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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y 30. 2018

#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 더 알아본다



#라디오 일기 


귀를 열고 있으면 어느 날 마음에 무언가 날아오는 말들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집안에 손도 안 댔던 진열된 책 속에서 무심결에 발견하거나, 이렇게 라디오를 좋아하는 내게서 뗄 수 없는 라디오를 통해서 더욱 많이 느끼게 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마음에 퐁당퐁당 떨어지는데 다 받아내지 못하고 이것이라도 적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경기방송 지화진의 팝스 콘서트 방송 2부  "아침에 나에게"는 지화진의 팝스 콘서트 대표 코너다. 

책 속에 있는 말이나,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말들을 읽어주는 코너인데 오늘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의 글 중 일부를 읽어주셨다.     

                           


언젠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듯했다. 할머니가 손자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손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대꾸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순간 난 할머니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의 유형을 몇 가지 예상해 보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라거나 "할머니는 다 알지"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 어설픈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이기주 작가-언어의 온도 내용 중에서 ) 


듣자마자 아... 하는 이런 느낌. 

할머니의 말씀은 내 추측했던 말도 완벽히 빗나갔다는 것과 바로 내게도 그 아픔이라는 것에 와 닿는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아픔들이 많이 있었을까?

그 아픔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동생이 말 못 하는 아이로 태어나서 7년간의 나와 다른 세상의 시선 속에서 살다가 하늘나라 간 일


대학 4학년 무렵, 직장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갔었는데 면접자와 분위기가 좋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며칠을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밥도 못 먹고 끙끙거리다가 지쳐서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처참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전화 준다는 말이 정말 전화 준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거절의 또 다른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오직 한 가지 길이라 생각했던 첫 직장을  몇 년간 다니다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마주해야 했던 일

엄마, 아빠가 보태주신 학비에 대한 죄송함과 쌓아왔던 것에 대한 허물어짐과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한 아침을 맞이하던 일


이것도 하늘나라에 갔던 동생과 관련된 일이다.

동생은 유독 바깥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놀이터에 가거나 교회에 가거나. 어느 날 자전거 뒤에 동생을 태우고 놀이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코스모스가 너무 예쁘게 피어있었다. 자전거에서 내린 나는 코스모스 꽃을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동생이 타고 있던 자전거가 도랑으로 굴러갔다. 순식간에 동생은 도랑 속으로 빠졌고, 너무 놀라서 도랑 속을 들어가서 동생을 먼저 꺼내놓고 자전거를 빼면 될 것을 있는 그대로 동생을 구하고 싶어서 자전거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힘이 점점 빠졌고 울음이 쏟아졌다. 나 좀 도와달라는 말은 그냥 고함 같은 울음소리였다. 그때 저 멀리서 나를 봤던 어떤 분은 내가 울고 있었는데도 그냥 쳐다보고 지나갔다. 그분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는데도 말이다. 

계속 울고 있었는데 그 도랑과 가장 가까운 집에 계셨던 아주머니가 나와서 나와 동생을 꺼내 줬다. 집에 와서 엄마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할 뿐이다. 그때 왜 그분은 나를 그냥 지나쳤을까? 문득 화도 났었지만, 다행히 울고 있었던 나를 지나치지 않고 구해주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아픈 것을 몇 가지 적어보려니 마음이 아프다.. 더 적지 못할 것 같아서 여기까지 적기로.. 

그렇지만 이제는 그 아픔이 그대로 내게 머물고 있지 않다. 그저 이렇게 생각했을 때 그때의 내가 보여서 감정이 반응을 한다고 생각해본다.

나에게도 많은 아픔이 있다는 것들이 글을 들으면서 마음이 반응했는가 보다. 

아픔이 아픔으로 남지 않고

아픔이 아픔에게 토닥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렇게 느끼며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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