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약을 드셔야 합니다.”
“평생 약을 드셔야 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병을 진단받는 것도 막막한데 의사는 툭! 한 마디 던진다. 이 한마디로 인해 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은 환자입장에서는 큰 상처와 함께 좌절부터 하게 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무책임한 말이라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아니면 진짜 몰라서일 수도. 그럼 더 안타까운 일인데.
‘관해’라는 말이 있다. 병의 증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되거나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
병원에서 처음 병을 진단받을 때 ‘관해’에 대해 말해주었더라면 좌절보다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상처받는 환우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직접 느껴봤기 때문이다.
루푸스와 지내고 있는 딸은 약물 치료 없이 '관해 4년'이 되었다. 딸은 말한다. 급하거나 갑작스럽게 약물이 필요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약물의 힘을 빌리고 다시 관해를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건강에 진심이고 식습관은 물론 생활습관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는 약물이 오히려 치료에 방해가 되고 부작용만 차곡차곡 쌓여간다.
부작용이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하나둘 협진이 늘어간다. 협진이 늘어간다는 것은 약물이 상호 부작용을 일으켜 끝이 보이지 않는 부작용 맨홀에 갇히게 된다는 것. 현실이 그렇다.
대증 치료는 하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병과 마주해야 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끄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뚜껑만 덮어놓는다. 원인치료가 아닌 증상만 잠시 잠들게 하는 치료에 불과한 것. 이를 어쩌나.
자신의 병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병원과 의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불안과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의사의 말이 곧 정답 인양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병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스스로 공부하며 지식과 지혜를 넓혀간다면 불안과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진다. 의사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다시 생각해 보자.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맞다면. 그렇다면 관해라는 말이 왜 있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도 있을 것이다. ‘자가면역질환’ 중에서도 평생 약을 먹지 않고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딸과 나처럼. 그런데 왜 의사는 환자에게 말해주지 않는 걸까? 그나마 환자에게 진심인 의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약물치료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부작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환자는 부작용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다. 질문을 해야 들을 수 있는 경우는 미미한 수준이다. 오히려 귀찮아하고 대답 없는 메아리로 정적만 흐를 뿐이다. 내가 직접 겪은 사실이다. 환자라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우린 지금 그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딸이 약물 치료 중 급격하게 시력이 떨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약물 부작용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딸은 스스로 약을 줄이기 시작했고 끝내 단약에 성공했다. 약을 끊었다는 말을 차마 의사에게 하지 못하고 일 년 이상이 되었을 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안과 소견서 써 줄 테니 안과 가보세요.”
다량의 약을 꾸준히 먹고 있었다면 눈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의사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충격이다. 왜 이제 말을 해주는 거지? 미리 말이라도 해주면 환자는 준비라도 하든 약물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을지 모른다. 하기야 줄여달라 몇 번을 요청해도 안된다며 묵살되는 게 현실이다.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은 자가면역질환 또는 만성질환을 치료하고 있는 수많은 환우가 약물 부작용으로 안과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환우님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마음 아픈 사연들이 너무도 많아 참 씁쓸할 때가 많다.
나 역시 자가면역질환자이다. 약물 치료를 하지 않아도 호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니 내 병이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다.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될 의사에게 부탁하고 싶다. 지치고 힘들겠지만,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게 되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좀 더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그들을 감싸 주기를 소망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시 한번 기억하시길.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지금 나와 딸은 우리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많이 웃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약물을 삼키는 것보다 값진 삶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