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구성해볼까요?
우리는 마음이 끌리는 일에 도전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음이 원하는 일은 10대엔 부모님이 바라는 것일 확률이 높다. 보호자의 품을 떠나 20대에는 드디어 '공부' 이외의 경험에 대해 선택의 폭이 넓어지며,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10대에 이어 20대라는 '청춘'인 예쁜 나이에 중등임용고시의 합격을 위해 또 공부만 하는 시기를 오랫동안 보냈었다. 다행히 교사는 중등정교사 2급 자격증만 있다면, 기간제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다만, 신입이 첫 경력을 쌓기 위해 뚫어야 할 취업이라는 벽은 높았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수없이 많은 학교에 나의 응시원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냈었다. 코로나 전에는 비대면이라는 용어자체가 낯선 개념이었으므로, 나는 대면으로 먼 학교도 버스를 타고 뚜벅이로 찾아다녔었다. (이때 나는 차가 없었으므로) 그리고 구하는 교사자리는 1명인데... 수없이 많은 교사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했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무수히 많은 서류심사와 면접을 봤었다. 그래서 나의 성향 또한 바뀌고 있었다. 면접을 어려워했던 나인데... 다양한 학교에 찾아가 관리자들과 부장선생님들 앞에서 면접을 보다 보니, 어느덧 나만의 면접틀 또한 생겼었다.
24세부터 시작된 나의 취업준비생이라는 위치는 밝았던 나의 성향을 점점 흐릿하게 하고 있었다. 특히 나의 취준기생활은 중등임용고시생이었기 때문이었다. 큰 시험에는 유독 약했던 나였으며, 이런 시험은 하늘의 도움도 따라야 한다는데... 그 합격의 때가 내가 생각했던 때와 너무 달라서 야속하게 느껴졌던 시기였다.
그러던 찰나 도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던 나인데... 실패만 하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고, 찐친과의 인간관계에서 자기 노출기피증이라는 이상한 현상이 나에게 생기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의 사생활을 일절 말하지 않고 작아지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현상은 다시 한번 나에게 좋은 기회가 오면서 살짝 깨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실패라는 아픔을 맛보지 않고 성공의 단맛만 보면 좋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많이 느꼈다. 그러면서 나는 실패라는 개념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했을 때 본인이 생각한 기준보다 성과가 보이지 않아서 낙심하고 그 경험을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데... 난 도전했기에 그 경험을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도전을 했으면 실패라고 하고 싶지 않다.
생각(걱정) 자체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게 실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