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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03. 2016

# 수명

글쓰기의 재료는 자신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것 같다. 

마음을 글로 옮겨 놓는 것이므로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일상들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실은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 있다. 요즘처럼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중환자실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일들을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것이 무거운지 자꾸만 써도 써도 쓸 게 남아있나 보다.


수명(壽命). 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개체가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기간 혹은 사망 당시의 연령을 말한다고 나와있다.

가장 짧은 수명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애석하게도 나의 막내 동생이었다. 

동생이 죽었다. 그것도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나는 그때 어렸다. 너무 놀라서 그런지 다시 그 얘기를 꺼내 부모님께 확인하지 않았다. 내가 몇 학년 때 동생이 그렇게 됐는지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 해지고, 추측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마음으로 내가 국민학교 3학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동생은 태어날 때 경끼로 인해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했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건, 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 눈이 나와 다르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동생을 데리고 나가 놀아야 할 때면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동생을 놀려댔다. 그래서 난 동생이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제일 싫었던 말. "동생 데리고 놀다 와" 이 말..

싫긴 했지만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어느 날 낯선 풍경이 집안에 그려졌다. 책가방과 털부츠 새 것이 놓여 있던 것. 동생이 학교를 간단다. 장애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엄마는 몇 번이고 신발과 책가방을 만져보셨다. 엄마의 바람을 뒤로 한 채 동생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고 누워 있었다. 언니와 동생들과 나는 일요일 어느 날 TV 앞에 바짝 다가앉아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의 풍경 뒤로 막내 동생은 누워 있었다. 그냥 감기로 앓아누워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곧 다시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집에 오셨던 친척 할머니가 방안에 누워있던 동생을 보시고 무언가를 직감하신 것처럼 엄마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날 밤 동생이 죽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동생의 얼굴을 다시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나보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몇 년 못 살 거라고 했던 동생이 그만큼 산 것도 오랜 산 것이라고 했다.


다음 수명을 얘기하고 싶은 것은 도련님과 아주버님의 암투병을 지켜보면서 느낀 마음이다.

삶이 애잔해지는 건 이 둘의 살아온 시간때문이다.  도련님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다. 공사장에서 궂은일을 하시며 마흔 중반이 넘었지만 미혼인 채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지금은 직장암 말기로 중환자실에서 삶과 투쟁 중이시다. 

아주버님은 형님과 재가로 다시 만난 분이다. 두 분다 이혼으로 홀로 지내시던 중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하셨다. 두 분은 어쩌면 부부로 만날 수 밖에 없던 사람들처럼 몹시도 닮아 있었고, 곁에만 있어도 보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셨다. 그렇게 살기를 바랬을 텐데 형벌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주버님이 혈액암이란다. 손잡고 여행을 다니시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병실에서 둘은 서로를 애처롭게 바라보고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면  행복으로 다 채워져도 부족할 것 같은데,  더 큰 시련이 있다는 것이 뭔지 모르게 불공평하고 가여움들이 더해져서 마음이 시리다..


피천득에 "장수"라는 글을 보게 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장수는 건강하고, 물리적으로 수명이 긴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글에서는 단순한 수명이 긴 것을 장수라고 하지 않는다.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사람은 장수한 사람이고, 수명이 길다 해도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단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살아있으면서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착한 일을 하고, 회상 속에 아름다움이 많다는 것을 장수라고 생각했다니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7살 동생에게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았을까? 아니면 언니의 부끄러움을 알면서 맘 아파했을까?

자전거에 동생을 태우고 코스모스 길을 지나갈 때면 꽃으로 둘러싸인 길에 멈춰서 부지런히 코스모스 잎을 따서 손톱 위에 올려놓고, 손에 쥐어준 그 꽃송이들을 넌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중환자실의 도련님은 생사의 길에서 헤매고 있지만, 누군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그 마음을 아름다움으로 담을 수 있을까? 누나와 형의 그 애처로운 시선을 느끼고 있을까?

재가로 만나 아주버님의 지난 7년을 후회 없이 사랑하셔서 수명이 다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만큼

담담하신 걸 나는 장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피천득의 장수의 글을 읽으며 머릿속에 이 세 사람을 떠올렸다.

장수하길 바라며..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며, 회상할 것들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지닌 채 살아가면 좋겠다. 기계적이지 않으며 지금의 시간을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날을 기원한다. 누워있는 자들에게, 쓰고 있는 나에게, 읽게 될 누군가에게 나는 말하고 싶었다.



<장수>  -피천득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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