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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15. 2024

# 큰 한방이 아니라 소박하고 자잘한 버킷리스트

휴가를 받은 남편이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생각해 두라고 했다. 마침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화요일 휴무라고 했다. '아...' 기대했다가 바람 빠진 풍선이 된 것 같았다. 그럼 어디 가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항상 다음으로 미뤄두었던 소박한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1) 내가 운전하여 엄마 아빠가 계신 평택까지 가기                   

(몇 년 전 김장 도와드린다고 가던 날, 큰 마음먹고 새벽에 운전해서 갔는데 길을 잘 못 들어가서 역주행을 하던 때가 있었다. 머리털이 다 솟아오르는 듯한 아찔한 기억 이후로 친정집까지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기억을 극복하기) 

(2) 엄마 아빠랑 같이 맛집 가기 

이렇게 두 가지였다. 그런데 둘 다 자신이 없었다. 안 하면 내 몸은 편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음으로 미룰수록 후회로 쌓이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용기를 내보자!' 언제까지 남편만 의지해서 친정집을 갈 것인가, 언제까지 엄마 아빠랑 하고 싶은 것들 미뤄만 둘 것인가. 

이 생각을 하다가도 평소에 엄마를 너무도 잘 알기에 어디 가자고 말했다가 괜히 혼만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시 망설였다. 그래도 얘기해 보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목소리부터 벌써 바쁜 게 느껴졌다. 청소를 하고 계시다고 했다. 아빠는 밭에 가셨다고 하시기에 거기서 할 말이 쏙 들어갔다. 그냥 전화를 끊으려다가 그래도 말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말했다. 

"엄마 아빠랑 꼭 같이 가고 싶은 맛집이 있는데 같이 가고 싶어서?"

보나마다 돈 낭비하고 싫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엄마의 반응은 반전이었다.

 '그래?' 

엄마의 예상외 반응에 이때다 싶어서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갔다. 

"예전에 여기서 밥을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엄마 아빠랑 꼭 같이 가고 싶었어요."

엄마는 밭에 간 아빠에게 물어보고 바로 전화를 주신다고 하셨다. 그 대답은 곧 '예스'라는 말. 

잠시 후 역시 내 예감은 맞았다. 엄마가 가도 좋다고 하셨다. 이렇게 기쁠 수가. 한꺼번에 버킷리스트가 용기 한 번에 이뤄질 순간이 코앞에 있었다. 


남편을 옆에 앉히고 무사히 평택까지 운전을 했다. 떨리기는 했지만, 이만하면 만족이다. 다음에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그다음은 엄마 아빠와 맛집 가기. 여기서부터는 남편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신이 나서 가는 내내 엄마 아빠와 말을 나눴다. 복작거리던 일상에서 뭔가 꿈속 같은 모습들이 눈에 펼쳐진 것 같았다. 자동차 창문을 열자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내 마음 같았다. 살랑살랑. 

가고 싶었던 맛집에 도착. 엄마와 아빠는 무척이나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내가 먹는 밥보다 엄마 아빠가 드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배불러지는 기분이랄까. 거꾸로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나를 보고 느끼셨을 것만 마음을 내가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 후에 같이 산책도 하고 도자기들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날씨는 얼마나 찬란하던지 그 시간 자체가 내겐 그  햇살 같았다. 아침의 용기가 하루의 풍경을 바꿔놓은 날이지 않은가. 

예쁜 카페에서 잠시나마 보낸 시간들에 대해 여쭤봤다. 

" 오시니까 어때요?"

엄마의 반응은 그야말로 베리굿이었다. '좋네 좋아. 밥도 맛있고 구경하고 좋아'

아빠의 대답은 '한동안 허리 아파서 걷는 것이 힘들어보니까, 아프면 다 소용없어. 다닐 수 있을 때 다녀야 하는 거야.'


어디 다니시는 것을 늘 좋아하시는 아빠는 한동안 아프셔서 걷기도 힘드셨는데, 좀 몸이 나아진 뒤로 일상을 누리자는 생각이 많아지신 듯했다. 어디 가자고 하기 힘들던 엄마도 함께 하는 내내 사진도 먼저 찍어 달리고 하시고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의 소녀가 눈앞에 보였다. '엄마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내 버킷리스트 속에는 엄마 아빠랑 함께 하고 싶은 소원들이 늘 있었는데, 어제는 그 생각이 컸다. 보통 현실성이 없는 듯한 소원들을 적어놓는데, 큰 한방의 소원은 이뤄지기 힘들 수도 있으니 자잘하고도 소박한 버킷리스트들을 늘려가야겠다고.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는데, 나는 자잘한 꿈의 목록을 이뤄가는 선택을 하고 싶다. 지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들.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엄마 아빠의 여운이 졸졸졸 뒤따라온다. 한 번도 몰랐던 엄마 아빠의 모습들. 

다람쥐 모양 인형을 보고 좋아하시고 사고 싶다고 하신 아빠. 너무 의외여서 진짜 살 거냐고 물어봤는데 눈빛이 반짝이던 아빠. 마치 어린 시절 소년의 아빠는 이런 모습 같았던 순간. 아빠의 손에 든 다람쥐를 사드리고 싶어서 계산을 하고 선물로 드렸다. 내 지갑은 점점 헐거워지지만 이런 돈은 얼마든지 쓰고 싶었다.

어제를 한 줄로 일기로 써놓는다면 이렇게 적어놓고 싶다.

'엄마는 소녀 같으셨고, 아빠는 다람쥐 인형을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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