러온 결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자신의 병을 이겨내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는 노력은 물론 운동까지 최선을 다하는 딸. 심리적 안정을 위해 108배와 명상까지. 조금씩 약을 줄여갔다. 이대로라면 약을 먹지 않고도 관리할 수 있는 날이 가까이 와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부작용이 문제였다. 딸은 복용하고 있는 약들의 성질과 부작용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있다. 약 먹는 것을 두려워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참아가며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하루빨리 약과 멀어지기 위함이다.
검사 결과는 좋아지고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듯 지금처럼 욕심 없이 지내왔다면...
그랬다면 딸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희귀질환(딸의 질환)을 X의학으로도 치료 가능하다는 내용을 읽었다. 일 년간 X의사가 말하는 치료 방법을 지켜보았다. 딸과 상의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불씨는 타오르다 결국 짧은 시간에 꺼져버렸다.
X의사가 개발했다는(참 어처구니없지만) 약과 무염식에 가까운 저염식 식단. 약 일 년은 건강하게 보냈다. 외출을 자주 할 수 있었고, 딸이 좋아하는 봉사활동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거기까지였다. 생각해 보니 딸의 노력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인지, X의사 처방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쓰러졌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왔지만 무섭고 두려웠다. 전에도 겪어본 일. 그때와 달랐다. 왜?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명현반응(호전반응)입니다.”
새로 나타나는 많은 증상들이 대부분 ‘명현’이란다. 명현이란 놈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심지어 어마 무시한 부종까지 명현이란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 되돌릴 수 없다.
부종이 몸 전체로 무섭게 찾아왔다. X의사는 계속 ‘명현’을 말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더욱 심각성을 느껴 병원으로 달려갔다. 여기저기 바늘을 찌르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투석까지. 딸은 삶과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고 넘어야 했다.
명현이라 말하던 X의사라는 사람은 질환 특성상 무염식을 먹어야 한단다. 최대한 무염식과 저염식 식단. 먹기 힘들 정도 싱거운 음식들이지만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딸은 열심히 먹었는데.
전해질이 와장창 무너진 상태. 투석으로 부종을 빼내지만 온몸으로 계속 차오르는 물. 어디서부터 치료를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딸의 몸. 짜게 먹는 식습관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이 접했지만 딸의 경우는 그 반대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염식에 가까운 저염식 식단과 X의사가 처방한 약. 그(명현이라 외치는)가 개발했다는 약은 어떤 성분들이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담당 교수님 얼굴이 심각하다. 부끄러웠지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딸은 엄마의 잘못된 선택으로 7개월 동안 병원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내 딸.'
그런 딸을 지켜보며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 모든 ‘신’을 부르며 딸을 살려 달라 기도했던 시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
나와 같은 실수로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부끄럽지만 간절함을 담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희귀질환은 물론 그 외 많은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가족들. 그분들은 한 번쯤 도전해 볼 수 있고, 이미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성공을 했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아픔을 겪었다면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자연치유가 가능한 질환은 많다. 나 역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치유법을 좋아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치유 만으로는 위험할 수 있는 질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염식과 저염식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넘쳐도 문제겠지만 부족해도 심각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수많은 증상들을 무조건 ‘명현’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명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근거도 제시할 것을 부탁하자. 정기적으로 검사가 필요한 환자라면 꾸준한 검사로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관리하자.
좋다면 무조건 먹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을 먼저 체크해야 된다는 사실도 경험을 통해 배웠다. 딸은 지금 고맙게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적당한 식습관', 운동과 명상으로 자신의 몸을 소중히 지켜나가고 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딸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다.
왜 '건강한 식습관'이 아닌 '적당한 식습관'이라 표현했을까. 그 내용은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다.
딸이 폰에 담아 둔 추억의 음식 사진들.
한 장씩 꺼내보며 맛나게 먹던 딸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의 웃음 근육이 조금씩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