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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Nov 24. 2016

# 어떤 향기

KBS 허수경의 해피타임. 4시의 쉼표 라디오 원고로

(방송 원고로 수정돼서 나온 글)(방송본)

6월 8일 수요일 4시의 쉼표로 방송


우리 집 앞에는 고모가 첫째 생일 선물로 사준 신 세발자전거와 우유를 먹게 되는 바람에 공짜로 생긴 씽씽카, 그리고 아이가 조금 커서 산 두발자전거, 그렇게 세대가 나란히 서있다

애들 물건이 많으니 내 물건은 되도록 사지 말자 결심했는데 어느 날 산책하다 본 바구니 달린 자전거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지나치듯 한 그 말을 기억했던 남편이 내 생일에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샀다며 며칠 후에 배달될 거라고 했다. 문제는 자전거가 와도 놓을 자리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허락을 받고  필요한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 깨끗이 닦은 후 사진을 찍어 아파트 홈페이지 장터 사이트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바로 연락이 오겠지 생각했지만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아래층 마당발 언니에게 "누구 필요한 사람 없을까?"물었더니 분리수거하는데 갖다 놓으면 가져가 갈 거야 한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소중하게 받은 선물을 분리수거 장에 내다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자전거 아직 있으면 가져가도 되겠냐는 문자가 왔다. 좋은 곳에 보내고 싶다면서 말이다. 너무 기뻐 바로 가지러 오시라고 했다. 오신 그분은 아는 분이 어린이집을 하는데 자전거가 한 대라 아이들이 서로 타겠다고 싸워 그곳에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더 필요한 곳이 있을지 몰라 하루 기다렸다가 연락하신 거라고 했다. 나 같으면 누가 가져갈 새 라 잽싸게 연락했을 텐데..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배려심이 깊을까

아이들에게도 자전거가 좋은 곳에 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자전거를 가져간 그분이 캐러멜과, 커피향 가득한 빵을 갖고 다시 오셨다.

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런 게 사는 건데...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허수경의 해피타임 4시의 쉼표로 보낸 사연(원본)


제목: 나눔의 어떤 향기

집으로 들어오는 문 앞 자전거 여러 대가 세워져 있다.

자전거를 나열해 보자면 고모가 첫째 생일 선물로 사주셨던  세발자전거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유를 먹어서 공짜로 받은 씽씽카, 조금 더 컸다고 두발자전거를 사줬던 것까지 세 대가 있었다.

그나마 있었던 유모차는 이사하기 전에 동생에게 물려줘서 한결 나아졌다.

그동안 아이들 물건이 많은 집에 놓을 자리 부족으로 내가 그토록 타고 싶어 하던 자전거는 사지 말자, 말자 했는데 한 대가 더 늘어났다.

어느 날 산책하다가 카페 앞에 세워져 있던 바구니 달린 자전거가 얼마나 예쁘게 보였는지, 그날따라 나도 이제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말에 무게가 실렸다. 이제는 아이들 유모차를 미는 대신에 엄마인 내게도 바구니 달린 자전거 타고 싶은 나를 허락해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그 말을 기억했다가 나의 생일에 맞춰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선물로 사줬다. 얼마나 좋았는지 며칠 후면 받을 거라는 말에 설레 아이들 마음이 이랬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몸집이 큰 자전거까지 집 앞에 놓으려니 무언가 너무 많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세발자전거는 손이 안 간 지 오래되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다른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그전에 꼭 해야 할 것은 아이들에게 자전거 나눠주기 허락을 받아야 한다. 나중에 "어디 갔냐"라고 물어보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얘들아 이 자전거 이제 안 타니깐 우리 나눠주자."
"왜요? 안돼요. 안돼. 탈거예요."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이 자전거 안 탄 지 오래됐잖아. 언니는 두발자전거를 타고, 동생은 씽씽카를 타고.."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면 어때?" 

둘째가 탄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데 통 크게 "좋아요"를 했다. 허락을 받았으니 이제 일사천리로 진행시킬 수 있게 됐다. 사진을 찍어 아파트 홈페이지 장터 사이트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바로 연락이 올 거라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하루가 지나도 무소식이었다.

"나 같으면 누가 준다면 바로 썼을 텐데... 자전거가 안 좋아 보이는가?"

하는 수 없이 밑에 층 마당발 언니에게 누구 필요한 사람 있느냐고 물어보니깐 분리수거 장에 가져다 놓으면 가져간다며 말했다.

나도 그 생각은 안한 건 아니지만 소중하게 받은 선물을 쓰레기로 버리는 게 미안하고 싫어서 그 방법은 피하고 싶었던 건데 ..

그렇게는 버리고 싶지 않아서 안되면 그냥 다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자전거 아직 있으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좋은 곳에 보내고 싶어서요."

그 문자를 보자마자 얼마나 기뻤는지 " 네. 네. 바로 가지로 오세요"

좋은 곳에 보내진다는 말에 물건이 나눠지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자전거를 가지로 온 분께 오히려 내가 고마움을 느끼며 자전거를 어디에 보내시냐고 물으니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하셨다.

아는 분이 어린이집을 하시는데 그곳에 자전거가 한 대라 아이들이 싸워서, 그곳에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더 감동이었던 건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다른 분들이 필요하면 먼저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하루를 기다렸다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시다니.. 나 같았으면 내가 필요하면 먼저 하겠다고 했을 것을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먼저 기다려주는 배려까지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아서 그 말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자전거가 좋은 주인에게, 좋은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음도 행복하고, 아이들에게도 나눠주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줘서 뿌듯했다.

밥하려고 주방을 서성이다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보니 아까 자전거 새 주인이 양손에 먹을 것을 가지고 오셨다. 바라고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얼마나 마음이 풍요해지는지 문 앞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덩달아 자전거 스토리의 뒤를 더 따뜻하게 말해줄 것들이 늘어났다.

밥하던 걸 놓아버린 채 캐러멜과 커피향 가득 담긴 빵을 먹고 또 먹었다.

"아... 참 이런 날도 있구나"

크든지 작든지 나눠주는 것에는 동정이 아니라, 내가 있는 것이 많아서 헤프게 버려지는 것도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그 이상에 풍요로움이 있었다.다시 한 번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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