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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14. 2016

#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알고 싶은 사람들

라디오 듣기를 좋아한다. 조그만 상자 안에 내재된 선율들은 소심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내게 신세계와 같았다. 지금의 감수성은 나의 성격이기도 할 테지만, 라디오를 만나면서 오랜 시간 흡수된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심히 세월은 지나 그 시간들을 거슬러 생각할 것들이 많아졌음에도, 라디오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삶의 모든 장르들을 다 들으면서도 마음 안을 따스한 의지들로 채워주는 라디오가 신기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다가 어떤 사연이 흘러나왔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갑자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집안 환경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곧 아이 아빠가 될 사람이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모험을 택한 것은 행복하지 않아서였다.

" 나 회사에 가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야." 남편의 이 말에 몹시 놀란 아내는 고민하다가 허락을 하고 말았다.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하고 싶다던 대학원 공부까지 시작했던 남편은 점점 얼굴 표정도 달라지고, 주말이면 무기력하게 잠만 자던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남편의 이야기를 적어 보낸 아내의 마음 안을 같이 귀 기울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시작한 사람"

라디오 DJ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며 코멘트를 해줬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일로 하고 살면 정말 행복한 지도 되묻기도 했다. 어떻게든 그건 사실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그 말을 생각했다.

최근에 누군가가 추천해줘서 샀던 책에도 그 흐름이 동일한 얘기들이 적혀 있어서 그 목차를 몇 번이나 훑어봤다.

공기업에 다니다 꿀벌을 키우는 사람, 27년 차 직장인 생활을 접고 쉰다섯 살에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 기자로 일하다가 나무 박사가 된 사람, 공기업에서 일하다가 여행 작가가 된 사람, 13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귀농하여 농부 간 된 사람.  천직 같은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소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보는 것 같았다.


오래전 내게도 천직 같은 일이라 생각했던 직업이 있었다. 

최초의 직업에 대한 희망은 세무사가 되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간절했다기보다 대학 학과를 급하게 정한 탓으로 그렇게 그 연장선에 있던 직업을 생각했다. 부모님은 세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세무사 사무실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큰 꿈은 아니더라도 보람만큼은 찾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보람도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나와는 맞지 않은 일이라는 것만 더욱 느껴질 뿐이었다.

밤새워 세금 신고를 했지만, 돌발 상황은 지뢰밭처럼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보람도 없었고, 살아가고 있다는 행복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간신히 2년을 채우다 나와버렸다.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한다고 좋아하셨던 부모님을 생각해서 정말 간신히 다닌 시간이었다.

그때의 상실감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그러려고 대학 다닌 것도 아니고, 자격증 따려고 아등바등 보낸 것들이 허탈하고 무의미해졌다.  부모님은 여전히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지만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직업을 업으로 살아야 하는지 구인 사이트를 찾아보기도 하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들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전전했다. 그러다 뜻밖에 대학에서 일하는 조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정말 나에게 라디오를 만났을 때처럼 신세계였다. 그렇게 열심히 공들인 시간보다 대학교에서 일하던 시간들이 뜻밖에 가장 행복하다니.

지금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 내게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던 일이지만 , 천직 같은 일은 어쩌면 애초부터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들이 있은 후부터 말이다.


그럼에도 늘 마음 안에는 나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은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온전한 나로서의 좋아하는 일에 대한 갈급함은 늘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물음이 들 때면

남편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고 싶더라도 기꺼이 가족들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사람이 아닌가.

구조 조정으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보면서 거꾸로 악착같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다니며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을 일생의 소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순 같은 상황들 앞에서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 됐다.  

그와 견주어 한 동료는 최근에 직장을 나왔다고 했다. 결혼은 했지만 오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돈을 버는 목적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했고, 부부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하면 아끼면서 살 수 있다면서 귀농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 부부의 선택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라디오 사연의 주인공처럼, 회사의 동료처럼 그런 용기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이라는 취미를 찾은 이후부터 삶의 활력들을 찾아갔다.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저렇게 행복할까 싶은 마음이 들만큼 내게도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 전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찾아가고 있을까?

아니, 이런 것들은 모두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는 물음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살아가는 결국의 지향점은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데 이런 물음들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는 자들의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일은 아닐까 마저 생각이 이어졌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삶의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용기 있게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통해 보다가 마저 내게 물어보게 된다.


나는 무엇이 정말 하고 싶을까? 결국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좋아하는 일을 천직처럼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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